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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0일 목요일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토대를 논하다 [IVP BOOK NEWS 121호]

마크 놀, 출처 - TIME

1994년 마크 놀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출간했다. 이 “상처 입은 연인이 부치는 서신”에서, 그는 복음주의 종교 문화의 반지성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의 「그리스도와 지성」은 비판에는 지면을 훨씬 적게 할애하고, 대신에 그리스도인의 학문의 토대를 세우기 위한 비전,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인 진리들이 그리스도인의 학문의 열쇠다”임을 제시한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인 데이비드 네프(이하 네프)가 이 책에 관하여 노트르담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크 놀(이하 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프: 「그리스도와 지성」의 중심 주제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출간할 당시보다 지금 복음주의 지성의 상태에 관해 더 낙관적이신가요?

: 더 낙관적입니다. 전적으로 그렇지는않지만요. 현대 서구 문화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여타 진지한 지성의 삶을 밑에서부터 허물어버린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독교적 지성의 밑동을 잘라버렸습니다. 진지한 성찰의 근간을 스스로 허문 복음주의자들 사이의 경향도 여전히 매우 강합니다. 예를 들면 대중주의(populism)와, 문제가 있다면 지금 당장 해결해버려야 한다는 즉각주의(immediatism)가 있습니다.



네프: 다른 상황들에서는 이런 것들이 강점으로 작용하지요.

: 맞습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복음주의 세계 안에서 진지하고 냉철한 사고의 근간을 허무는 거의 모든 것들이, 실제로 복음주의적 삶의 다른 측면에서는 생산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단정하여 말하고 싶었던 적은 전혀 없지만 사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칭찬 받을 만하고 매우 진지한 향상을 보여 주는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 궤적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요. 그리스도인 철학자들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을 해냈습니다.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는 기독교 대학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또 복음주의 신학교들이 선하고 확고한 사고를 자극하고 있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넓은 학문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기꺼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많이 내놓고 있고, 기독학생회(IVF) 학사·교수회 같은 파라처치들도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인데(그리고 역사학자의 유전적 비관주의일 것 같기도 한데), 그리스도인들의 상당한 지성적 기여가 더 넓은 강물로 흘러들어가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프: ‘와 보라’를 과학을 하라는 그리스도의 초대라고 하셨습니다.

: 이 책의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과 미래 교회의 소망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지적 문제들을 고찰하는 기초 관점을 제시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고 전제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무엇보다도 만물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임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고린도전서 1장, 히브리서 1장 모두 똑같이 말합니다. 단지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만물을 창조하셨다’ 고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다.”는 고린도전서 1장 말씀은 참 놀랍지요. 복음서에서 우리는 탐구할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실제로 탐구해야 한다는 말씀이 반복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어떤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물었을 때, 빌립은 ‘와 보라’라고 대답했죠.
  제가 제안하는 것은 관찰과 경험을 타당한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취급하는 베이컨의 경험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곧 열린 지성을 가진다는 것이며, 이 열린 지성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을 통해 길러진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경험적 방법론으로 열린 지성을 가집니다. 자연에 대한 책임 있는 실험이 이루어질 때, 그 관찰자가 발견하는 것은 단지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창조되고 섭리에 의해 보존되는 자연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초점을 갖고서 자연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열린 마음과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학에 대한 그리스도의 적실성이란, 자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에게 자연을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을 탐구할 때 우리에게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에 대한 열린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 보라’인 것입니다.



네프: 특별히 복음주의자들 내부의 과학적 논쟁점들과 관련하여, 속도를 늦추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최고의 방식일 수 있다고 제안하시는 것 같습니다.

: 종교와 과학 사이의 이른바 ‘갈등’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들은 결론을 너무 성급하게 내리는 데서 기인합니다. 중세 시대로 돌아가 보면, 자연 안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새로운 발견들이 잇따랐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응했습니다. 한참이 흐른 뒤에야 그리스도인들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여기 설명이 있다”고 말하게 되죠.
  마르틴 루터도 장 칼뱅도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 수 있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세대가 지난 다음에 루터교인들과 칼뱅주의자들, 가톨릭 신자들 모두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주장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이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자, 시간을 갖고 성경과 분명하게 대치되는 이것을 가능한 한 주의 깊게 그리고 공평하게 평가해 봅시다.” 그런데 그 대신에 쓸데없는 교리적 반작용이 나타났지요.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저에게 없습니다만, 역사학자로서 저는, 끈기 있는 연구를 경시하지 말고 더 많이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네프: “그리스도인의 학문 활동을 위해서는, 가정생활·정치·지역사회 봉사·경제 활동·의료 활동 같은 것들도 똑같이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이렇게 쓰셨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학문 활동은 기독교와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육, 그리스도인의 출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치 모두가 기독교와 함께 시작해야 하듯 말이죠.
  학문 영역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많은 부분들은 문제를 그리스도께 중심을 둔 기초로 돌려놓지 않는 데서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책의 첫 부분을 위대한 기독교 신경들의 기독론적 확증들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데 상당히 많이 할애한 이유입니다. 이 신경들이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그 자체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강도 높은 토론에 의해 단련되었고 생산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이 전진하는 길은 가정생활과 정치와 일체의 모든 윤리적 영역에서 그리스도께 중심을 둔 기초로 되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다른 차원들에서 전진하는 길이라면, 이것은 또한 지성의 삶에서도 전진하는 길입니다.



■ 이 인터뷰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하였습니다. 지면 관계상 편집하였으며, 전문은 2015년 9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혼자 오지 않으셨다 [IVP BOOK NEWS 121호]

[서평]

뜻밖의 손님

데이비드 짐머만 | 이지혜 옮김 | 최정인 그림ㅣ양장 64면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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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 분을 맞아 들일 수 있을까?
잠시 앉으셔서 가벼운 차 한잔에 딱 그만큼의 일상을 나누는 정도라면 충분히 자신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깨끗한 원룸이니까. 이 방이라면 예수님이 어디로 움직이실지 한눈에 파악이 될테니 원치 않는 곳을 급습 당하는 일은 없겠지. 그리곤 이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요즘 내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도 제목은 무엇인지. 그리고 혹시 예수님도 알고 계셨냐고 슬쩍 여쭈어 볼테지.

  내심 예수님이 좀더 오래 머물러 주시길 약간은 기대하고 있다. 그분께 속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 있을 테니까. 힘들었지만 견뎌야 했던 지난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버거웠는지, 그럼에도 그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겐 은혜라고 고백할 작정이다. 그래, 문제없다! 예수님이 찾아 오셔도.


  하지만 내 방 쇼파에 앉아 있는 이웃을 마주하거나 내 키보드를 쿵쾅거리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나는 과연 괜찮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이웃으로 흘러가는 것은 내 예상을 넘어서는 일이다. 책을 읽다가 마음이 불편했던 지점도 바로 그 곳이었다. 묵을 곳이 없는 노숙자 가족이 집에 들어와 있을 때. 나는 마치 그들이 '내 집에' 들어온 것 마냥 짜증이 났다. 또 아무런 상의 없이 그들을 내 방으로 들어오게 하신 예수님에게도 마음이 불편해 졌다. “이제 그만 나가 주시겠어요?”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모를 한마디가 입 밖으로 불쑥 튀어 나갈 것만 같다.


  만원 지하철에 서 있을 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끊임없이 평가받고 저울질 당한다고 느낄 때,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거부한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그분을 실망시킬까봐 두렵다. 그냥 내 방에서, 나와 예수님 단 둘만 만나면 좋으련만.




  지난 3년간, 그러니까 내 삶을 돌봐줄 사람 없이 혼자 살게 되었을 때부터 나의 신앙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마치 예수님은 나의 아픔과 상처를 만져주고 회복 시키시기 위해서만 이 땅에 오신 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지내던 내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 혼자가 아니라 이웃을 데리고서.


  예수님은 나의 삶과 상처를 돌보시는 분 이시지만 우리의 관계가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예수님이 내 삶에 머무실 때 나의 삶엔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내게 상처를 주는 많은 이들을 용서해야 하며 나는 다시 관계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한다. 두렵고 통제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또다시 소진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지만 그 속에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교제의 풍성함이 숨어있는 줄 이제는 안다.


