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3일 목요일

미국 복음주의 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여행 가방에 넣어야 할 10권의 신학 책 중 한 권!”

ⓒCollin Hansen
본서가 출간되자 New Calvinism의 젊은 기수 콜린 한센이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실, 젊은 개혁주의 운동에 온통 투신해 있는 그의 왕성한 활동을 보고 있자면, 그해 여행 가방에 정말로 이 책을 챙겼는지는 고사하고, 여행이나 갈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하군요. 어쨌든). 
필연일까, 섭리일까? 우리말 책도 여름휴가 시즌에 딱 맞춰 출간되었습니다.
이제 독자들의 여행 가방에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최소한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라도)!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The New Shape of World Christianity

마크 A. 놀 | 박세혁 옮김
147*220 | 264면 | 14,000원
2015년 7월 16일 발행
  



미국 복음주의 담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미국제 복음주의니, 미국제 영성이니 하는 말이 언제부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개신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 교회의 왜곡된 복음 이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미국 교회를 폄하하는 이런 흐름은 어느덧 역사를 통찰하는 제대로 된 시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미국 기독교를 빼다 박은 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교회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비서구권 기독교는 그저 미국식 중산층 복음을 이식받은 미국제 복음주의의 단순한 복제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미국제 복음주의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던 마크 놀(미국제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확산시키는 데 한몫했던 마이클 호튼의 책의 추천자 중 한 사람이 마크 놀이었죠)이 이런 흐름에 강렬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앤드루 월스, 라민 산네, 옥부 칼루 같은 세계 기독교학자들의 연구를 통합해 낸 그는, 세계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의 단순한 복제품일 수 없다는 놀라운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이 여름 미국 복음주의와 한국 교회, 세계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재고하라는 그의 도전에 당당히 맞서보심이 어떨지요.





흥미롭게도 (미국 교회를 쏙 빼닮은듯 보이는) 한국 교회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8장 '한국 기독교는 미국 복음주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의 일부를 잠시 읽어보시죠.


책임 있는 분석가라면 한국 개신교의 경험과 미국 개신교의 경험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는 한국보다는 미국 문명에서 더 오랫동안 핵심적 지위를 차지해 왔다. 한국 개신교인들은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 19세기 중반 몇십 년 동안 미국 문화를 지배한 것처럼 자기 나라의 문화를 지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미국 교회는 외세의 점령을 견뎌야 했던 적이 없으며, 1860년대 이후 국내 전쟁 때문에 교회가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은 적도 없다. 서양 고전 학문이라는 배경 때문에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동양 고전 학문을 다룰 때 직면하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가 더 중요했다. 끈질기게 마법에 의지하는 서양의 민속 신앙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샤머니즘 성격이 강한 한국의 민속 신앙에 대응하고자 할 때 직면한 것과는 다른 어려움을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실제적인 삶에 제기했다. 미국 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교회가 경험한 이산의 고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미국 교회는 한국 교회보다 세계의 다른 지역 상황에 대해 아마도 더 모르고 있을 것이다(즉,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미국에 소개된 것에 비해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한국에 더 많이 파고들었다). 이런 점들은 한국 개신교인과 미국 개신교인을 서로 대조될 수밖에 없게 만든 역사적 차이점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 외에 다른 차이점들이 더 있음에도 둘 사이의 유사성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여러 놀라운 유사점을 감안할 때,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는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숙고해 볼 점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두 역사의 유사성으로 인해, 미국 개신교 역사를 평가한 내용이 한국 신자들에게 (그리고 새롭게 기독교세계에 속하게 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면 아주 유익할 것이다.(pp. 195-196)



| 차례 |

1. 세계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 
2. 미래 예측: 19세기 복음주의의 정체성, 권력, 문화  
3. 문제 제기 
4. 선교사의 숫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5. 비판과 대응  
6. 모형으로서의 미국의 경험  
7. 미국 복음주의자들, 세계를 바라보다 
8. 한국 기독교는 미국 복음주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9. 동아프리카 부흥  
10. 성찰   




