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펜젤러
조선에 온 첫 번째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의 시작 이야기
윌리엄 그리피스 | 이만열 옮김 | 양장 360면 | 17,000원
--------------------------------
「아펜젤러」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
30년만에 새롭게 단장한「아펜젤러」
올해에는 아펜젤러·언더우드 내한 130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다. 학술 심포지엄 등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무엇보다「아펜젤러」가 출간되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 책은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1985년에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되었던 것을 아펜젤러·언더우드 내한 130주년을 맞이하여「언더우드」와 함께 재출간한 것이다. 한국 사학계의 대학자인 이만열 교수가 이 책을 잘 번역하고, 친절하고 세밀한 각주를 달아 독자들이 올바른 이해를 갖게 해주신 데 감사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한국 땅을 최초로 밟은 두 개척 선교사의 이름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에는 H. G.라는 같은 약자가 들어 있다. 그래서 이들을 두 H. G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자의 나라 한국」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그리피스는 아펜젤러 사망 10년 뒤에 그의 일기와 보고서 등의 자료를 토대로「아펜젤러」를 저술했다. 한국 기독교는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런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이끈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의 전기는 이 책을 제외하고는 없는 형편이다. 이 책은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의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44년 선교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게 하고, 당시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이 아펜젤러의 눈물과 희생 그리고 선교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여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고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우는 데 공헌하리라 생각한다.
섬김의 개척자 아펜젤러
대학 시절에 들었던 교양 수업 시간, 교수는 아펜젤러를‘아편셀러’라고 부르며 그가 제국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아편을 팔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지극히 지엽적인 이해가 아닐 수 없다[알고 보니 Appenzeller를‘아편설라(亞篇薛羅)’, ‘아펜셀라’, ‘아펜셀러’, ‘아펜젤러’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더라]. 아펜젤러와 관련 있는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원(중고등학교, 대학교)은 반대로 아펜젤러를 지나치게 추앙하지 않나 한다. 한국인은 과연 아펜젤러를 어떻게,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펜젤러는 임마누엘 개혁교회 출신이었는데, 회심 이후 랭커스터 제일감리교회 기도회와 속회에 매력을 느껴 1879년에 감리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감리교 사관학교인 드루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에 다니며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가려 했으나 절친한 친구 워즈워스가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를 대신해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와서 17년 동안“현명한 건축자로서 폭넓은 기초를 다짐으로써 그 위에 다른 사람들이 훌륭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p. 228).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한 그는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데 앞장섰고, 그 일을 위해 목포로 가던 중 순직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의 교훈을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當爲人役,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라고 풀어씀)으로 삼았는데, 그 자신부터죽는 순간까지 남을 섬기는 큰 사랑을 보여 주었다.
아펜젤러는 이론과 실천에 모두 정통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강한 한국 교회와 달리, 아펜젤러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똑같이 돌보는 통전적인 영성을 지녔다. 또한 그는 어려운 순간에도 재미난 요소를 찾아내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으리라.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명 깊었던 장은 23장 ‘복음의 동역자들’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 최상의 성과를 거두려면, 선교사는 협동할 줄 아는 성격을 지녀야 한다”(p. 265). 힘든 짐을 서로 나누어 지고 공감하며 진실하게 협동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매고 있는 굴레를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라는 아펜젤러의 제물포항 도착 기도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아직도 유효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이 책을 읽는 진지한 독자들이 이 나라의 백성들을 얽매고 있는 굴레를 끊어 내고 기독교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펜젤러를 만나라, 그러한 삶에 도전하라
개인적인 아쉬움은 재출간 과정에서 이전 판에 있던 아펜젤러 관련 자료와 이만열 교수의 아펜젤러의 교육, 복음전도 활동 자료가 부분적으로만 실렸다는 것이다. 더 관심 있는 독자는 옮긴이 서문에 언급된 것을 참조해서 읽기를 바란다.
옥에 티가 있다면 감리교 청년회인 ‘엡웟 청년회’가 ‘엡워스 청년회’로 표기된 것과 ‘속회’가 ‘조 모임’으로 번역된 것이다. 엡웟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출생지 이름(Epworth)에서 따온 것인데, 바뀐 우리말 표기를 따라 바꾸었다. ‘성서번역위원회’도 출판사 편집 방침에 따라 ‘성경번역위원회’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대한민국 돌아가는 정세를 보며 고종의 대한제국 시대 상황을 연상한다. 이 책을 통해 그 시절을 깊이 음미하면서 목숨을 바쳐 한국 근대화와 선교 활동에 힘썼던 아펜젤러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를 생생하게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아펜젤러의 생애와 신학을 담은 한국 신학자의 책이 나오는 것이다. 둘째는 처음 한국에 온 선교사뿐 아니라 아펜젤러 같은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이후의 많은 선교사들에 관한 저술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선교사로 나가, 그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실질적인 아펜젤러의 후예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김영명| 춘천 상걸리교회 담임목사와 삼원서원 원장으로 있으며, 「정경옥: 한국 감리교 신학의 개척자」(살림), 「기독교, 한국에 살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공저), 「동부연회 순교자 열전」(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공저) 등을 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