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뇌 영혼 신
심리학과 신앙에 관한 허심탄회한 대화
말콤 지브스 | 홍종락 옮김 | 304면 | 15,000원
나의 아버지는 뇌질환을 앓으셨다. 뇌출혈로 돌아가시기 전, 나는 아버지의 뇌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 그동안 아버지의 모든 영적인 실천을 무참하게 뭉겨버리는 듯한 장면을 목격했다. 60년 동안 경건한 예배의 삶을 이어오시던 아버지는 멍하니 설교를 듣다가 웃음을 터뜨리시곤 했다. 그것도 자주.
당시 나는 과학적 방법론에 다소 익숙한 신학도로서 인간의 뇌에서 발생한 물리적 혹은 화학적 변화가 주는 영향력이 한 인간의 오랜 신앙 여정을 여지없이 뒤흔들 수 있다는 반격에 사뭇 긴장했다. 신앙의 유지는 뇌 안의 뉴런의 건강한 기능이 전제돼야 한다는 엄연한 가설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인간의 종교심의 구성요소를 단순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논증하는 일을 넘어서, 훨씬 광대하고 연계성 있는 학제간 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안의 소리를 연결하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 종교 분야의 접점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말콤 지브스 교수의 「마음 뇌 영혼 신」은 인간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 곧 '나는 누구인가'(who I am)라는 철학적·종교적 질문과 '나는 무엇인가'(what I am)라는 과학적 질문의 합류 가능성을 묻는 모두에게 친절한 필체로 최고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우리 내면에서 쉬지 않고 일어날 만한 흔한 질문들을 끈질기게 묻는 호기심 많은 대학생 벤이 등장하고, 벤의 질문에 노교수 말콤은 쉽고 명료하게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인 노력들을 소개한다.
말콤 지브스는 게이지 논쟁*이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엮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거둔 학자로 인정받는다. 발달심리학과 치료 분야, 인지심리학 분야, 뇌 영상 촬영 기술 등은 이제 서로 밀접하게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 관심을 소통시키며 발전해 왔다. 특히 영혼에 대한 종교적인 연구도 이러한 소통 구조 안에 위치시키려고 애써 왔다. 그래서 내담자들이나 교인들의 영혼의 상처를 감싸 안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중간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는 기독교 상담가들이나 목회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껴갈 수 없다.
*1848년, 25세의 철도회사 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손상을 입은 후 성격이 포악해진 사건. 이를 통해 교육이나 훈련 혹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고양된다고 여겨지던 도덕성이나 심성이 단순히 인간 뇌의 부분적인 기능으로 환원되었다.
이중 양상 일원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신비로운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의식적 경험을 파악하는 동시에, 물리적 기초가 손상되면 그것이 바뀔 수 있음을 이해하고, 두 측면을 모두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가 폭넓게 이루어지도록 친절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마음이나 영혼을 돌보는 이들과 생물학적 뇌 구조를 분석하고 처치하는 의학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일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정신과 신체는 외나무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이한 두 지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리하게 두 영역의 통합을 위해 정신과 신체 사이의 다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 정신과 신체 사이에는 중요한 이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이중성 때문에 두 종류의 실체가 있다고 말하거나 실체를 단순하게 이분적으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이원론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이중 양상 일원론자”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면 종교인들에게 영성이나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의 정신적인 관계성의 문제인 동시에, 성육화된(embodied) 관계성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뇌질환을 앓던 나의 아버지의 신앙이나 영성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부실해진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우리의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정신적인 관계성일 뿐 아니라, 뇌와 신체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성의 문제였다.
우리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하드웨어의 기반 없이 소프트웨어에만 익숙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워드프로세서도 엑셀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좀 더 중요한 신체의 기능을 도외시하거나, 아니면 신체의 기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드는 환원주의의 무모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하드웨어에 기초한 것인데, 모든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발전이 하드웨어의 기초 기능과 동일한 것이라고 환원해 버리면 지브스가 주장하는 ‘이중 양상 이원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생각에 균형감각을 주는 책
나는 「마음 뇌 영혼 신」을 진화심리학에 매료된 지성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진화심리학은 여러 심리학 분야 중 하나로 최근 첨예한 관심을 받는 연구영역이다. 그는 진화심리학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심리학이 진화심리학으로 통폐합되고 있다는 식의 과도한 주장은 차분히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한다.
탁월한 수학자이자 사상가이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파스칼은 “사람에게 그의 위대함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짐승을 많이 닮았다는 점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위험하다. 저속함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함만 또렷이 보게 하는 것도 위험하다. 위대함과 저속함을 둘 다 모르는 상태로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고 말했다. 지브스는 진화심리학이야말로 파스칼이 언급한 무지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브스 교수의 균형감 있는 학문성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평가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겹치는 기능에 주목하는 것도 합당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브스 교수는 특유의 혜안으로 약 10-20년 후 진화심리학 연구의 몇몇 분야는 동물과 인간의 인지적 성취와 행동 사이의 공통점과 유사성을 꼼꼼히 기록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의 인지와 행동의 독특성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여는 매력적인 대화들
「마음 뇌 영혼 신」은 정신의 영역과 영혼의 세계를 물질과 신체 영역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 양자가 하나의 실체를 동시에 반영하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중 양상 일원론'의 관점으로 인도한다. 영혼과 신의 문제도 신체와 분리된 구별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신체를 통한 성육신 사건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신학적 진리는 신경생리학과 인지심리학의 최근 연구와도 부합되는 통합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현대 가장 첨예한 관심을 받는 뇌과학의 영역도 하나님과 우주를 관계적으로 인식하는 영혼, 종교의 영역과 결코 반대편에 있지않음을 동감하게 될 것이다. 벤의 질문 중 하나라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면, 끝까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대화이다.