  닫혀있던 문을 열었더니 그 문으로 예수님이 들어 오셨다. 그 분은 날 너무 사랑하신다. 그래서 혼자 오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 우리 모두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이곳으로 불러 모으셨고, 우리는 그분을 우리 집 가장으로 모셨다. 예수님은 이 일에 매우 뛰어나신 분이므로.  p62"



김슬아(자취하는 인도공주)ㅣ 한문교육을 배웠고, 인문학을 가르친다. 따라가던 구름기둥이 머무는 곳에서 나름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나라가 무슨 상관인가? [IVP BOOK NEWS 121호]

[서평]

그리스도와 법: 하나님의 정의는 국가의 법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가
로버트 코크란 외 | 이일 옮김 | 304면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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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의 법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분석틀을 빌려 와서 각 교파/신앙고백적 관점들을 각각 종합주의자(로마 가톨릭), 변혁주의자(개혁파), 분리주의자(재침례파), 이원주의자(루터파)로 구분한다. 그런 다음 각 교파/신앙고백적 입장이 사회, 국가, 법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살핀다.



법을 바라보는 교파/신앙고백적 입장들


■ 종합주의자 로마가톨릭
자연과 은총, 이성과 신앙, 세속과 교회가 모순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 본다. 모든 피조물들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비롯된다. 이러한 낙관적인 인간론은 가톨릭 법사상에 있어 인간 존엄성과 인간 이성의 초월적인 능력, 인간의 자유로 연결된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근원적인 성품인 사회성의 발현으로서 사회와 국가가 성립한다. 이때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사회 속 인간은 개인주의나 집단주의와 구별되는 ‘인격주의’적 개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들은 모두 인간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권리와 의무 목록으로 연결되며, 가톨릭 사회 이론에 있어서 사회가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보는 견해를 낳는다. 사회와 국가를 구별하고 보충성과 사회화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국가의 존재 의의를 고려하는 가톨릭의 입장은 궁극적으로 국가를 자연법의 구속을 받는 기관으로 만든다.

1장 첫머리의 “법과 정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관점”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계승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어떻게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신앙에 기초해 인간과 사회, 법과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차이와 특히 자연법에 대한 철학적 전개로 인해 형성된 낙관론적 인간론으로 인해 약화된 죄에 대한 인식이 신학적 성찰을 통해 죄에 주목하게 되었음을 잘 지적한다. 이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인식이 개인에서 구조와 사회의 문제로까지 확장됨으로써 국가에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자연법사상의 경향을 수정했음을 언급한다. 이 논의를 이어받아 제라드 브래들리는 “자연법”이라는 글에서 자연법의 의미와 법사상, 특히 미국 법사상에서 자연법이 어떠한 의의와 역할을 지녔는지 보여 준다.


■ 변혁주의자 개혁파

 칼뱅으로 대변되는 개혁파는 죄로 인한 타락과 부패를 강조하지만, 변혁의 가능성 또한 강조하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개혁파가 이러한 입장을 이어받았으며, 특히 신칼빈주의자라고 불리는 북미의 개혁파가 계승했다. 한국에 장로교회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학적으로 변혁주의적 입장이 다수라 볼 수도 있겠다. 낙관적 인간 이해에서 출발하든 비관적 인간 이해에서 출발하든, 협력과 변혁을 강조하는 로마가톨릭과 개혁파 모두 분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던지는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장에서는 칼뱅주의의 신학적 인간 이해가 미국 제헌의회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 철저하게 보여 준다. 미국의 법제도에 칼뱅주의가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권리와 자유의 역사」(존 위티 주니어, IVP)와 함께 읽으면 개혁파의 입장을 좀 더 역사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이후에 실린 데이비드 커딜의 글 “법학에서 신앙의 자리에 대한 한 칼뱅주의자의 관점”은 네덜란드 개혁파의 정치사상과 법 이해 역시 소개하고 있는데 인물의 사상 소개에 그치는 감이 있어 약간 아쉽다.


■ 분리주의자 재침례파와 침례교

 이 입장은 강제력을 지닌 국가의 법에 저항한다. “급진적 종교개혁과 용서의 법학”에서는 재침례파가 말하는 용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법사상에 반영될 수 있음을 말하며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가지고 미드라시적 묘사를 통해 용서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통해 “(모든) 시민 공동체가 용서를 기반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개념은…혁명적”(p. 180)임을 밝힌다.
 소수자요 핍박받은 공동체인 침례교의 역사를 통해 침례교회가 자신의 정황 속에서 국가와 법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분리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침례교 신학은 그 구원 개념에서부터 각 개인의 자유에 기초해 있으며, 이러한 원리는 신학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을 지닌 침례교회가 분파주의에서 교파주의화되었고,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도덕적 다원주의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고유한 입장이 약화되었음을 지적한다.
 “바벨론에서의 자유와 생명에 대해”에서 국가의 영역을 최소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자신의 신앙을 증거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원화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신앙은 축출되고 마는데, 그렇다면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차라리 독자적으로 활동할 자유를 얻어 내자는 것이다. 기독교가 소수로 밀려나는 시점에 이 주장은 상당히 솔깃하게 들린다.


■ 이원주의자 루터파

마르틴 루터로 대변되는 이원주의는 교회와 국가, 그리스도인과 법의 관계를 긴장 관계로 본다. 왜냐하면 각기 다 른 통치영역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열된 집?"에서는 루터파와 재침례파의 국가관을 비교해서 서술한 후 루터파의 관점이 개혁파와 로마가톨릭의 관점과는 어떻게 다른지 간략히 나와 있다. 그러면서 루터파가 국가가 지니는 칼의 권세를 인정한 것은 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우리가 거할 곳을 만드는 것”에서는 루터 당대와는 다른 미국 상황 가운데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기독교 국가시기를 지난 시점에 후기 기독교 국가시기에 대응하는 양 극단인 신정주의와 분리주의 사이에 서 있으면서 정치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한 두 왕국 이론이 초기 이론 그대로 유지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이 ‘복음이거나 복음이 아닌 것’ 중 ‘하나의 선택’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서 자신이 자리할 공간을 법은 창조해 낸다”(p. 293)고 말한다.



균형, 시대 분별, 소명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얼까? 이 책의 편집자인 로버트 코크란은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균형과 시대 분별, 소명 의식을 가지고 각 전통을 화해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로마가톨릭 입장과 재침례파와 침례교의 입장을 다룬 글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각 교파의 신앙고백적 입장과 세부적인 인식들이 흐릿하여 도리어 공통기반과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는 우리 현실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고백하고 선택한 입장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참, 종교개혁이 새로운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중세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설명을 제공해야 할 텐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지점까지 다뤄지지는 않았다.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병규 | 법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열린교회 신학연구실과 여러 곳에서 출판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했다. 지금은 무등개혁교회의 설교자로 섬기면서 목회와 신학의 현장인 교회와 세상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과학의 시대, 영혼을 재발견하다 [IVP BOOK NEWS 121호]

[서평]

마음 뇌 영혼 신

심리학과 신앙에 관한 허심탄회한 대화
말콤 지브스 | 홍종락 옮김 | 304면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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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는 뇌질환을 앓으셨다. 뇌출혈로 돌아가시기 전, 나는 아버지의 뇌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 그동안 아버지의 모든 영적인 실천을 무참하게 뭉겨버리는 듯한 장면을 목격했다. 60년 동안 경건한 예배의 삶을 이어오시던 아버지는 멍하니 설교를 듣다가 웃음을 터뜨리시곤 했다. 그것도 자주.

   당시 나는 과학적 방법론에 다소 익숙한 신학도로서 인간의 뇌에서 발생한 물리적 혹은 화학적 변화가 주는 영향력이 한 인간의 오랜 신앙 여정을 여지없이 뒤흔들 수 있다는 반격에 사뭇 긴장했다. 신앙의 유지는 뇌 안의 뉴런의 건강한 기능이 전제돼야 한다는 엄연한 가설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인간의 종교심의 구성요소를 단순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논증하는 일을 넘어서, 훨씬 광대하고 연계성 있는 학제간 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안의 소리를 연결하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 종교 분야의 접점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말콤 지브스 교수의 「마음 뇌 영혼 신」은 인간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 곧 '나는 누구인가'(who I am)라는 철학적·종교적 질문과 '나는 무엇인가'(what I am)라는 과학적 질문의 합류 가능성을 묻는 모두에게 친절한 필체로 최고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우리 내면에서 쉬지 않고 일어날 만한 흔한 질문들을 끈질기게 묻는 호기심 많은 대학생 벤이 등장하고, 벤의 질문에 노교수 말콤은 쉽고 명료하게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인 노력들을 소개한다.

말콤 지브스는 게이지 논쟁*이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엮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거둔 학자로 인정받는다. 발달심리학과 치료 분야, 인지심리학 분야, 뇌 영상 촬영 기술 등은 이제 서로 밀접하게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 관심을 소통시키며 발전해 왔다. 특히 영혼에 대한 종교적인 연구도 이러한 소통 구조 안에 위치시키려고 애써 왔다. 그래서 내담자들이나 교인들의 영혼의 상처를 감싸 안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중간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는 기독교 상담가들이나 목회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껴갈 수 없다.