이 분이 마크 놀 (https://youtu.be/6wtmAYnKf_Q)
| 마크 놀 Mark A. Noll

미국 역사학계를 이끄는 대표적 학자이자 존경받는 복음주의 지성. 휘튼 칼리지(B.A.)와 아이오와 대학교(M.A.)에서 영문학을, 트리니티 신학교(M.A.)와 밴더빌트 대학교(Ph.D.)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27년간 휘튼 칼리지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며 강연과 집필을 통해 미국 개신교 역사와 복음주의의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성찰해 왔으며, 2006년부터 노트르담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미국 역사학의 거장 조지 마스덴의 뒤를 이어 역사와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종교와 일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하고 탁월한 학문성을 인정받아 2006년 국가 인문학 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대표작인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그리스도와 지성」(이상 IVP), 「미국․캐나다 기독교 역사」, 「종교개혁은 끝났는가?」, 「복음주의 발흥」(이상 CLC),「터닝포인트」(CUP), America's God, 등이 있다.




미국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관계를 깊이 있게 통찰한 책!”
2009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선교 세계 분야 최우수상 수상


ⓒJaekeun Lee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출간 후 한창 바쁘게 지내시는 이재근 교수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께 해설을 받았습니다. 해설을 읽고 나면 저자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라든지 이 책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부는 IVP 북뉴스 120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지만, 전문은 책에서 직접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추천의 글 |


이 책은 세계 기독교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극단적인 승리주의나 자기 비하적인 경향 모두를 치료해 줄 훌륭한 해독제다. / 대니얼 베이즈, 캘빈 칼리지 교수

노련한 역사가 마크 놀은 미국의 경험이 오늘날 세계 기독교에 모형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명료하면서도 창의적이며, 사려 깊은 성찰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 데이나 로버트, 보스턴 대학교 교수

마크 놀은 번뜩이는 감각과 생기 넘치는 치밀함으로 세계 기독교와 미국 종교사의 상관성에 관한 환영할 만하면서도 소중한 연구를 만들어 냈다. / 라민 산네, 예일 대학교 교수

미국의 영향력을 겸허하게 평가하는 이 책은 현대 세계 기독교의 선교에 있어 미국의 헤게모니를 옹호하는 이들과 이를 반대하는 이들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 사이몬 찬, 싱가포르 트리니티 신학교 교수

이 명쾌한 해설은 현대 기독교의 해석에서 지역적 전개 과정과 전 지구적 전개 과정 사이의 조우에 관해 토론을 촉발시킬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 옥부 칼루, 매코믹 신학교 교수

놀은 우리가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와 현주소를 파악한다면, 19세기 미국 기독교의 경험을 비슷하게 겪은 우리와 세계 기독교를 좀더 잘 이해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21세기 기독교의 새로운 방향과 목표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 우병훈, 고신대학교 교수

현대 기독교사, 한국 기독교사, 미국 기독교사, 세계 기독교학, 선교학, 복음주의 등 관련 학문의 최근 동향에 관심을 둔 이들이라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신뢰할 만한 안내서다. / 이재근,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비서구 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있어 미국 교회의 공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놀은 또 하나의 혁신적인 화두를 던진다.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Christianity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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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과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 및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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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1일 화요일

IVP 북뉴스 발송 방침 변경


북뉴스, 잘 받아 보고 계신가요?


IVP 북뉴스는 연6회 발행되는 고급 서평지 겸 문서 운동을 돕는 매체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종이 발행과 전자 발행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도서회원들의 연락처가 업데이트되지 않으면서, 보내드린 우편물이 다량 반송되는 등 어려움이 지속되어 왔거든요.
이제 발송 대상을 정비해, 받고 싶은 분께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으로는 1년에 1회 정기구독을 신청하신 분에 한해 종이 북뉴스를 보내드리려 합니다. 

두 가지 접수 창구를 마련했습니다.
###이 링크에서 정기구독 양식을 입력해 주시거나, (선호합니다!)
IVP 직영서점 산책(02-3141-5321)으로 전화 주세요. 
2016년 11/12월호 북뉴스까지 종이로 보내드립니다. 

