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신간]
신약성경에서 배우는 기도(가제)
New Testament Prayer for Everyone
톰 라이트 | 백지윤 옮김
우리가 저녁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들어갔을 때, 전례 봉사자는 촛불을 켤 성냥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있었다. 낡은 성냥갑은 비어 있었고, 선반 뒤에 놓아두는 예비용 성냥마저 누군가 이미 써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촛불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신앙 전통에서 촛불은 하나님의 신비한 임재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다. 사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불기둥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던가. 촛불이 갖는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리 중에는 흡연자도, 라이터도 없었다. 그런데 누가 건물 건너편 부속 예배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정오 예배를 위해 켜놓았던 초 하나가 아직도 타고 있었던 것이다. 촛농이 바닥까지 흘러내려 있었지만, 심지는 아직 타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작은 불씨로부터 새 양초 두 개에 불을 옮겨 붙일 수 있었고, 안정적으로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도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성냥은 한 개도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불을 켤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 부속 예배실에 남아있던 촛불처럼,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기도들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도들은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성인(聖人)들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그 오래된 기도들이 여전히 소리 없이 타오르며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인 신약성경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때로 전혀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 삶을 엉망으로 망쳐버린 뒤 그분께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하던 사람들,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이다.
알다시피, 기도란 우리가 사는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신비로운 사실과 관련된 일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삶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맞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더 가까이 오시지 못하도록 벽을 쌓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 벽을 꿰뚫고 우리를 보시며, 때로는 벽 저편에서 부드럽게 노크를 하시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땅과 하늘이라 부르는, 우리의 실재와 하나님의 실재는 서로 꼭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 기도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즉 실제로 땅과 하늘이 만나는 핵심 장소 중 하나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기도들, 특히 계시록의 기도들은 아예 하늘에서 일어나는데, 땅에 사는 우리도 그 문가에서 엿들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땅과 하늘을 하나로 붙드시는 예수님이 계신다. 바로 그것이 그분의 삶에 기쁨과 고통이 함께 존재하던 이유다. 기쁨이 그분을 둘러싸고 일어난 새 창조 때문이었다면, 고통은 첫 창조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새 창조가 시작되는 것에 맹렬히 저항한 어두움 때문이었다. 우리가 반복해서 돌아갈 곳은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의 기도다. 새 창조의 권능과 영광을 보며 경축하시던 기도,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동산에서 고뇌하시던 기도, 그분을 따르던 자들을 위하여 다락방에서 드리셨던 엄숙하고 장엄한 기도(요 17), 또한 그분의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과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너무도 특별한 ‘주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땅과 하늘을 하나로 붙드셨으며, 스스로가 깊고 풍요로우며 때로는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리셨기에, 우리도 그 자리에 똑같이 서보라고 초대하신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그분이 이루신 성취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성령 덕분이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섰을 때 균형과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신약성경은 단지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도를 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기도 속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기도가 단지 습관이 아닌, 우리 삶의 깊은 심장박동이 되도록 도와준다. 기도, 성경 읽기, 성찬 예전( ‘성만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를 땅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근본적인 실천인데, 이 네 가지는 강물처럼 서로 합류한다.
예수님은 먼저 이 길을 걸으셨고, 우리가 이 일들을 행할 때 우리와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책은 그 중 두 가지인 기도와 성경을 다룬다. 또한, 성경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도를 돕기 위함이며, 성경에 담겨 있는 기도들이야말로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단지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가 아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게 흐르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비밀의 시냇물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언제나 그것이 실재임을 증명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기도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 자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기도들을 외워둘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해두면, 길을 걷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에도, 감자를 깎거나 잠자리에 들 때에도, 우리는 언제든지 그 기도들 안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도들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탱해주는 숨은 음악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곧 거기에 화음이나 새로운 리듬을 추가하여 즉흥 연주를 하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기도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자, 발견을 위한 항해다.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기도가 쉽든 어렵든, 신약성경에서 흘러나오는 변함없는 기도의 불빛은 언제든지 우리의 초를 위한 불씨가 되어줄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도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통해 저 유명한 찬송가에 담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인 셈이다.
내려 오소서, 오 사랑의 하나님
주께서 나의 영혼을 찾아…
불을 붙이소서, 주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불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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