*1848년, 25세의 철도회사 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손상을 입은 후 성격이 포악해진 사건. 이를 통해 교육이나 훈련 혹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고양된다고 여겨지던 도덕성이나 심성이 단순히 인간 뇌의 부분적인 기능으로 환원되었다.



이중 양상 일원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신비로운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의식적 경험을 파악하는 동시에, 물리적 기초가 손상되면 그것이 바뀔 수 있음을 이해하고, 두 측면을 모두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가 폭넓게 이루어지도록 친절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마음이나 영혼을 돌보는 이들과 생물학적 뇌 구조를 분석하고 처치하는 의학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일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정신과 신체는 외나무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이한 두 지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리하게 두 영역의 통합을 위해 정신과 신체 사이의 다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 정신과 신체 사이에는 중요한 이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이중성 때문에 두 종류의 실체가 있다고 말하거나 실체를 단순하게 이분적으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이원론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이중 양상 일원론자”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면 종교인들에게 영성이나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의 정신적인 관계성의 문제인 동시에, 성육화된(embodied) 관계성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뇌질환을 앓던 나의 아버지의 신앙이나 영성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부실해진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우리의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정신적인 관계성일 뿐 아니라, 뇌와 신체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성의 문제였다.

   우리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하드웨어의 기반 없이 소프트웨어에만 익숙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워드프로세서도 엑셀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좀 더 중요한 신체의 기능을 도외시하거나, 아니면 신체의 기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드는 환원주의의 무모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하드웨어에 기초한 것인데, 모든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발전이 하드웨어의 기초 기능과 동일한 것이라고 환원해 버리면 지브스가 주장하는 ‘이중 양상 이원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생각에 균형감각을 주는 책

  나는 「마음 뇌 영혼 신」을 진화심리학에 매료된 지성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진화심리학은 여러 심리학 분야 중 하나로 최근 첨예한 관심을 받는 연구영역이다. 그는 진화심리학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심리학이 진화심리학으로 통폐합되고 있다는 식의 과도한 주장은 차분히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한다.

    탁월한 수학자이자 사상가이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파스칼은 “사람에게 그의 위대함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짐승을 많이 닮았다는 점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위험하다. 저속함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함만 또렷이 보게 하는 것도 위험하다. 위대함과 저속함을 둘 다 모르는 상태로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고 말했다. 지브스는 진화심리학이야말로 파스칼이 언급한 무지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브스 교수의 균형감 있는 학문성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평가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겹치는 기능에 주목하는 것도 합당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브스 교수는 특유의 혜안으로 약 10-20년 후 진화심리학 연구의 몇몇 분야는 동물과 인간의 인지적 성취와 행동 사이의 공통점과 유사성을 꼼꼼히 기록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의 인지와 행동의 독특성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여는 매력적인 대화들

   「마음 뇌 영혼 신」은 정신의 영역과 영혼의 세계를 물질과 신체 영역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 양자가 하나의 실체를 동시에 반영하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중 양상 일원론'의 관점으로 인도한다. 영혼과 신의 문제도 신체와 분리된 구별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신체를 통한 성육신 사건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신학적 진리는 신경생리학과 인지심리학의 최근 연구와도 부합되는 통합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현대 가장 첨예한 관심을 받는 뇌과학의 영역도 하나님과 우주를 관계적으로 인식하는 영혼, 종교의 영역과 결코 반대편에 있지않음을 동감하게 될 것이다. 벤의 질문 중 하나라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면, 끝까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대화이다.




권수영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프로이트와 종교」(살림),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종교와 심리학의 만남」(책세상) 등을 썼다.


다른 공기를 호흡하다 [IVP BOOK NEWS 121호]

[역자 후기]

기억의 종말
The End of Memory
미로슬라브 볼프 | 홍종락 옮김 | 12월 출간 예정



「기억의 종말」은 기억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악행을 당한 기억을 다룬다. 
이렇게 빛나는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을 몇 마디로 소개하기는 무리지만, 
아쉬운 대로 몇 가지만 말해보려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첫째, 악행을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일이기도 해야 한다. 가해자까지 고려하여 악행을 기억해야 한다니. 이렇게만 들으면 참 배부른 소리, 현실을 모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

  일본이 식민지 지배 당시 어떤 악행들을 저질렀던가.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직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그런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화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슈퍼히어로처럼 날아가 ‘악당들’을 응징이라도 하면 좋겠다. 나도 이런 마음인데 아이 본인이나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여기서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하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물론 저자가 이 정도 문제의식도 없을 리는 없다. 저자는 악행의 기억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와 관계의 회복이다. 그것이 피해자의 일방적인 용서와 이해만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배상을 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양측이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다 해도 대체로 그 성과는 불완전할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정의가 회복되고 그런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내세에 대한 소망이다. 저자의 두 번째 도발적인 주장은 내세에는 ‘기억의 종말’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다. 악행의 기억이 끝나는 때, 악행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세상이 온다. 이 말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기억하라!'는 촉구가 아니던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 쉽게 외면해 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위안부 수요 집회 모습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적당히 잊고, 적당히 끝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도 ‘기억하라’는 촉구의 정당성과 당위를 충분히 이해한다. 현세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누누이 지적한다. 그러나 내세는 하나님이 온전한 정의를 회복하실 세상이니 그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는 악행의 기억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이런 새로운 세상, 내세에 대한 소망을, 악행으로 얼룩진 이곳에서 지금 추구해야 할 관계의 청사진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관념적이고 허공에 뜬 이야기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람! 이런 생각이 든다면 평등사회의 꿈을 좇아 70년 넘게 세상의 절반을 움직였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라. 가야 할 바, 추구해야 할 그림이 없는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가.)



저자는 이 두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책의 전반부에서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단계들을 하나씩 밝힌다. 우선, 기억이 보호의 방패가 되지 못하고 공격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계하고(악행의 기억이 복수의 악순환만 낳을 수도 있다), 기억하되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들을 새긴다. 진실하게 기억하고, 치유에 보탬이 되게 기억하라. 그리고 출애굽과 그리스도 수난의 기억을 패러다임으로 삼아서 기억하라.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결론’이자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한 나는, 이 둘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신앙의 세계에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잠깐이나마 뭔가 다른 공기를 호흡한 것 같았다.


볼프에게 신학은 곧 신앙고백이지 싶다.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사색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일인 동시에 본인이 살아가야 할 현실이요 붙들어야 할 소망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하고, 잘 읽히면서도 심오하며, 거시적이면서도 개인적이고, 종말론적이면서도 현재적이며, 종교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신학서적이 진정한 경건서적이라는 말, 이 책을 읽고 비로소 공감이 갔다.


"악이 온전히 이기려면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의 승리가 필요하다. 악행이 일어날 때 첫 번째승리가 이루어지고, 악을 앙갚음할 때 두 번째 승리가 이루어진다. 첫 번째 승리 후, 두 번째 승리로 새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악은 죽고 만다. 내 경우, 악의 첫 번째 승리에 대해서는 손쓸 수 없었지만 두 번째 승리를 막을 수는 있었다. G대위가 나를 그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주목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 마음먹었다(롬 12:21). 결국, 나는 불경건한 자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한 번, 이번에는 G대위를 상대로 나는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비틀대며 걷기 시작했다. " (1장 "심문의 기억" 중에서)




홍종락 |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번역하며 배운 내용을 자기 글로 풀어낼 궁리를 하고 산다. 더 많은 그의 글을 읽고 싶다면 블로그 "번역가 홍종락의 서재를 소개합니다"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가을에는 책을 읽게 하소서 [IVP BOOK NEWS 121호]

준비된, 준비 중인 도서를 소개합니다.

신약의 모든 기도: 예수님과 사도들을 따라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다
New Testament Prayer for Everyone
톰 라이트 ㅣ 백지윤 옮김 | 8월 28일 출간


신약의 기도 한 편 한 편은 꺼져 있는/가는 우리의 희미한 기도를 다시 타오르게 하는 불씨가 되어 줄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와 바울과 초기 기독교의 기도 32편을 톰 라이트가 강해식으로 풀어낸 기도의 영성, 곧 기도의 실재.
매일 한 편씩 읽고 자신의 기도를 새롭게하기에 딱 좋다. 새벽 기도회 때 활용해도 좋겠다.
이미 풍성하게 넘치는 치열한 기도의 모범을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 반성하게 해주는 책.