북뉴스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관해 귀한 의견도 기다립니다. 
신청하실 때 함께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소가 변경되셨을 때는 꼭 연락주시고요.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북뉴스 편집팀)

늦여름에 다가갈 IVP 신간[IVP BOOK NEWS 120호]


[출간 예정 도서]
늦여름에 다가갈 IVP 신간



그리스도와 법 
Christian Perspectives on Legal Thought part 2
로버트 코크런 외 | 이일 옮김

기독교적 관점에서 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저자들은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분석틀을 사용하여, 기독교의 여러 전통들이 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와 법의 화해를 추구하는 종합주의 모델로서 로마 가톨릭의 법 이해, 법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라는 변혁주의 모델로서 칼뱅주의의 법 이해, 법에 대항하는 그리스도라는 분리주의 모델로서 급진적 종교개혁 전통과 침례교 전통의 법 이해, 법과 긴장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이원론적 모델로서 루터파의 법 이해를 살펴볼 수 있다.






마음, 뇌, 영혼, 신
Minds, Brains, Souls and Gods
말콤 지브스 | 홍종락 옮김

기독교 심리학, 성경적 상담학, 심리학에 물든 기독교라는 주제로 교회가 한바탕 뜨거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 학문과 결합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한 최근의 심리학, 특히 신경심리학에 대한 논의는 빠뜨린 채 그저 안전한 주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기독교적 심리학을 위한 신뢰할 만한 안내서의 부재가 아쉬운 상황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자 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에 의해 집필된 본서의 출간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심리학, 신경과학, 진화론, 인지과학 분야의 최신 정보를 아우르며, ‘영혼’의 존재, 결정론과 자유, 이타주의, 하나님의 인도하심, 환원주의, 진화론, 유전학 및 관련된 많은 문제들 등 기독교 신앙과 직결된 주요 심리학 문제를 다루는 본서는 심리학의 경계를 훌쩍 넘어 ‘지적으로 정직하고 검토된 신앙을 갖기 원하는 진짜 학생들의 진짜 질문’들과 씨름하도록 도전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지성, 어떻게 학문할 것인가?
Jesus Christ and the Life of the Mind
마크 놀 | 박규태 옮김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학문 활동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특히 기독교의 고전적 교리와 기독론을 탐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이를 통해 기독 지성인들이 학문 연구를 해야 하는 당위 및 동기를 부여한다. 학문 연구 및 지적 활동에 있어 기독 지성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와 연구 분야에서 어떻게 복음주의적인 학문 추구를 할 것인지를 제시하는 책으로, 신앙과 학문의 통합 논의가 좀더 근본적인 신학적 성찰에 뿌리내리도록 도울 것이다.






기독교는 타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Can Evangelicals Learn from World Religions?
제럴드 맥더모트 | 한화룡 옮김

타종교는 기독교 신앙과 공명할 수 있는가?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계시는 타종교의 지혜와 공존할 수 없는가? 지금까지 보수적인 기독교는 구원론에 집착한 나머지 복음의 계시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른 신앙을 살펴보고 배우려는 태도를 극도로 경계해 왔다. 오랫동안 종교철학을 가르쳐 온 복음주의자인 저자는 성경과 교부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전통에 근거해 이런 질문들과 오해들에 도전하고, 종교적 다원주의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일목요연하게 짚어내면서 타종교 안에 기독교적 가치와 지혜가 들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말한다. 이 책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제와 대화를 적극 지지하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가 아닌 전우주적 진리임을 기억하게 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이 주제를 다룬 거의 독보적인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 성경공부 시리즈 01
창조: 하나님의 세계를 즐거워하라(가제)
한기수

건강한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 세계관을 성경공부를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교재다. 이 책에는 지난 수십 년간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인도해 온 저자의 실제적 경험이 녹아 있다. 각 과는 성경 본문을 공부하는 부분과 기독교 세계관 이론과 적용에 관해 제시된 읽을거리를 읽고 토론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역사와 배경을 이해하도록 돕는 자료를 부록으로 제공한다. 이 교재는 평범한 초신자부터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까지 다양한 배경의 멤버들을 위하여 유연한 활용 방법까지 제시한다.
*「타락: 영적인 싸움을 싸우라」, 「구속: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라」가 이어서 출간됩니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가제)
정재영

