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0일 목요일

교회가 속히 교회가 되어야 하리라 [IVP BOOK NEWS 121호]


너무도 다른 교회

주일에 사랑하는 제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장년 교인 수가 2천 명이 넘어가면서, 그 교회는 분립 등 교회 몸집을 줄이는 여러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지만 타 교회 교인들은 절대 받지 않는다. 교회의 대형화를 막고 지역 교회와의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지역의 어떤 대형교회는 다른 교회 교인들까지 뺏어가려고 한다. 제자 목사의 아파트에까지 그 교회에서 전도를 왔다고 한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자기 교회를 소개하고 싶다며 물러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 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자기들 교회로 끄는 호객행위를 한다. 그 교회는 탐욕스럽게 몸집을 불린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런 교회 목사는 자신이 한국 교회의 리더라도 되는 양 설치고 돌아다닌다. 교회나 목사나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창립 10주년을 맞은 어떤 교회는 매년 교인이 천 명씩 늘었다고 한다. 어떤 대형교회는 매년 수천 명 씩 몰려온다고 한다. 그런 소식을 접하며 기쁘기보다 마음이 좀 씁쓸한 것은 왜일까? 교인수가 적은 교회를 섬기는 이로서 배가 아프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서일까. 솔직히 그런 것도 없지 않을게다.

  나는 10년 동안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찾는 자 없이 싸늘하게 외면당하는 작은 교회의 설움을 뼈 속 깊이 체감하였다. 가뭄에 콩 나듯 새 교인 한 명이라도 오면 얼마나 기쁜지, 그러나 교인 한 명이라도 교회를 떠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오랫동안 수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작은 교회를 섬겨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80% 이상의 한국교회가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교인 한 명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리는 작은 교회의 옹색함과 일 년에 천 명씩 몰려드는 교회의 도도함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보다 더 심한 양극화를 보는 듯하다. 그런 교회와 목사에게 천 명 속에 한 사람의 존재감이 제대로 느껴질까.

  이렇게 특정 교회로 몰리는 현상은 그만큼 갈 만한 교회가 없다는 방증이라 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참신하고 의식 있고 설교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 목사를 중심으로 몰려들어 대형 교회를 이루는 것은 결코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다. 몇 만 명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 속에서 어떻게 친밀한 성도의 교제와 섬김을 통해 끈끈한 하나님의 가족애를 체험할 수 있을까.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여러 가지 큰일을 할 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교회의 본질은 점점 구현하기 힘들어진다.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이런 교회관을 가지고 목회하는 이들, 비록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스타 목사들 못지않게 순수하고 참신하며 실력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형교회에서의 럭셔리한 교회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교회의 열악하고 구질구질한 여건 속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라도 쓰러져가는 한국교회에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수고와 고난에 동참할 의향만 있다면 말이다.



가나안 교인들의 귀환

기존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교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으로 교회와 유리된 신자의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을 뜻한다. 팔과 다리가 몸통에 붙어 있지 않고는 머리와 연결될 수 없듯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으로 접합되어 있지 않으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없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의 전인 교회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의 가르침에서 교회와 분리된 신자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초대교회에서부터 개혁교회까지 계속 이어져 온 전통적인 신앙관이다.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교부 어거스틴은 태아가 모태를 떠나 생존할 수 없듯이 신자는 교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개혁교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칼뱅도 신자는 교회라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고 그 품안에서 젖을 빨며 양육된다고 했다.그러므로 교회를 안 나가고도 신자로 산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신앙이다.

  그렇다고 가나안 교인들만 비난할 수는 없다. 과연 현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교인들을 양육하는 영적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형식과 외식으로 화석화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그 생명력이 소멸된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가나안 교인들이 자신들 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이나마 부지하려고 영적으로 질식할 것 같은 교회를 탈출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 교회와 교인들(목사를 우선적으로 포함해서)의 심각한 자성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온유하신 성령님을 너무도 오래 거스르고 근심케 하여 성령님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아마 예수님과 성령님도 가나안 교인들과 함께 기존 교회를 떠나실 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나안 교인들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교회를 떠나 참된 교회를 찾고 있는 일종의 순례자들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들 모두가 다 그렇지 아닐지라도 말이다. 성령께서 부디 그들을 인도하사 교회로 귀환시킬 날을 고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속히 교회 되어야 하리라.


박영돈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로 섬기고 있으며, 한국교회 성령 운동의 문제점을 분석한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과 한국교회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한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이상 IVP)의 저자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