문서선교사 웨슬리 웬트워스: 웨슬리와 친구들이 들려주는 소명, 학문, 그리고 교육 이야기
손봉호 외ㅣ9월 19일 출간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 한 평도 없었지만 문서 운동과 기독 지성 운동, 기독교 학교 교육 운동에 묵묵히 씨앗을 뿌린 한 사람, 그리고 그의 일생을 통해 조용한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 이야기.
50년 전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의 개인적 회고와, 그를 만나고 교제해 온 15명의 학자들이 들려주는 웨슬리 이야기를 담아 냈다.













기억의 종말 (가제)
The End of Memory
미로슬라브 볼프 | 홍종락 옮김 | 10월 출간 예정


증오와 배제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상처 입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가 잊어야 하는가?
화해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는 증오의 기억은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야 한다는 급진적 의견을 제시한다.
잘못된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정의를 위한 싸움임을 동의하면서도, 볼프는 우리가 기억하는 잘못된 방식들이 오히려 악을 허락하는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볼프 자신이 경험한 증오와 상처의 기억에 대한 성경적 성찰을 통해,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와 우리 모두의 치유의 중심임을 주장한다.
사려 깊고 예리한 추론을 통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책이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재영 | 10월 출간 예정


한국교회의 가나안 현상에 대한 최초의 종교사회학적 연구 보고서! 불현듯 도래한 1백만 가나안 성도 시대, 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나안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 상세한 설문 조사와 심층 면접을 진행해 이를 분석하고 제시한다.
또한 이와 관련된 해외의 종교사회학 연구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교회의 바른 대응을 모색한다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알라: 이슬람과 기독교의 하나님 (가제)
Allah: A Christian Response
미로슬라브 볼프 | 백지윤 옮김 | 11월 출간 예정


기독교와 이슬람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믿는 종교로서 그 숫자와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전 세계의 경계의 시선과 '이슬람 포비아'(이슬람혐오증)는 점증하고 있다.
볼프는 평화를 위협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믿는 신은 정말 다른가?" 그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나아가 볼프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종교의 다원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리를 따르는 두 종교가 사랑과 화해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 우리는 평화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Living in Christ's Presence
달라스 윌라드 | 윤종석 옮김 | 12월 출간 예정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제자도나 그리스도를 닮는 삶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나, 나 좋을 대로 사는 것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그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데는 오히려 무기력하다.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존엄함을 이해하고 영적인 삶을 통해 우리의 변화가 축복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깨닫게 해야 한다.
이 책은 달라스 윌라드의 마지막 강연인 “오늘날 하나님을 아는 지식” 컨퍼런스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각 장의 내용은 달라스 윌라드의 공적 사역을 총정리하는 결론에 해당한다.



「그리스도와 지성」의 독자들에게 [IVP BOOK NEWS 121호]

[저자 서문]

그리스도와 지성

마크 놀 | 박규태 옮김 | 252면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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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지성」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YES24교보문고알라딘인터파크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과 
갓피플몰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 및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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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2004년 10월, 이 책의 주제를 발표하도록 기회를 주셨던 한국기독교학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릴 기회를 얻은 것도 기쁜 일입니다. 당시 학회의 고무적인 반응들로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결국 이 책으로 결실 맺은 내용들을 조정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적 헌신과 끈기 있는 열정은 널리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구의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한국 교회와 해외 선교에서 그 열정과 헌신으로 이룬 많은 일을 보며 벅찹니다. 그런 열정과 헌신이 신학적 이해에 기여한 바는 부분적으로만 알 뿐이지만, 신학과 성경학과 일반 학문 영역에서 얼마나 좋은 결실들을 이루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한국 교회 안에 이미 꽃피고 있는 기독 지성이 열매로 무르익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와 지성」의 메시지는 간단히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여긴다면, 학문 활동과 연관된 모든 것을 비롯한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그분을 인도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죠. 그분의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현대 학문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성경의 계시와 그분의 사역을 요약한 위대한 기독교 신경들을 깊이 숙고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학문이라는 도전에 다가갈 때, 신경들의 주요 가르침이 어떻게 안정된 기초가 되는지 설명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학문 연구에서 그리스도인을 격려하고 이끌어 줍니다.

  이를 토대로, 그리스도에 대한 고전적 교리들이 역사학, 과학, 성경 연구 분야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는지 사례들을 보여 줍니다. 그러한 실제 사례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지적 과업의 추구를 위해 택할 유일한 방식을 규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학문적 과업을 수행할 때 의식적으로 그들 신앙 전통의 가장 심오한 보화들을 끌어오라고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말미에는 북미권 복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지적 노력의 현 주소를 평가하는 후기를 실었습니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의 분석에 이후 상황을 반영하여 갱신한 것입 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후기에 담긴 북미의 세세한 상황에만 너무 관심을 쏟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이 지음 받은” 분이자(히 1:2), “만물이 그분 안에 존속”하게 하시는 분(골 1:17)을 따를 때 한국이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지적 도전을 기꺼이 감당할 용기를 이 책을 통해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마크 놀 | 미국 역사학계를 이끄는 대표적 학자이자 존경받는 복음주의 지성이다. 1946년에 태어나 휘튼 칼리지(B.A.)와 아이오와 대학교(M.A.)에서 영문학을, 트리니티 신학교(M.A.)와 밴더빌트 대학교(Ph.D.)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27년간 휘튼 칼리지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며 강연과 집필을 통해 미국 개신교 역사와 복음주의의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성찰해 왔으며, 지금은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미국 역사학의 거장 조지 마스덴의 뒤를 이어 역사와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5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복음주의자 25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았으며, 종교와 일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하고 탁월한 학문성을 인정받아 2006년 국가 인문학 훈장(National Humanities Medal)을 받았다.

교회가 속히 교회가 되어야 하리라 [IVP BOOK NEWS 121호]


너무도 다른 교회

주일에 사랑하는 제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장년 교인 수가 2천 명이 넘어가면서, 그 교회는 분립 등 교회 몸집을 줄이는 여러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지만 타 교회 교인들은 절대 받지 않는다. 교회의 대형화를 막고 지역 교회와의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지역의 어떤 대형교회는 다른 교회 교인들까지 뺏어가려고 한다. 제자 목사의 아파트에까지 그 교회에서 전도를 왔다고 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자기 교회를 소개하고 싶다며 물러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 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자기들 교회로 끄는 호객행위를 한다. 그 교회는 탐욕스럽게 몸집을 불린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런 교회 목사는 자신이 한국 교회의 리더라도 되는 양 설치고 돌아다닌다. 교회나 목사나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창립 10주년을 맞은 어떤 교회는 매년 교인이 천 명씩 늘었다고 한다. 어떤 대형교회는 매년 수천 명 씩 몰려온다고 한다. 그런 소식을 접하며 기쁘기보다 마음이 좀 씁쓸한 것은 왜일까? 교인수가 적은 교회를 섬기는 이로서 배가 아프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서일까. 솔직히 그런 것도 없지 않을게다.

  나는 10년 동안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찾는 자 없이 싸늘하게 외면당하는 작은 교회의 설움을 뼈 속 깊이 체감하였다. 가뭄에 콩 나듯 새 교인 한 명이라도 오면 얼마나 기쁜지, 그러나 교인 한 명이라도 교회를 떠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오랫동안 수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작은 교회를 섬겨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80% 이상의 한국교회가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교인 한 명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리는 작은 교회의 옹색함과 일 년에 천 명씩 몰려드는 교회의 도도함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보다 더 심한 양극화를 보는 듯하다. 그런 교회와 목사에게 천 명 속에 한 사람의 존재감이 제대로 느껴질까.

  이렇게 특정 교회로 몰리는 현상은 그만큼 갈 만한 교회가 없다는 방증이라 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참신하고 의식 있고 설교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 목사를 중심으로 몰려들어 대형 교회를 이루는 것은 결코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다. 몇 만 명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 속에서 어떻게 친밀한 성도의 교제와 섬김을 통해 끈끈한 하나님의 가족애를 체험할 수 있을까.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여러 가지 큰일을 할 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교회의 본질은 점점 구현하기 힘들어진다.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이런 교회관을 가지고 목회하는 이들, 비록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스타 목사들 못지않게 순수하고 참신하며 실력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형교회에서의 럭셔리한 교회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교회의 열악하고 구질구질한 여건 속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라도 쓰러져가는 한국교회에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수고와 고난에 동참할 의향만 있다면 말이다.