1백만 명 가나안 성도 시대, 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초 연구를 수행해 온 종교사회학자 정재영 교수가 그 동안의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책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가나안 성도에 대한 상세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 조사 결과들, 그리고 해외의 종교사회학 연구들 중 우리의 가나안 성도 현상과 유사한 현상을 분석한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부분이다.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한 교회의 올바른 대응을 모색하는 이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우주의 기원과 문화의 기원(가제)
정일권

한국의 대표적인 지라르 연구가이자 전문가인 저자는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과 자연과학의 통섭적 연구를 모색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의 연관점을 탐구하고 해설한다. 이 책에서는 빅뱅 우주론, 양자물리학 등 현대 과학의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일어난 자연신학의 르네상스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따라가며, 창조-타락-구원-완성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현대 자연과학의 발견이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 과학과 신학의 대화 속에서 지라르의 이론이 제시하는 중요한 통찰들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톰 라이트의 신약성경 기도 연구[IVP BOOK NEWS 120호]

[미리 보는 신간]
신약성경에서 배우는 기도(가제)
New Testament Prayer for Everyone
톰 라이트 | 백지윤 옮김



우리가 저녁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으로 들어갔을 때, 전례 봉사자는 촛불을 켤 성냥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있었다. 낡은 성냥갑은 비어 있었고, 선반 뒤에 놓아두는 예비용 성냥마저 누군가 이미 써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촛불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신앙 전통에서 촛불은 하나님의 신비한 임재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다. 사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불기둥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던가. 촛불이 갖는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리 중에는 흡연자도, 라이터도 없었다. 그런데 누가 건물 건너편 부속 예배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정오 예배를 위해 켜놓았던 초 하나가 아직도 타고 있었던 것이다. 촛농이 바닥까지 흘러내려 있었지만, 심지는 아직 타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작은 불씨로부터 새 양초 두 개에 불을 옮겨 붙일 수 있었고, 안정적으로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도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성냥은 한 개도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불을 켤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 부속 예배실에 남아있던 촛불처럼,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기도들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도들은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성인(聖人)들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그 오래된 기도들이 여전히 소리 없이 타오르며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인 신약성경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때로 전혀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 삶을 엉망으로 망쳐버린 뒤 그분께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하던 사람들,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이다.

알다시피, 기도란 우리가 사는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신비로운 사실과 관련된 일이다. 우리의 삶과 하나님의 삶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맞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더 가까이 오시지 못하도록 벽을 쌓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 벽을 꿰뚫고 우리를 보시며, 때로는 벽 저편에서 부드럽게 노크를 하시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땅과 하늘이라 부르는, 우리의 실재와 하나님의 실재는 서로 꼭 들어맞도록 만들어졌다. 기도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즉 실제로 땅과 하늘이 만나는 핵심 장소 중 하나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기도들, 특히 계시록의 기도들은 아예 하늘에서 일어나는데, 땅에 사는 우리도 그 문가에서 엿들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땅과 하늘을 하나로 붙드시는 예수님이 계신다. 바로 그것이 그분의 삶에 기쁨과 고통이 함께 존재하던 이유다. 기쁨이 그분을 둘러싸고 일어난 새 창조 때문이었다면, 고통은 첫 창조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새 창조가 시작되는 것에 맹렬히 저항한 어두움 때문이었다. 우리가 반복해서 돌아갈 곳은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의 기도다. 새 창조의 권능과 영광을 보며 경축하시던 기도,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동산에서 고뇌하시던 기도, 그분을 따르던 자들을 위하여 다락방에서 드리셨던 엄숙하고 장엄한 기도(요 17), 또한 그분의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과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너무도 특별한 ‘주님의 기도’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땅과 하늘을 하나로 붙드셨으며, 스스로가 깊고 풍요로우며 때로는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리셨기에, 우리도 그 자리에 똑같이 서보라고 초대하신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그분이 이루신 성취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성령 덕분이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섰을 때 균형과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신약성경은 단지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며 기도를 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기도 속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기도가 단지 습관이 아닌, 우리 삶의 깊은 심장박동이 되도록 도와준다. 기도, 성경 읽기, 성찬 예전( ‘성만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를 땅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근본적인 실천인데, 이 네 가지는 강물처럼 서로 합류한다.

