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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교회에 사람이 줄고 있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10월 14일! 화제의 신간,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이 출간되었습니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재영 |147*220 | 224면 | 12,000원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아아, 한국 교회,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비단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검증조차 필요 없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개신교 인구는 (흔히 말하던) 1천만명에 훨씬 못 미치는 860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3대 종교 중 유일하게 감소세로 돌아선 기독교.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는 떠났지만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가나안 성도는 누구인가?

단지 신앙의 심각한 회의를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다니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교회를 찾는 사람,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홀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주중에 신우회 같은 모임을 갖는 사람 등 한국 교회에 “가나안 성도”가 이미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요?
한국 교회는 이런 가나안 성도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한국의 개신교회를 종교 사회학적으로 연구해 온 저자 정재영 교수(연세대 사회학과, 동 대학 사회학 박사)는 수년 전부터 가나안 성도 현상(신실한 신자들이 교회를 ‘안 나가’는 현상)에 주목해 왔고, 그동안 이와 관련된 여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가나안 성도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심층 면접 조사를 통해, 이 책에서 그들이 누구이고, 왜 교회를 떠났으며, 그들이 현재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밝혔습니다.

@www.prestigeresearchph.com

여기에 주요 사회학 이론들과 선행 연구들을 통해 이러한 신자들의 이탈 현상을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가나안 성도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망라하여 소개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이 진지한 탐구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국 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이 제기하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어떻게 스스로를 개혁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찾는이"들이 많이 찾는 나들목교회의 김형국 대표목사님이 이렇게 추천해 주셨네요.

"가나안 성도 현상을 이해하려면 사회학적 연구와 신학적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저자는 이에 꼭 필요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이 논의에 대한 단단한 축을 먼저 세웠다. 가나안 성도 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절실한 이때에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박영신 교수(연세대 사회학과), 조성돈 교수(실천신대), 지성근 소장(일상생활사역연구소),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 차례 |

머리말
1부 가나안 성도란 누구인가
1. 가나안 성도의 등장
2. 교회를 떠나는 이들
3. 강요받는 신앙
4. 소통 단절
5. 신앙과 삶의 불일치
6. 나름대로의 신앙 방식
7. 가나안 성도들의 교회

2부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한 이해
8. 탈현대와 소속 없는 신앙
9. 세속화와 가나안 성도
10. 공동체와 조직
 

맺음말

부록 1 설문 조사 문항
부록 2 심층 면접 문항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데 한 가지 원인만 있지 않듯,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응하는 데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혹은 우리)이 교회를 외면하는 이유를 잘 파악하고 우리(혹은 교회)가 조금씩 대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많이들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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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북토크 안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탐구센터, IVP가 함께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북토크를 엽니다. 
한국 교회의 중대한 문제인 가나안 성도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시: 2015년 11월 9일(월) 오후 7시 30분
장소: 은혜와선물교회(지하철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프라임센터 14층)

사회: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
발표: 정재영 교수(저자, 실천신학대학원)
대담: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주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탐구센터, IVP
후원: 뉴스앤조이, 청어람ARMC, 은혜와선물교회
좌석 배치, 간식 등 행사 준비를 위해 사전 등록을 부탁드립니다(참가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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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여러 지역 기독교 서점과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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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는 가나안 성도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하였고, 그들 내면의 상처와 어려움에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나 자신도 가나안 성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상처와 좌절을 딛고 새로운 신앙 운동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교회다움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거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치부는 덮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머리말 중에서)

 
터뷰에서 만난 대부분의 가나안 성도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이 교회 안에는 별로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할 뿐만 아니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말문을 열기조차 어려웠다.

  또 다른 모태 신앙인이자 체육대학에 다니는 현재 씨는 가나안 성도에 대한 연구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직접 연락을 해 왔다. 위선을 벗어 버리고 올바른 신앙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나름 고민했지만, 명문 대학에 다니는 청년부 지체들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목사님은 늘 바빠 보여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쫓겨 나오듯이 교회를 나왔다. (p. 40)


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다. 이것은 가나안 성도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가나안 성도들이 단순히 기성 교회가 싫어서 떠난 사람들인지 아니면 교회라는 제도나 조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이들에 대한 목회적 대안과도 직결된다. 기성 교회에 문제가 많아서 교회를 떠난 것이라면 기성 교회를 고치고 개혁하면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교회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일종의 무교회주의자라면 아무리 교회를 갱신한다고 해도 이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p. 46)


나안 성도가 되는 요인으로 주목되는 첫 번째는 1장에서도 보았듯이 ‘강요받는 신앙’에 대한 부담이다. 신앙은 개인의 믿음과 관련된 것이라 강요하거나 주입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문제에도 집단주의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든지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뷰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친숙하지 않은 초신자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면접자 중 절반에 가까운 18명이 모태 신앙이었고, 대다수가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신앙을 강요받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 (p. 62)


와 같이 최근 한국 교회가 극보수화되는 경향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들리고 있다. 이것은 미국 교회에서도 이미 겪은 일인데,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은 데이비드 캠벨(David E. Campbell)과 함께 쓴 『아메리칸 그레이스』(American Grace)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보수 성향 교회들의 세력이 강해지고 점점 정치적으로도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미국의 보수당인 공화당은 보수적 성향의 복음주의 교회와 정치, 사회적 공통 이슈를 공유하면서 점차 보수화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퍼트넘은 이런 정치성에 대한 반발로 젊은 층이 교회를 이탈하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한다. (p.86)