가나안 교인들의 귀환

기존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교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으로 교회와 유리된 신자의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을 뜻한다. 팔과 다리가 몸통에 붙어 있지 않고는 머리와 연결될 수 없듯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으로 접합되어 있지 않으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없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의 전인 교회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의 가르침에서 교회와 분리된 신자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초대교회에서부터 개혁교회까지 계속 이어져 온 전통적인 신앙관이다.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교부 어거스틴은 태아가 모태를 떠나 생존할 수 없듯이 신자는 교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칼뱅도 신자는 교회라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고 그 품안에서 젖을 빨며 양육된다고 했다.그러므로 교회를 안 나가고도 신자로 산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신앙이다.

  그렇다고 가나안 교인들만 비난할 수는 없다. 과연 현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교인들을 양육하는 영적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형식과 외식으로 화석화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 생명력이 소멸된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이 자신들 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이나마 부지하려고 영적으로 질식할 것 같은 교회를 탈출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 교회와 교인들(목사를 우선적으로 포함해서)의 심각한 자성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온유하신 성령님을 너무도 오래 거스르고 근심케 하여 성령님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아마 예수님과 성령님도 가나안 교인들과 함께 기존 교회를 떠나실 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나안 교인들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교회를 떠나 참된 교회를 찾고 있는 일종의 순례자들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들 모두가 다 그렇지 아닐지라도 말이다. 성령께서 부디 그들을 인도하사 교회로 귀환시킬 날을 고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속히 교회 되어야 하리라.


박영돈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로 섬기고 있으며, 한국교회 성령 운동의 문제점을 분석한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과 한국교회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한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이상 IVP)의 저자다.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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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편집팀)

늦여름에 다가갈 IVP 신간[IVP BOOK NEWS 120호]


[출간 예정 도서]
늦여름에 다가갈 IVP 신간



그리스도와 법 
Christian Perspectives on Legal Thought part 2
로버트 코크런 외 | 이일 옮김

기독교적 관점에서 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저자들은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분석틀을 사용하여, 기독교의 여러 전통들이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와 법의 화해를 추구하는 종합주의 모델로서 로마 가톨릭의 법 이해, 법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라는 변혁주의 모델로서 칼뱅주의의 법 이해, 법에 대항하는 그리스도라는 분리주의 모델로서 급진적 종교개혁 전통과 침례교 전통의 법 이해, 법과 긴장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이원론적 모델로서 루터파의 법 이해를 살펴볼 수 있다.






마음, 뇌, 영혼, 신
Minds, Brains, Souls and Gods
말콤 지브스 | 홍종락 옮김

기독교 심리학, 성경적 상담학, 심리학에 물든 기독교라는 주제로 교회가 한바탕 뜨거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 학문과 결합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한 최근의 심리학, 특히 신경심리학에 대한 논의는 빠뜨린 채 그저 안전한 주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기독교적 심리학을 위한 신뢰할 만한 안내서의 부재가 아쉬운 상황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자 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에 의해 집필된 본서의 출간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심리학, 신경과학, 진화론, 인지과학 분야의 최신 정보를 아우르며, ‘영혼’의 존재, 결정론과 자유, 이타주의, 하나님의 인도하심, 환원주의, 진화론, 유전학 및 관련된 많은 문제들 등 기독교 신앙과 직결된 주요 심리학 문제를 다루는 본서는 심리학의 경계를 훌쩍 넘어 ‘지적으로 정직하고 검토된 신앙을 갖기 원하는 진짜 학생들의 진짜 질문’들과 씨름하도록 도전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지성, 어떻게 학문할 것인가?
Jesus Christ and the Life of the Mind
마크 놀 | 박규태 옮김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학문 활동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특히 기독교의 고전적 교리와 기독론을 탐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이를 통해 기독 지성인들이 학문 연구를 해야 하는 당위 및 동기를 부여한다. 학문 연구 및 지적 활동에 있어 기독 지성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와 연구 분야에서 어떻게 복음주의적인 학문 추구를 할 것인지를 제시하는 책으로, 신앙과 학문의 통합 논의가 좀더 근본적인 신학적 성찰에 뿌리내리도록 도울 것이다.






기독교는 타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Can Evangelicals Learn from World Religions?
제럴드 맥더모트 | 한화룡 옮김

타종교는 기독교 신앙과 공명할 수 있는가?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계시는 타종교의 지혜와 공존할 수 없는가? 지금까지 보수적인 기독교는 구원론에 집착한 나머지 복음의 계시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른 신앙을 살펴보고 배우려는 태도를 극도로 경계해 왔다. 오랫동안 종교철학을 가르쳐 온 복음주의자인 저자는 성경과 교부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전통에 근거해 이런 질문들과 오해들에 도전하고,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일목요연하게 짚어내면서 타종교 안에 기독교적 가치와 지혜가 들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말한다. 이 책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제와 대화를 적극 지지하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가 아닌 전우주적 진리임을 기억하게 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이 주제를 다룬 거의 독보적인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 성경공부 시리즈 01
창조: 하나님의 세계를 즐거워하라(가제)
한기수

건강한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 세계관을 성경공부를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교재다. 이 책에는 지난 수십 년간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인도해 온 저자의 실제적 경험이 녹아 있다. 각 과는 성경 본문을 공부하는 부분과 기독교 세계관 이론과 적용에 관해 제시된 읽을거리를 읽고 토론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역사와 배경을 이해하도록 돕는 자료를 부록으로 제공한다. 이 교재는 평범한 초신자부터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까지 다양한 배경의 멤버들을 위하여 유연한 활용 방법까지 제시한다.
*「타락: 영적인 싸움을 싸우라」, 「구속: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라」가 이어서 출간됩니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가제)
정재영

1백만 명 가나안 성도 시대, 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초 연구를 수행해 온 종교사회학자 정재영 교수가 그 동안의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책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가나안 성도에 대한 상세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 조사 결과들, 그리고 해외의 종교사회학 연구들 중 우리의 가나안 성도 현상과 유사한 현상을 분석한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부분이다.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한 교회의 올바른 대응을 모색하는 이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우주의 기원과 문화의 기원(가제)
정일권

한국의 대표적인 지라르 연구가이자 전문가인 저자는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과 자연과학의 통섭적 연구를 모색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의 연관점을 탐구하고 해설한다. 이 책에서는 빅뱅 우주론, 양자물리학 등 현대 과학의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일어난 자연신학의 르네상스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따라가며, 창조-타락-구원-완성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현대 자연과학의 발견이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 과학과 신학의 대화 속에서 지라르의 이론이 제시하는 중요한 통찰들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톰 라이트의 신약성경 기도 연구[IVP BOOK NEWS 120호]

[미리 보는 신간]
신약성경에서 배우는 기도(가제)
New Testament Prayer for Everyone
톰 라이트 | 백지윤 옮김



우리가 저녁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들어갔을 때, 전례 봉사자는 촛불을 켤 성냥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있었다. 낡은 성냥갑은 비어 있었고, 선반 뒤에 놓아두는 예비용 성냥마저 누군가 이미 써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촛불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신앙 전통에서 촛불은 하나님의 신비한 임재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다. 사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불기둥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던가. 촛불이 갖는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리 중에는 흡연자도, 라이터도 없었다. 그런데 누가 건물 건너편 부속 예배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정오 예배를 위해 켜놓았던 초 하나가 아직도 타고 있었던 것이다. 촛농이 바닥까지 흘러내려 있었지만, 심지는 아직 타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작은 불씨로부터 새 양초 두 개에 불을 옮겨 붙일 수 있었고, 안정적으로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도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성냥은 한 개도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불을 켤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 부속 예배실에 남아있던 촛불처럼,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기도들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도들은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성인(聖人)들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그 오래된 기도들이 여전히 소리 없이 타오르며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인 신약성경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때로 전혀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 삶을 엉망으로 망쳐버린 뒤 그분께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하던 사람들,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이다.

알다시피, 기도란 우리가 사는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신비로운 사실과 관련된 일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삶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맞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더 가까이 오시지 못하도록 벽을 쌓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 벽을 꿰뚫고 우리를 보시며, 때로는 벽 저편에서 부드럽게 노크를 하시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땅과 하늘이라 부르는, 우리의 실재와 하나님의 실재는 서로 꼭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 기도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즉 실제로 땅과 하늘이 만나는 핵심 장소 중 하나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기도들, 특히 계시록의 기도들은 아예 하늘에서 일어나는데, 땅에 사는 우리도 그 문가에서 엿들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땅과 하늘을 하나로 붙드시는 예수님이 계신다. 바로 그것이 그분의 삶에 기쁨과 고통이 함께 존재하던 이유다. 기쁨이 그분을 둘러싸고 일어난 새 창조 때문이었다면, 고통은 첫 창조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새 창조가 시작되는 것에 맹렬히 저항한 어두움 때문이었다. 우리가 반복해서 돌아갈 곳은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의 기도다. 새 창조의 권능과 영광을 보며 경축하시던 기도,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동산에서 고뇌하시던 기도, 그분을 따르던 자들을 위하여 다락방에서 드리셨던 엄숙하고 장엄한 기도(요 17), 또한 그분의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과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너무도 특별한 ‘주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땅과 하늘을 하나로 붙드셨으며, 스스로가 깊고 풍요로우며 때로는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리셨기에, 우리도 그 자리에 똑같이 서보라고 초대하신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그분이 이루신 성취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성령 덕분이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섰을 때 균형과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신약성경은 단지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도를 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기도 속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기도가 단지 습관이 아닌, 우리 삶의 깊은 심장박동이 되도록 도와준다. 기도, 성경 읽기, 성찬 예전( ‘성만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를 땅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근본적인 실천인데, 이 네 가지는 강물처럼 서로 합류한다.