예수님은 먼저 이 길을 걸으셨고, 우리가 이 일들을 행할 때 우리와 만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책은 그 중 두 가지인 기도와 성경을 다룬다. 또한, 성경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도를 돕기 위함이며, 성경에 담겨 있는 기도들이야말로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단지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가 아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게 흐르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비밀의 시냇물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언제나 그것이 실재임을 증명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기도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 자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기도들을 외워둘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해두면, 길을 걷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에도, 감자를 깎거나 잠자리에 들 때에도, 우리는 언제든지 그 기도들 안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도들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탱해주는 숨은 음악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곧 거기에 화음이나 새로운 리듬을 추가하여 즉흥 연주를 하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기도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자, 발견을 위한 항해다.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기도가 쉽든 어렵든, 신약성경에서 흘러나오는 변함없는 기도의 불빛은 언제든지 우리의 초를 위한 불씨가 되어줄 것이다. 신약성경의 기도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통해 저 유명한 찬송가에 담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인 셈이다.


내려 오소서, 오 사랑의 하나님
주께서 나의 영혼을 찾아…
불을 붙이소서, 주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불꽃으로.


책 만드는 마을을 떠나며[IVP BOOK NEWS 120호]


[IVP 이야기]
책 만드는 마을을 떠나며



나뭇잎 마을

나루토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1999년 연재를 시작해 2014년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북미와 유럽에서는 ‘나루토 신드롬’이라 부를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엄청나게 장대한 이야기이지만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루토와 친구들이 사는 나뭇잎 마을(마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소국에 가깝습니다)의 닌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출몰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마을을 지켜내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한두 명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이야기를 주도하는 일반적인 작품들과 달리 나루토에서 마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을 구성원들 각자에게는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들은 이를 충실히 수행합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임무가 없습니다. 마을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거대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나루토의 핵심입니다. 나루토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나보다는 내 옆, 내 친구,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그 힘이 마을을 위기로부터 구해 내고 세계 전체를 평화로 나아가게 합니다.

얼핏 여느 일본 소년 만화의 맥락을 그대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루토 이야기 안에 담긴 의미는 자못 진지합니다. 악한 힘을 물리치기 위해 닌자라는 힘을 키우지만, 되려 증오와 미움이 커집니다. 평화를 이루는 길은 결코 단순하거나 쉽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마을은 다시 한 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갈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마을 구성원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 한 가지는 개인이 홀로 평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옆에 ‘너’가 있어야, ‘친구’와 ‘동료’가 있어야, 그리고 ‘마을’이 있어야 그 길을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책 만드는 마을

글을 쓰는 것은 개인의 일입니다. 물론 여럿이서도 글을 쓸 수 있지만, 그 글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입니다. 좋은 글은 독자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세계 곳곳에 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책을 만드는 일은 개인의 몫을 넘어섭니다. 좋은 글감을 찾고, 글 쓰는 이를 발견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끔 다듬고 편집하며, 표지를 디자인하고, 대량으로 제작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완성된 책이 적절하게 유통되기 위해 망을 구축하고 공급합니다. 이 모든 일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글은 비로소 책이 됩니다. 다시 말해 글이 개인의 역할이라면 책은 공동체의 몫인 셈입니다. 우리는 그런 공동체를 가리켜 ‘출판사’라고 합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마을과 같습니다. 번잡한 도시보다는 한적한 농촌 마을 같지요. 그래서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느긋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책을 만들고 있으니 왠지 고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을 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얼마나 치열한지 모릅니다. 원고에 담긴 문장 속 단어를 하나 하나 쪼개며 그것이 적절한지, 맥락에 부합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세심히 살핍니다. 적절한 표지를 찾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안을 교체합니다. 최적의 판매를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자리에 앉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마을이 그렇듯 갈등도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책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토론도 벌이고 거의 완성된 책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도 합니다. 지난하기도 하고 효율도 떨어지는 일임에도, 우리 마을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좋은 책은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란 확신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책 만드는 마을의 모든 구성원은 알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결코 혼자 만들 수 없다는 것을요.