한 일부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는 아니지만 신앙 모임을 찾아서 나가기도 한다. 이것은 앞의 통계 조사 결과에서 보았듯이 전체 가나안 성도들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비율에 불과하지만, 최소한의 신앙생활을 유지하면서 이상적인 교회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기남 씨는 집 근처의 신앙 모임에 가끔 나가는데, 이 모임은 목회자 몇 명으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목회를 쉬고 있는 목회자 몇 사람이 주일에 모여서 격식 없는 형태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기남 씨는 이 모임에 나가서 기성 교회에서는 꺼낼 수 없는 민감한 문제들,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던 고민들에 대해서 털어놓으며 자신만의 신앙을 찾아가고 있다. (p. 117)


나안 성도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미 20년 전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 대하여 연구한 바 있는 영국의 종교 사회학자인 그레이스 데이비(Grace Davie)는 영국에서 교인 수가 감소하는 것을 기독교의 쇠퇴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국교이고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이지만,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흔히 알려졌듯이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이 주일에도 텅텅 비고 일부는 식당이나 술집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세속화한 영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고, 교회는 안 나가도 하나님은 믿고 있으며 대다수는 확신은 없어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여긴다. (p. 147)


회 제도화에 저항하는 가나안 성도들을 섣불리 교화하려 하거나 제도권으로 흡수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의 영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것을 기성 교회에서 수용함으로써 교회를 갱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과정과 이들이 교회 밖에서 신앙을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연구한 앨런 제미슨(Alan Jamieson)의 조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복음주의, 오순절, 은사주의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회가 떠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교회 없는 신앙(a churchless faith)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회를 떠난 이들을 기성 교회로 오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라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부각된 구도자에 민감한(seeker-sensitive)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이탈자에 민감한(leaver-sensitive) 교회와 교회 이탈자들이 안전하게 탐구할 수 있는 경계 집단들(liminal groups)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p. 193)

2015년 9월 10일 목요일

다른 공기를 호흡하다 [IVP BOOK NEWS 121호]

[역자 후기]

기억의 종말
The End of Memory
미로슬라브 볼프 | 홍종락 옮김 | 12월 출간 예정



「기억의 종말」은 기억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악행을 당한 기억을 다룬다. 
이렇게 빛나는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을 몇 마디로 소개하기는 무리지만, 
아쉬운 대로 몇 가지만 말해보려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첫째, 악행을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일이기도 해야 한다. 가해자까지 고려하여 악행을 기억해야 한다니. 이렇게만 들으면 참 배부른 소리, 현실을 모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

  일본이 식민지 지배 당시 어떤 악행들을 저질렀던가.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직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그런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화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슈퍼히어로처럼 날아가 ‘악당들’을 응징이라도 하면 좋겠다. 나도 이런 마음인데 아이 본인이나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여기서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하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물론 저자가 이 정도 문제의식도 없을 리는 없다. 저자는 악행의 기억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와 관계의 회복이다. 그것이 피해자의 일방적인 용서와 이해만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배상을 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양측이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다 해도 대체로 그 성과는 불완전할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정의가 회복되고 그런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내세에 대한 소망이다. 저자의 두 번째 도발적인 주장은 내세에는 ‘기억의 종말’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다. 악행의 기억이 끝나는 때, 악행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세상이 온다. 이 말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기억하라!'는 촉구가 아니던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 쉽게 외면해 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위안부 수요 집회 모습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적당히 잊고, 적당히 끝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도 ‘기억하라’는 촉구의 정당성과 당위를 충분히 이해한다. 현세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누누이 지적한다. 그러나 내세는 하나님이 온전한 정의를 회복하실 세상이니 그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는 악행의 기억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이런 새로운 세상, 내세에 대한 소망을, 악행으로 얼룩진 이곳에서 지금 추구해야 할 관계의 청사진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관념적이고 허공에 뜬 이야기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람! 이런 생각이 든다면 평등사회의 꿈을 좇아 70년 넘게 세상의 절반을 움직였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라. 가야 할 바, 추구해야 할 그림이 없는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가.)



저자는 이 두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책의 전반부에서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단계들을 하나씩 밝힌다. 우선, 기억이 보호의 방패가 되지 못하고 공격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계하고(악행의 기억이 복수의 악순환만 낳을 수도 있다), 기억하되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들을 새긴다. 진실하게 기억하고, 치유에 보탬이 되게 기억하라. 그리고 출애굽과 그리스도 수난의 기억을 패러다임으로 삼아서 기억하라.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결론’이자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한 나는, 이 둘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신앙의 세계에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잠깐이나마 뭔가 다른 공기를 호흡한 것 같았다.


볼프에게 신학은 곧 신앙고백이지 싶다.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사색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일인 동시에 본인이 살아가야 할 현실이요 붙들어야 할 소망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하고, 잘 읽히면서도 심오하며, 거시적이면서도 개인적이고, 종말론적이면서도 현재적이며, 종교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신학서적이 진정한 경건서적이라는 말, 이 책을 읽고 비로소 공감이 갔다.


"악이 온전히 이기려면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의 승리가 필요하다. 악행이 일어날 때 첫 번째승리가 이루어지고, 악을 앙갚음할 때 두 번째 승리가 이루어진다. 첫 번째 승리 후, 두 번째 승리로 새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악은 죽고 만다. 내 경우, 악의 첫 번째 승리에 대해서는 손쓸 수 없었지만 두 번째 승리를 막을 수는 있었다. G대위가 나를 그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주목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 마음먹었다(롬 12:21). 결국, 나는 불경건한 자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한 번, 이번에는 G대위를 상대로 나는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비틀대며 걷기 시작했다. " (1장 "심문의 기억" 중에서)




홍종락 |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번역하며 배운 내용을 자기 글로 풀어낼 궁리를 하고 산다. 더 많은 그의 글을 읽고 싶다면 블로그 "번역가 홍종락의 서재를 소개합니다"를 참조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