예수님은 먼저 이 길을 걸으셨고, 우리가 이 일들을 행할 때 우리와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책은 그 중 두 가지인 기도와 성경을 다룬다. 또한, 성경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도를 돕기 위함이며, 성경에 담겨 있는 기도들이야말로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단지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가 아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게 흐르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비밀의 시냇물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언제나 그것이 실재임을 증명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기도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 자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기도들을 외워둘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해두면, 길을 걷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에도, 감자를 깎거나 잠자리에 들 때에도, 우리는 언제든지 그 기도들 안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도들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탱해주는 숨은 음악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곧 거기에 화음이나 새로운 리듬을 추가하여 즉흥 연주를 하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기도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자, 발견을 위한 항해다.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기도가 쉽든 어렵든, 신약성경에서 흘러나오는 변함없는 기도의 불빛은 언제든지 우리의 초를 위한 불씨가 되어줄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도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통해 저 유명한 찬송가에 담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인 셈이다.


내려 오소서, 오 사랑의 하나님
주께서 나의 영혼을 찾아…
불을 붙이소서, 주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불꽃으로.


과학과 신앙의 올바른 터를 세우다[IVP BOOK NEWS 120호]

과학 철학: 자연 과학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
델 라치 | 김영식·최경학 옮김 | 262면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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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철학」은 IVP 직영서점 산책(02-3141-5321)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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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로부터

추위를 머금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과학과 신앙, 오해에서 이해로!’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첫 모임은 싸늘한 날씨만큼이나 경직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IVF 중앙회관의 어느 작은 공간에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받아 보았던 연두색 책과 송인규 교수님의 꼼꼼한 강의안. 우리는 그때 불현듯 이 모임에 대해 한 가지 오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오해는 세미나에서 함께 공부하게 될 책이 상당히 생소하고 어렵다는 데 있었다. 물론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수월하게 그 목표를 이루리라 여긴 그 기대가 문제였다. 정말이지 큰 착각이었다.

이쯤에서 책 제목을 밝혀야 하겠다. 과학과 신앙 세미나에서 다루었던 문제의 책은 바로 「과학 철학」(Science & Its Limits)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이고, 과학책보다는 오히려 철학책에 더 가깝다. 이제,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철학의 부담스러운 얼굴을 살짝 들여다보자.


과학(Science), 시대별 정의 및 종교와의 관계

저자는 먼저 과학 자체에 대해 다룬다. 과학에 대한 견해를 크게 세 시기, 즉 17-20세기 중반, 1960-1970년대, 오늘날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구분을 위해 객관성, 경험성, 합리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객관성은 과학 활동과 인간의 주관성과의 관계를, 경험성은 과학 활동과 관찰 가능한 경험 자료와의 관계를, 마지막 합리성은 과학 활동과 추론 과정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첫 번째 시기의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 활동에 과학자의 주관적 전제가 개입해서는 안 되고(객관성↑), 철저히 관찰 가능한 경험에만 근거해야 하며(경험성↑), 논리적 추론 과정을 통해서만 과학적 결과물이 도출되어야 한다(합리성↑).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두 번째 시기에 와서 뒤집힌다. 토마스 쿤으로 대변되는 급진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 활동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과학자의 주관적 선입견이고(객관성↓), 그러한 방향성은 경험적 자료의 영향을 미약하게만 받으며(경험성↓),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추론보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영향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합리성↓).

첫 번째 시기에는 과학을 순전한 사실의 문제로 다루지만, 두 번째 시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가치의 문제로 여긴다. 한편 오늘날은 그 양극단의 주장을 적절히 받아들이며 중도를 걷고자 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기도 하지만 또한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 시기의 견해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 시기의 전통적 견해는 과학과 종교가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두 번째 시기의 급진적 견해는 과학과 종교가 혼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세 번째 시기에는 중도적인 견해가 우세한데, 이는 과학과 종교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중 과학에 대한 중도적 견해를 지지하며 그에 따른 과학과 종교의 적절한 연관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는 날카롭게 분리되거나 무분별하게 혼합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통합의 가능성에서 기독교 신앙을 과학 활동 안에 정당하게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과학의 한계(Its Limits) 속에서 등장하는 지적 설계

한편 저자는 과학의 한계를 드러내며 지적 설계를 넌지시 내세운다. 과학은 그 자신의 토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가령 과학은 ‘균일성의 원리’, 즉 자연이 균일하다는 가정을 증명 없이 그저 받아들인다.

과학은 ‘목적’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과학이 ‘목적’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특히 관찰될 수 없다는 이유로 ‘목적’이 과학 영역에서 거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게 따지면 전자와 쿼크, 장같이 직접 관찰될 수 없는 것들도 과학의 영역에서 제외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목적’은 과학에서 으뜸가는 설명적 범주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자는 ‘목적’을 과학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모든 것을 자연주의적 설명으로 환원하려는 과학주의의 부당성을 언급한다. 관찰 가능한 것만 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그 자연주의 세계관은 기실 많은 문제점이 있고, 바로 여기에서 과학의 진정한 한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저자는 자연주의 세계관에 근거한 과학의 문제점과 한계에서, 그 과학이 희생시킨 ‘목적’ 개념을 포함하는 지적 설계를 등장시킨다. 지적 설계가 과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속내는 분명하다.


이해를 향하여

이 책은 드러나는 현상뿐 아니라 현상 이면의 본질과 개념을 다룬다는 점에서 세계관적이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중립적으로 각 입장을 소개하기에 교과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과학 철학의 개념어들과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저자의 입장 때문에 당황했고, 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 과학에 대한 피상적이고 치우친 이해에서 벗어나,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방식에 대해 심도 있고 균형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세미나가 앞으로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향후 열릴 과학과 신앙 세미나를 통해 과학과 신앙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더욱더 성숙해지리라는 기대도 커졌다.

세미나 마지막 날, 함께했던 멤버 모두가 다음에 열릴 ‘과학과 신앙 세미나’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랬다. 돌아보니 마지막 날은 첫 날과 달리 몇 가지 바뀐 점이 있었다. 초여름의 화창한 날씨, 자리를 옮겨 넓어진 세미나 장소,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 그리고 오해가 아닌 이해 말이다.



김태민|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다니엘새시대교회에서 중고등부를 섬기고 있다. 신학과 철학의 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역에 있어서는 신앙과 삶의 통합에 힘쓰고 있다.


북미 기독교 역사가 마크 놀이 던지는 새로운 화두, 세계 기독교 역사[IVP BOOK NEWS 120호]


[서평]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마크 놀 | 박세혁 옮김 | 264면 | 14,000원
*2010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선교·국제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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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과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 및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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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놀, 세계 기독교를 만나다

일반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저명한 미국 역사가 마크 놀은 미국 기독교 역사 분야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교회역사학자다. 우리 독자에게는「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놀은 이 책에서 1940년대 이래 근본주의의 반지성주의를 반대하며 태동한 미국 복음주의가 1990년대에도 이전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반지성주의라는 스캔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적나라하게 쏟아냈다. 

그러나 놀의 애독자라면 그의 비판이 애정 어린 자기 고백이자 자아비판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또한 미국 기독교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역사가인 놀의 이 작품이 미국 기독교 역사 전반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과거의 실재와 오늘날의 현실을 비교하여 조망한 균형 잡힌 비평서라는 것도 알 것이다. 물론 한국 독자들은 놀이 미국 복음주의에 휘두른 비판의 칼날이, 놀이 비판한 미국 복음주의와 똑같은 여러 문제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난제를 안고 표류하는 한국 복음주의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중략)

놀은 아마도 1993년 어간부터 미국의 범위를 넘어 더 넓은 세계 기독교의 지형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그 역사에 관심을 보인 것 같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세계 기독교에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들게 된 계기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부 비서구기독교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앤드루 월스의 논문 모음집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1996)이었다. 월스는 기독교 역사에 접근하는 서구 학계의 전통적인 연구 방식으로는 실제 선교 활동을 통해 진행되어 온 기독교 확장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차지하는 비서구 기독교의 존재와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기독교 무게중심의 남반구 이동’이라는 상황을 처음 인식하고 학문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었다. 