우리 모두의 바람

저는 1년 반 동안 이 마을의 한 모퉁이를 담당했습니다. 출판사라는 마을에 완전히 녹아들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책 한 권이 독자들의 손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어야 하는지,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만들고 전하는 일은 마치 부모 마음과 같아서 언제나 아쉽고 한편으로 걱정되며, 또 은근한 기대를 합니다. 때론 실망하고 또는 의외의 결과에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우리가 만든 책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을 통해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의 바깥을 상상하고, 어렴풋한 길을 걸어갈 용기가 되고, 낯선 곳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출판사 마을 구성원 모두의 바람입니다.

 저는 이 바람을 안고 마을을 떠납니다. 제가 없어도 우리 마을은 언제까지나 좋은 책을 만들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저는 앞으로도 제가 잠시 살았던 이 마을을 응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또 앞으로도 그리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경험을 나눠 준 IVP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김형욱|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4년 3월에 IVP에 입사하여 ‘산책’ 매장 관리와 도서 회원 및 “시냇가에 심은 나무” 독자 관리를 맡아 일했다. 새로운 공부를 위해 8월 유학길에 오른다.


과학과 신앙의 올바른 터를 세우다[IVP BOOK NEWS 120호]

과학 철학: 자연 과학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
델 라치 | 김영식·최경학 옮김 | 262면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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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철학」은 IVP 직영서점 산책(02-3141-5321)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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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로부터

추위를 머금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과학과 신앙, 오해에서 이해로!’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첫 모임은 싸늘한 날씨만큼이나 경직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IVF 중앙회관의 어느 작은 공간에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받아 보았던 연두색 책과 송인규 교수님의 꼼꼼한 강의안. 우리는 그때 불현듯 이 모임에 대해 한 가지 오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오해는 세미나에서 함께 공부하게 될 책이 상당히 생소하고 어렵다는 데 있었다. 물론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수월하게 그 목표를 이루리라 여긴 그 기대가 문제였다. 정말이지 큰 착각이었다.

이쯤에서 책 제목을 밝혀야 하겠다. 과학과 신앙 세미나에서 다루었던 문제의 책은 바로 「과학 철학」(Science & Its Limits)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이고, 과학책보다는 오히려 철학책에 더 가깝다. 이제,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철학의 부담스러운 얼굴을 살짝 들여다보자.


과학(Science), 시대별 정의 및 종교와의 관계

저자는 먼저 과학 자체에 대해 다룬다. 과학에 대한 견해를 크게 세 시기, 즉 17-20세기 중반, 1960-1970년대, 오늘날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구분을 위해 객관성, 경험성, 합리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객관성은 과학 활동과 인간의 주관성과의 관계를, 경험성은 과학 활동과 관찰 가능한 경험 자료와의 관계를, 마지막 합리성은 과학 활동과 추론 과정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첫 번째 시기의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 활동에 과학자의 주관적 전제가 개입해서는 안 되고(객관성↑), 철저히 관찰 가능한 경험에만 근거해야 하며(경험성↑), 논리적 추론 과정을 통해서만 과학적 결과물이 도출되어야 한다(합리성↑).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두 번째 시기에 와서 뒤집힌다. 토마스 쿤으로 대변되는 급진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 활동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과학자의 주관적 선입견이고(객관성↓), 그러한 방향성은 경험적 자료의 영향을 미약하게만 받으며(경험성↓),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추론보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영향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합리성↓).

첫 번째 시기에는 과학을 순전한 사실의 문제로 다루지만, 두 번째 시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가치의 문제로 여긴다. 한편 오늘날은 그 양극단의 주장을 적절히 받아들이며 중도를 걷고자 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기도 하지만 또한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 시기의 견해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 시기의 전통적 견해는 과학과 종교가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두 번째 시기의 급진적 견해는 과학과 종교가 혼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세 번째 시기에는 중도적인 견해가 우세한데, 이는 과학과 종교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중 과학에 대한 중도적 견해를 지지하며 그에 따른 과학과 종교의 적절한 연관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는 날카롭게 분리되거나 무분별하게 혼합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통합의 가능성에서 기독교 신앙을 과학 활동 안에 정당하게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과학의 한계(Its Limits) 속에서 등장하는 지적 설계

한편 저자는 과학의 한계를 드러내며 지적 설계를 넌지시 내세운다. 과학은 그 자신의 토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가령 과학은 ‘균일성의 원리’, 즉 자연이 균일하다는 가정을 증명 없이 그저 받아들인다.