권수영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프로이트와 종교」(살림),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종교와 심리학의 만남」(책세상) 등을 썼다.
말콤 지브스 | 홍종락 옮김 | 304면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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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뇌 영혼 신」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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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과학적 방법론에 다소 익숙한 신학도로서 인간의 뇌에서 발생한 물리적 혹은 화학적 변화가 주는 영향력이 한 인간의 오랜 신앙 여정을 여지없이 뒤흔들 수 있다는 반격에 사뭇 긴장했다. 신앙의 유지는 뇌 안의 뉴런의 건강한 기능이 전제돼야 한다는 엄연한 가설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인간의 종교심의 구성요소를 단순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논증하는 일을 넘어서, 훨씬 광대하고 연계성 있는 학제간 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안의 소리를 연결하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 종교 분야의 접점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말콤 지브스 교수의 「마음 뇌 영혼 신」은 인간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 곧 '나는 누구인가'(who I am)라는 철학적·종교적 질문과 '나는 무엇인가'(what I am)라는 과학적 질문의 합류 가능성을 묻는 모두에게 친절한 필체로 최고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우리 내면에서 쉬지 않고 일어날 만한 흔한 질문들을 끈질기게 묻는 호기심 많은 대학생 벤이 등장하고, 벤의 질문에 노교수 말콤은 쉽고 명료하게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인 노력들을 소개한다.
말콤 지브스는 게이지 논쟁*이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엮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거둔 학자로 인정받는다. 발달심리학과 치료 분야, 인지심리학 분야, 뇌 영상 촬영 기술 등은 이제 서로 밀접하게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 관심을 소통시키며 발전해 왔다. 특히 영혼에 대한 종교적인 연구도 이러한 소통 구조 안에 위치시키려고 애써 왔다. 그래서 내담자들이나 교인들의 영혼의 상처를 감싸 안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중간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는 기독교 상담가들이나 목회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껴갈 수 없다.
*1848년, 25세의 철도회사 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손상을 입은 후 성격이 포악해진 사건. 이를 통해 교육이나 훈련 혹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고양된다고 여겨지던 도덕성이나 심성이 단순히 인간 뇌의 부분적인 기능으로 환원되었다.
이중 양상 일원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신비로운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의식적 경험을 파악하는 동시에, 물리적 기초가 손상되면 그것이 바뀔 수 있음을 이해하고, 두 측면을 모두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가 폭넓게 이루어지도록 친절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마음이나 영혼을 돌보는 이들과 생물학적 뇌 구조를 분석하고 처치하는 의학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일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정신과 신체는 외나무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이한 두 지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리하게 두 영역의 통합을 위해 정신과 신체 사이의 다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 정신과 신체 사이에는 중요한 이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이중성 때문에 두 종류의 실체가 있다고 말하거나 실체를 단순하게 이분적으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이원론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이중 양상 일원론자”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면 종교인들에게 영성이나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의 정신적인 관계성의 문제인 동시에, 성육화된(embodied) 관계성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뇌질환을 앓던 나의 아버지의 신앙이나 영성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부실해진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우리의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정신적인 관계성일 뿐 아니라, 뇌와 신체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성의 문제였다.
우리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하드웨어의 기반 없이 소프트웨어에만 익숙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워드프로세서도 엑셀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좀 더 중요한 신체의 기능을 도외시하거나, 아니면 신체의 기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드는 환원주의의 무모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하드웨어에 기초한 것인데, 모든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발전이 하드웨어의 기초 기능과 동일한 것이라고 환원해 버리면 지브스가 주장하는 ‘이중 양상 이원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생각에 균형감각을 주는 책
나는 「마음 뇌 영혼 신」을 진화심리학에 매료된 지성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진화심리학은 여러 심리학 분야 중 하나로 최근 첨예한 관심을 받는 연구영역이다. 그는 진화심리학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심리학이 진화심리학으로 통폐합되고 있다는 식의 과도한 주장은 차분히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한다.
탁월한 수학자이자 사상가이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파스칼은 “사람에게 그의 위대함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짐승을 많이 닮았다는 점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위험하다. 저속함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함만 또렷이 보게 하는 것도 위험하다. 위대함과 저속함을 둘 다 모르는 상태로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고 말했다. 지브스는 진화심리학이야말로 파스칼이 언급한 무지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브스 교수의 균형감 있는 학문성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평가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겹치는 기능에 주목하는 것도 합당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브스 교수는 특유의 혜안으로 약 10-20년 후 진화심리학 연구의 몇몇 분야는 동물과 인간의 인지적 성취와 행동 사이의 공통점과 유사성을 꼼꼼히 기록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의 인지와 행동의 독특성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여는 매력적인 대화들
「마음 뇌 영혼 신」은 정신의 영역과 영혼의 세계를 물질과 신체 영역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 양자가 하나의 실체를 동시에 반영하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중 양상 일원론'의 관점으로 인도한다. 영혼과 신의 문제도 신체와 분리된 구별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신체를 통한 성육신 사건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신학적 진리는 신경생리학과 인지심리학의 최근 연구와도 부합되는 통합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현대 가장 첨예한 관심을 받는 뇌과학의 영역도 하나님과 우주를 관계적으로 인식하는 영혼, 종교의 영역과 결코 반대편에 있지않음을 동감하게 될 것이다. 벤의 질문 중 하나라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면, 끝까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대화이다.
권수영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프로이트와 종교」(살림),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종교와 심리학의 만남」(책세상)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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