놀은 월스의 책을 읽고 큰 도전을 받았으며 다음 해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3월 호에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복음 메시지가 ‘번역’된다는 것은 바로 기독교 신앙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기독교 역사 전체는 신앙이 각 지역 상황과 배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일련의 과정을 증언하는 것”이라는 서평을 남겼다. (중략)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

놀이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의 공통점이라고 보는 요소는 일곱 가지다. 

1) 자율적인 현지 교회다. 18세기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자치하는 자율적 교회를 이룬 미국 교회의 경험은, 20세기가 시작된 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선교사가 주도하는 교회에서 한국인 지도자가 이끄는 교회로 바뀌기 시작한 한국 교회 자치 경험의 모범이다. 

2) 미국 교회가 독립혁명 당시 반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기독교를 형성한 것처럼, 한국 교회 역시 3·1운동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투사가 되어 민족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 한국인의 교회가 되었다. 

3) 영어 성경이 미국인의 의식과 삶의 태도, 가치관의 전반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미친 것처럼,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4) 기독교가 근대성과 동일시되었다는 측면에서 미국과 한국은 독특하다. 놀이 보기에 한국은 많은 지식인이 기독교를 근대성, 서구성, 진보성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수용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험을 닮았다. 

5) 미국에서는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등이,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기독교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놀은 양국 교회가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성장을 이루었다는 요소에 주목한다. 

6) 1차, 2차 대각성이 미국 기독교를 전반적으로 개인주의적·회심주의적·체험적·행동주의적인 복음주의 종교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처럼, 1900년대 초 원산과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은 미국과 유사한 방식과 특징으로 한국 기독교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7) 한때 피선교국이었던 미국과 한국이 독립 이후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선교 국가로 변모한 과정도 유사점으로 꼽는다.

물론 놀은 이런 역사적 경험의 유사성과 평행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두 나라 기독교의 차이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미국은 독립 전후 일관되게 기독교 문명이 지배하는 나라였으므로 한국처럼 외부에서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 및 변화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점, 외세에 지배당하며 당한 고통을 미국은 한국만큼 크게 느끼지 못했다는 점, 한국에서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조우한 강력하고 이질적인 동양 사상과 철학, 문화 배경 등이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서로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 기독교와 미국 기독교 간 상호 관계는 대체로 일방적이었다는 점 등이다. 

결국 놀은 한국 기독교에 미국 기독교가 아주 큰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지만, 그 영향이 절대적이라기보다 역사적 배경과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미국 기독교가 지난 200년 동안 발전시켜 온 유형을 한국 기독교가 따르고 있다고 판단한다.



기독교사 연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

놀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선교학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자신의 미국 기독교 역사 해석에 몇 가지 통찰을 가미한다. 이런 해석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패권주의와 기독교 선교 간의 관계를 밀접하게 연결 지으며 기독교 선교사를 문화적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보는 탈식민주의자 혹은 수정주의 역사가의 비난을 피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문화,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미국 기독교의 형식과 영향력을 여전히 절대화하거나 우월시하는 많은 미국 기독교인(과 한국 및 비서구의 보수적 기독교인)에게도, 문화와 종교란 그렇게 단순한 메커니즘 위에서 일방적으로 이식되거나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만, 놀이 이 분야의 새로운 통찰과 발견을 주도한 선구적 선교학자가 아니라 공론화 및 대중화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은 역사가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이 과정의 더 복잡하고 세밀한 양상과 관련된 신학적·선교학적 논의를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또한 그가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고 제시한 것들에 대해서, 겉으로 분명해 보이는 각 공통성 내부에 전혀 다른 세부적 차이점이 공존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했다는 지적을 한국사와 기독교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서 받을 수 있다.

이 책이 세계 기독교 현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권위서는 아니다. 앞서 나온 선구적 작품들과, 이어서 나올 수많은 신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연결해 주는 눈에 띄는 징검다리 같은 작품이다. 현대 기독교사, 한국 기독교사, 미국 기독교사, 세계 기독교학, 선교학, 복음주의 역사 등 관련 학문의 최근 동향에 관심을 품고 이 세계로 여행하려는 이들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신뢰할 만한 안내서다.


*이 글은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에 수록된 해설의 일부분입니다.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외 여러 학교에서 교회사와 선교학을 가르치며, 근래에「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를 출간했다. 한 아내의 남편, 한 아들과 한 딸의 아빠로, 한 방에서 오글거리며 사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의 아름다운 삶을 만나다[IVP BOOK NEWS 120호]


[서평]
아펜젤러
조선에 온 첫 번째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의 시작 이야기
윌리엄 그리피스 | 이만열 옮김 | 양장 360면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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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과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 및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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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새롭게 단장한「아펜젤러」

올해에는 아펜젤러·언더우드 내한 130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다. 학술 심포지엄 등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무엇보다「아펜젤러」가 출간되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 책은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1985년에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되었던 것을 아펜젤러·언더우드 내한 130주년을 맞이하여「언더우드」와 함께 재출간한 것이다. 한국 사학계의 대학자인 이만열 교수가 이 책을 잘 번역하고, 친절하고 세밀한 각주를 달아 독자들이 올바른 이해를 갖게 해주신 데 감사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한국 땅을 최초로 밟은 두 개척 선교사의 이름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에는 H. G.라는 같은 약자가 들어 있다. 그래서 이들을 두 H. G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자의 나라 한국」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그리피스는 아펜젤러 사망 10년 뒤에 그의 일기와 보고서 등의 자료를 토대로「아펜젤러」를 저술했다. 한국 기독교는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런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이끈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의 전기는 이 책을 제외하고는 없는 형편이다. 이 책은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의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44년 선교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게 하고, 당시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이 아펜젤러의 눈물과 희생 그리고 선교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여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고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우는 데 공헌하리라 생각한다.


섬김의 개척자 아펜젤러

대학 시절에 들었던 교양 수업 시간, 교수는 아펜젤러를‘아편셀러’라고 부르며 그가 제국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아편을 팔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지극히 지엽적인 이해가 아닐 수 없다[알고 보니 Appenzeller를‘아편설라(亞篇薛羅)’, ‘아펜셀라’, ‘아펜셀러’, ‘아펜젤러’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더라]. 아펜젤러와 관련 있는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원(중고등학교, 대학교)은 반대로 아펜젤러를 지나치게 추앙하지 않나 한다. 한국인은 과연 아펜젤러를 어떻게,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펜젤러는 임마누엘 개혁교회 출신이었는데, 회심 이후 랭커스터 제일감리교회 기도회와 속회에 매력을 느껴 1879년에 감리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감리교 사관학교인 드루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에 다니며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가려 했으나 절친한 친구 워즈워스가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를 대신해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와서 17년 동안“현명한 건축자로서 폭넓은 기초를 다짐으로써 그 위에 다른 사람들이 훌륭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p. 228).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한 그는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데 앞장섰고, 그 일을 위해 목포로 가던 중 순직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의 교훈을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라고 풀어씀)으로 삼았는데, 그 자신부터죽는 순간까지 남을 섬기는 큰 사랑을 보여 주었다.

아펜젤러는 이론과 실천에 모두 정통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강한 한국 교회와 달리, 아펜젤러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똑같이 돌보는 통전적인 영성을 지녔다. 또한 그는 어려운 순간에도 재미난 요소를 찾아내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리라.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명 깊었던 장은 23장 ‘복음의 동역자들’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 최상의 성과를 거두려면, 선교사는 협동할 줄 아는 성격을 지녀야 한다”(p. 265). 힘든 짐을 서로 나누어 지고 공감하며 진실하게 협동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매고 있는 굴레를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라는 아펜젤러의 제물포항 도착 기도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아직도 유효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이 책을 읽는 진지한 독자들이 이 나라의 백성들을 얽매고 있는 굴레를 끊어 내고 기독교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펜젤러를 만나라, 그러한 삶에 도전하라

개인적인 아쉬움은 재출간 과정에서 이전 판에 있던 아펜젤러 관련 자료와 이만열 교수의 아펜젤러의 교육, 복음전도 활동 자료가 부분적으로만 실렸다는 것이다. 더 관심 있는 독자는 옮긴이 서문에 언급된 것을 참조해서 읽기를 바란다.