과학은 ‘목적’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과학이 ‘목적’에 대해 말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특히 관찰될 수 없다는 이유로 ‘목적’이 과학 영역에서 거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게 따지면 전자와 쿼크, 장같이 직접 관찰될 수 없는 것들도 과학의 영역에서 제외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목적’은 과학에서 으뜸가는 설명적 범주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자는 ‘목적’을 과학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모든 것을 자연주의적 설명으로 환원하려는 과학주의의 부당성을 언급한다. 관찰 가능한 것만 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그 자연주의 세계관은 기실 많은 문제점이 있고, 바로 여기에서 과학의 진정한 한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저자는 자연주의 세계관에 근거한 과학의 문제점과 한계에서, 그 과학이 희생시킨 ‘목적’ 개념을 포함하는 지적 설계를 등장시킨다. 지적 설계가 과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속내는 분명하다.


이해를 향하여

이 책은 드러나는 현상뿐 아니라 현상 이면의 본질과 개념을 다룬다는 점에서 세계관적이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중립적으로 각 입장을 소개하기에 교과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과학 철학의 개념어들과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저자의 입장 때문에 당황했고, 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 과학에 대한 피상적이고 치우친 이해에서 벗어나,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방식에 대해 심도 있고 균형 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세미나가 앞으로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향후 열릴 과학과 신앙 세미나를 통해 과학과 신앙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더욱더 성숙해지리라는 기대도 커졌다.

세미나 마지막 날, 함께했던 멤버 모두가 다음에 열릴 ‘과학과 신앙 세미나’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랬다. 돌아보니 마지막 날은 첫 날과 달리 몇 가지 바뀐 점이 있었다. 초여름의 화창한 날씨, 자리를 옮겨 넓어진 세미나 장소,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 그리고 오해가 아닌 이해 말이다.



김태민|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다니엘새시대교회에서 중고등부를 섬기고 있다. 신학과 철학의 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역에 있어서는 신앙과 삶의 통합에 힘쓰고 있다.


북미 기독교 역사가 마크 놀이 던지는 새로운 화두, 세계 기독교 역사[IVP BOOK NEWS 120호]


[서평]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마크 놀 | 박세혁 옮김 | 264면 | 14,000원
*2010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선교·국제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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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과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 및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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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놀, 세계 기독교를 만나다

일반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저명한 미국 역사가 마크 놀은 미국 기독교 역사 분야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교회역사학자다. 우리 독자에게는「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놀은 이 책에서 1940년대 이래 근본주의의 반지성주의를 반대하며 태동한 미국 복음주의가 1990년대에도 이전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반지성주의라는 스캔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적나라하게 쏟아냈다. 

그러나 놀의 애독자라면 그의 비판이 애정 어린 자기 고백이자 자아비판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또한 미국 기독교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역사가인 놀의 이 작품이 미국 기독교 역사 전반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과거의 실재와 오늘날의 현실을 비교하여 조망한 균형 잡힌 비평서라는 것도 알 것이다. 물론 한국 독자들은 놀이 미국 복음주의에 휘두른 비판의 칼날이, 놀이 비판한 미국 복음주의와 똑같은 여러 문제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난제를 안고 표류하는 한국 복음주의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중략)

놀은 아마도 1993년 어간부터 미국의 범위를 넘어 더 넓은 세계 기독교의 지형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그 역사에 관심을 보인 것 같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세계 기독교에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들게 된 계기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부 비서구기독교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앤드루 월스의 논문 모음집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1996)이었다. 월스는 기독교 역사에 접근하는 서구 학계의 전통적인 연구 방식으로는 실제 선교 활동을 통해 진행되어 온 기독교 확장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차지하는 비서구 기독교의 존재와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기독교 무게중심의 남반구 이동’이라는 상황을 처음 인식하고 학문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었다. 

놀은 월스의 책을 읽고 큰 도전을 받았으며 다음 해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3월 호에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복음 메시지가 ‘번역’된다는 것은 바로 기독교 신앙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서, “기독교 역사 전체는 신앙이 각 지역 상황과 배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일련의 과정을 증언하는 것”이라는 서평을 남겼다. (중략)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

놀이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의 공통점이라고 보는 요소는 일곱 가지다. 

