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0일 목요일

다른 공기를 호흡하다 [IVP BOOK NEWS 121호]

[역자 후기]

기억의 종말
The End of Memory
미로슬라브 볼프 | 홍종락 옮김 | 12월 출간 예정



「기억의 종말」은 기억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악행을 당한 기억을 다룬다. 
이렇게 빛나는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을 몇 마디로 소개하기는 무리지만, 
아쉬운 대로 몇 가지만 말해보려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첫째, 악행을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일이기도 해야 한다. 가해자까지 고려하여 악행을 기억해야 한다니. 이렇게만 들으면 참 배부른 소리, 현실을 모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

  일본이 식민지 지배 당시 어떤 악행들을 저질렀던가.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직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그런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화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슈퍼히어로처럼 날아가 ‘악당들’을 응징이라도 하면 좋겠다. 나도 이런 마음인데 아이 본인이나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여기서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하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물론 저자가 이 정도 문제의식도 없을 리는 없다. 저자는 악행의 기억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와 관계의 회복이다. 그것이 피해자의 일방적인 용서와 이해만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배상을 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양측이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다 해도 대체로 그 성과는 불완전할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정의가 회복되고 그런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내세에 대한 소망이다. 저자의 두 번째 도발적인 주장은 내세에는 ‘기억의 종말’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다. 악행의 기억이 끝나는 때, 악행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세상이 온다. 이 말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기억하라!'는 촉구가 아니던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 쉽게 외면해 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위안부 수요 집회 모습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적당히 잊고, 적당히 끝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도 ‘기억하라’는 촉구의 정당성과 당위를 충분히 이해한다. 현세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누누이 지적한다. 그러나 내세는 하나님이 온전한 정의를 회복하실 세상이니 그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는 악행의 기억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이런 새로운 세상, 내세에 대한 소망을, 악행으로 얼룩진 이곳에서 지금 추구해야 할 관계의 청사진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관념적이고 허공에 뜬 이야기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람! 이런 생각이 든다면 평등사회의 꿈을 좇아 70년 넘게 세상의 절반을 움직였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라. 가야 할 바, 추구해야 할 그림이 없는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가.)



저자는 이 두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책의 전반부에서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단계들을 하나씩 밝힌다. 우선, 기억이 보호의 방패가 되지 못하고 공격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계하고(악행의 기억이 복수의 악순환만 낳을 수도 있다), 기억하되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들을 새긴다. 진실하게 기억하고, 치유에 보탬이 되게 기억하라. 그리고 출애굽과 그리스도 수난의 기억을 패러다임으로 삼아서 기억하라.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결론’이자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한 나는, 이 둘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신앙의 세계에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잠깐이나마 뭔가 다른 공기를 호흡한 것 같았다.


볼프에게 신학은 곧 신앙고백이지 싶다.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사색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일인 동시에 본인이 살아가야 할 현실이요 붙들어야 할 소망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하고, 잘 읽히면서도 심오하며, 거시적이면서도 개인적이고, 종말론적이면서도 현재적이며, 종교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신학서적이 진정한 경건서적이라는 말, 이 책을 읽고 비로소 공감이 갔다.


"악이 온전히 이기려면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의 승리가 필요하다. 악행이 일어날 때 첫 번째승리가 이루어지고, 악을 앙갚음할 때 두 번째 승리가 이루어진다. 첫 번째 승리 후, 두 번째 승리로 새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악은 죽고 만다. 내 경우, 악의 첫 번째 승리에 대해서는 손쓸 수 없었지만 두 번째 승리를 막을 수는 있었다. G대위가 나를 그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주목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 마음먹었다(롬 12:21). 결국, 나는 불경건한 자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한 번, 이번에는 G대위를 상대로 나는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비틀대며 걷기 시작했다. " (1장 "심문의 기억" 중에서)




홍종락 |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번역하며 배운 내용을 자기 글로 풀어낼 궁리를 하고 산다. 더 많은 그의 글을 읽고 싶다면 블로그 "번역가 홍종락의 서재를 소개합니다"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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