옥에 티가 있다면 감리교 청년회인 ‘엡웟 청년회’가 ‘엡워스 청년회’로 표기된 것과 ‘속회’가 ‘조 모임’으로 번역된 것이다. 엡웟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출생지 이름(Epworth)에서 따온 것인데, 바뀐 우리말 표기를 따라 바꾸었다. ‘성서번역위원회’도 출판사 편집 방침에 따라 ‘성경번역위원회’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대한민국 돌아가는 정세를 보며 고종의 대한제국 시대 상황을 연상한다. 이 책을 통해 그 시절을 깊이 음미하면서 목숨을 바쳐 한국 근대화와 선교 활동에 힘썼던 아펜젤러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를 생생하게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아펜젤러의 생애와 신학을 담은 한국 신학자의 책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는 처음 한국에 온 선교사뿐 아니라 아펜젤러 같은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이후의 많은 선교사들에 관한 저술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선교사로 나가, 그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실질적인 아펜젤러의 후예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김영명| 춘천 상걸리교회 담임목사와 삼원서원 원장으로 있으며, 「정경옥: 한국 감리교 신학의 개척자」(살림), 「기독교, 한국에 살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공저), 「동부연회 순교자 열전」(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공저) 등을 썼다.


가족이 함께 읽는 IVP 그림책 시리즈[IVP BOOK NEWS 120호]

이번에 IVP에서 오랜만에 나온 그림책 <뜻밖의 손님>의 주요 독자가 
20-30대 여성인 것, 알고 계셨나요?

그.래.서! 가족이 함께 IVP 그림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세대별 추천 그림책을 선정해 봤습니다. 
(물론 모든 연령이 이 그림책들 각각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요!)

뜨거운 여름 휴가를 즐기듯 
가족들과 IVP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눠 보시면 어떨까요?

+독자 여러분이 남겨 주신 후기로 만나 보세요!

| 어린이에게 추천하는 |

어린이를 위한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로버트 멍어 | 혜인이와 아빠 옮김 | 신은재 그림 | 51면 | 8,000원

건강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 내 출산 준비품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책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다. 만삭의 배를 안고 남편을 따라 기독교서점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책. 발견한 기쁨이 너무 커서 집에 오는 내내 쓰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친정에서 몸을 풀면서도 어서어서 가져다 달라고해 암것도 모르고 버둥거리기만 하는 아들녀석에게 내내 읽어주곤 했었다.

기독교인 부모라면 어떻게 자연스러운 신앙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시리라 믿는다. 아들 녀석이 두 해 넘게 자라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게 첫째 되는 나의 고민이니까. 예수님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친근하게 동행하시는 진리를 쉽게 전해주는 이 책이 그래서 참 소중하다. _건강맘(알라딘) 서평 자세히 읽기



유진 피터슨의 아주 특별한 선물
유진 피터슨 | 지인이와 아빠 옮김 | 윌 테리 그림 | 37면 | 7,500원

이 책의 내용은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지혜는 마치 보석같이 가치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선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단비가 선물을 미리 보게 해 달라고 조르지만 아빠와 엄마는 단호하게 원칙을 지키고 가르침의 기회로 삼습니다. 이런 원칙을 가진 단호한 양육태도도 부모로써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단비의 아빠는 "선물은 누가 주면 받는 것이지, 자기가 나서서 움켜쥐는 것이 아니란다." 는 교훈을 단비에게 심어줍니다. 단비는 그것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도깨비를 만나면서 도깨비가 자신에게 선물이 됨을 느낍니다. _sks00***(인터파크) 서평 자세히 읽기


| 청소년에게 추천하는 |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로버트 멍어 | 편집부 옮김 | 신은재 그림 | 7,000원

내 방속의 쿠우 병들을 버릴 수 있게 했던 묘한 힘이 있는 책이다. (중략) 어떤 내용이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며, 알려지게 되었을까? 책의 내용은 굉장히 단순하다. 저자는 한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집을 그리고 있다. 그 마음속집에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셔서 주인공이 주님과 함께 자신의 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정리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나의서재, 내 욕구가 넘쳐 흐르는 주방.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벽장까지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의 집의 주인을 그리스도께로 맡긴다. _하늘향기(YES24) 서평 자세히 읽기



거지인가 왕자인가?
로버트 멍어 | 편집부 옮김 | 신은재 그림 | 56면 | 7,000원

과연 우리는 어떻게 변화된 삶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을 받아 누릴 것인가? 저자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자리바꿈”이란 말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바꿈은 항상 두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사실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직도 삶의 어떤 부분을 나 자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자리바꿈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에게서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들여 내 안에 살아계시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리바꿈을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김, 양도, 또는 헌신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 단계를 신뢰, 혹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저자는 변화된 삶을 위한 이러한 각 단계를 우리로 하여금 매우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하고, 또한 예화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실제에 이르도록 도와주고 있다. 참으로 통쾌한 일이다!_마스길(알라딘) 서평 자세히 읽기


인내-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
빌 하이벨스 | 박영민 옮김 | 서영경 그림 | 56면 | 7,000원

저자는 오늘날 시대를 즉석자동화시대(instamaticera: instant와 automatic을 합해 만든 말)라고 말한다.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만큼 매 순간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습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기없는 '인내'라는 성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인내는 비전을 현실화 시킨다는 것이다. 비전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와도 정작 인내라는 덕목이 없다면 비전을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게 울리고 몽롱한 환상에 불과 할 뿐이다. 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 그것이 인내다. _박문수(갓피플몰) 서평 더 보기


| 젊은이에게 추천하는 |


참 사랑은 그 어디에
마스미 토요토미 | 편집부 옮김 | 신은재 그림 | 56면 | 7,000원

인생은 크게 세 가지의 사랑을 당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네가 이러저러 하다면...' 혹은 '난 네가 이렇기 때문에...'의 사랑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난 네가 그렇다고 해도 사랑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실로, 이 사랑을 사람은 잔인하게도 자기의 의지대로 선택하면서 살아야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아무런 인간의 노력없이 믿기만 하면 소유하게 되는 것임을 소개하고 있다._김기승(갓피플몰) 서평 자세히 읽기




용기-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빌 하이벨스 | 박영민 옮김 | 강정민 그림 | 56면 | 7,000원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이들이 꼭 봐야 할 책이다. 죄를 하나님께 정직히 고백하는 용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실하게 소통하는 용기, 일터에서 도덕적으로 행하는 용기. 이 모든 일이 비록 거창하지는 않아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매일의 소명임을 다시금 돌아본다.
_pourlove23(교보문고) 서평 더 보기





뜻밖의 손님-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
데이비드 짐머만 | 이지혜 옮김 | 최정인 그림 | 64면 | 8,000원

나와 너무 비슷한 주인공의 처지와 내 모습을 보는 듯 한 일터에서의 모습들,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맞았나’ 싶었다.
내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일터에선 일만 했고, 관심은 커녕 오히려 외면했다. 일터이니 편치 않은 건 당연하다 여겼고, 배려하는 모습보다는 내가 한 일의 경중을, 일의 양을 계속 계산하며 더 많이 하지 않으려 했다. 손해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내 모습은 십자가진 기독교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복음’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_xcandycx(교보문고) 서평 전문 꼭 읽어 보세요!


| 부모님께 추천하는 |


용서-상처를 치유하는 사랑
단 해밀턴 | 편집부 옮김 | 조은희 그림 | 64면 | 7,000원

누군가를 미워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분이 풀리지 않는 그 증오의 마음을 계속 간직하다 보면 오히려 그 증오가 나를 죽여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죽는다고 한들 분이 풀리겠는가. 그저 다시 오지 못할 지나간 일에 대한 끝없는 방법없는 원망인 셈이다.
이 책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짧은 내용이지만 강한 임팩트를 가지고, 증오가 방법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임을 말한다. 선물용으로 좋은책. _이명준(갓피플몰) 서평 더 읽기


내 마음의 과일나무
엘리사 모건 | 김유리 옮김 | 최정인 그림 | 64면 | 7,000원

짧은 시간 읽어 내려간 짧은 글이었지만 내 마음의 정원을 들여다 보게 되는 긴~ 시간이었다. 나는 내 마음의 정원에서 어떤 나무기 심겨져 있고 어떤 열매가 맺히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라빠져 나뒹구는 열매와 잡초와 가시덤불, 메마른 땅이 눈에 들어왔다.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만 아는 믿음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 열매맺지 못하는 삶은 죽은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내마음 그리스도의 집에서는 집의 구석구석을 오픈하고 청소를하게 했다면 여기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정리된 정원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_김은경(갓피플몰) 서평 자세히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