1) 자율적인 현지 교회다. 18세기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자치하는 자율적 교회를 이룬 미국 교회의 경험은, 20세기가 시작된 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선교사가 주도하는 교회에서 한국인 지도자가 이끄는 교회로 바뀌기 시작한 한국 교회 자치 경험의 모범이다. 

2) 미국 교회가 독립혁명 당시 반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기독교를 형성한 것처럼, 한국 교회 역시 3·1운동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투사가 되어 민족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 한국인의 교회가 되었다. 

3) 영어 성경이 미국인의 의식과 삶의 태도, 가치관의 전반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미친 것처럼,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4) 기독교가 근대성과 동일시되었다는 측면에서 미국과 한국은 독특하다. 놀이 보기에 한국은 많은 지식인이 기독교를 근대성, 서구성, 진보성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수용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험을 닮았다. 

5) 미국에서는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등이,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기독교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놀은 양국 교회가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성장을 이루었다는 요소에 주목한다. 

6) 1차, 2차 대각성이 미국 기독교를 전반적으로 개인주의적·회심주의적·체험적·행동주의적인 복음주의 종교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처럼, 1900년대 초 원산과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은 미국과 유사한 방식과 특징으로 한국 기독교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7) 한때 피선교국이었던 미국과 한국이 독립 이후 세계 선교를 주도하는 선교 국가로 변모한 과정도 유사점으로 꼽는다.

물론 놀은 이런 역사적 경험의 유사성과 평행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두 나라 기독교의 차이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미국은 독립 전후 일관되게 기독교 문명이 지배하는 나라였으므로 한국처럼 외부에서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 및 변화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점, 외세에 지배당하며 당한 고통을 미국은 한국만큼 크게 느끼지 못했다는 점, 한국에서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조우한 강력하고 이질적인 동양 사상과 철학, 문화 배경 등이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서로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 기독교와 미국 기독교 간 상호 관계는 대체로 일방적이었다는 점 등이다. 

결국 놀은 한국 기독교에 미국 기독교가 아주 큰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지만, 그 영향이 절대적이라기보다 역사적 배경과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미국 기독교가 지난 200년 동안 발전시켜 온 유형을 한국 기독교가 따르고 있다고 판단한다.



기독교사 연구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

놀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선교학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자신의 미국 기독교 역사 해석에 몇 가지 통찰을 가미한다. 이런 해석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패권주의와 기독교 선교 간의 관계를 밀접하게 연결 지으며 기독교 선교사를 문화적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보는 탈식민주의자 혹은 수정주의 역사가의 비난을 피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문화,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미국 기독교의 형식과 영향력을 여전히 절대화하거나 우월시하는 많은 미국 기독교인(과 한국 및 비서구의 보수적 기독교인)에게도, 문화와 종교란 그렇게 단순한 메커니즘 위에서 일방적으로 이식되거나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만, 놀이 이 분야의 새로운 통찰과 발견을 주도한 선구적 선교학자가 아니라 공론화 및 대중화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은 역사가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이 과정의 더 복잡하고 세밀한 양상과 관련된 신학적·선교학적 논의를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또한 그가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고 제시한 것들에 대해서, 겉으로 분명해 보이는 각 공통성 내부에 전혀 다른 세부적 차이점이 공존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했다는 지적을 한국사와 기독교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서 받을 수 있다.

이 책이 세계 기독교 현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권위서는 아니다. 앞서 나온 선구적 작품들과, 이어서 나올 수많은 신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연결해 주는 눈에 띄는 징검다리 같은 작품이다. 현대 기독교사, 한국 기독교사, 미국 기독교사, 세계 기독교학, 선교학, 복음주의 역사 등 관련 학문의 최근 동향에 관심을 품고 이 세계로 여행하려는 이들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신뢰할 만한 안내서다.


*이 글은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에 수록된 해설의 일부분입니다.


이재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외 여러 학교에서 교회사와 선교학을 가르치며, 근래에「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를 출간했다. 한 아내의 남편, 한 아들과 한 딸의 아빠로, 한 방에서 오글거리며 사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