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소명
세상을 위한 하나님 백성의 제자도
마크 래버튼 지음|하보영 옮김|무선 204면|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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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소명」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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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이라는 단어는 그리 새롭지 않다. 소명과 연관된 책들은 이미 시중에 넘쳐 난다. 설교나 특강에서도 단골 주제다. ‘그럼에도 소명에 관한 다른 책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제일 소명」을 만났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삶의 가치라는 무성한 담론의 숲에서 반갑게 만나는 작고 올곧은 길과 같다. 저자 마크 래버튼은 풀러 신학교의 신임 총장이다. 그는 16년의 담임 목회 경력을 갖춘 설교학자이면서 20세기 ‘세계 복음주의의 교황’으로 불리는 존 스토트의 제자이자 동역자이기도 하다.
스토트가 기독교의 기본 진리, 제자도, 십자가에 관한 탁월한 영적 안목을 제공했다면 래버튼은 이 책을 통해 스토트의 사상을 응축해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야 할 근원적 소명이라는 지도를 그려 내고 있다.
소명에 대한 다각적 탐구
잘 기술된 책들은 논지가 분명하고 일관되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관한 기술적 정의가 뚜렷하지 않다. 저자는 계속해서 나선형식 서술마냥 표현을 달리하며 소명을 새롭게, 또 새롭게 조명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원초적이며 공통된 제일 소명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저자는 줄곧 ‘모든 일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이 제일 소명’이라고 언급한다. 이 소명은 개인에게 특화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수준을 넘어서 “오늘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찾으심의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p. 25)이다.
동시에 이 소명을 회복하는 첫걸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소명의 시작과 끝”(p. 120)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만들어지는 “영적 성장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p. 181)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제일 소명에 대한 다각적인 탐구는 이 책 전체의 얼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세상의 위기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소명을 도외시한 데서 비롯된다. 이를 저자는‘길 잃은 세상’이라고 표현한다.
정직하게 진단해보자.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길 잃은 세상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이런 세상의 혼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망명지로서의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소명을 갖고 망명지에서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보는 것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소비 중심적인 우리 시대의 문화를 뒤엎는 것”이라고 대범하게 주장한다(p. 72).
흔히 우리는 소명을 개인의 재능이나 은사를 발견해서 그것을 유익하고 선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소명의 진정한 발견은 그보다 더 깊은 묵상을 요구한다. 각 사람의 고유한 잠재력을 발굴하고 계발하는 자아실현적 소명에 앞서 반드시 치열하게 숙성시켜야 할 공통된 소명의 과제가 있다.
저자는 이를 소명의 일차적인 것과 이차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일차적인 것은 예수를 따르는 데 수반되는 인격과 신앙,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내면화, 성령의 열매 맺는 삶, 삶의 우선순위와 같은 성품과 영성의 과제들이다. 이차적인 것은 직장, 사역, 우정, 결혼, 봉사, 재능, 교육 등과 같이 더욱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활동들이다.
저자는 일차적인 것을 전제로 이차적인 것들을 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이차적인 것보다 일차적인 것에 훨씬 더 관심이 있으시다”(p. 105).
소명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저자는 소명이 우리를 움직이는 과정을 ‘사랑의 여정-지혜의 여정-고난의 여정’으로 서술한다. 앞서 말했듯이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놀라운 사랑의 관계가 인간을 해방하고 개인의 우선순위를 넘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삶으로 확장된다.
사랑은 관계 안에서만 일어나기에, 사랑의 여정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삶으로 이어진다. 부름받은 공동체(에클레시아)인 교회는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연습하는 곳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는 상황에 대한 실존적 지혜가 필요하다.
저자는 모든 상황에서 지혜의 준거점은 하나님의 진리와 성품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약속의 땅이 아닌 망명지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제일 소명은 고난의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충만히 거하면 우리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서 우리가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로 서서히 옮겨지고, 우리의 내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하는 바람이 싹트게 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포기하고 소명의 모험에 들어선 이들을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에도 여러 사례들이 담겨 있다. 로스쿨을 포기하고 도시 빈민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면서 부모와 의절하는 위기에 놓인 청년, 도시 갱단의 일원에게 음식 만들어 주는 일을 하면서 수차례 강도를 당한 신실한 그리스도인, 은행원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대출 정책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교회 여성 등은 고난의 여정으로서의 제일 소명을 보여 주는 생생한 실례들이다.
이 시대는 분명히 소명의 혼란을 겪고 있다. 돈과 취업으로 가장 불안해한다는 대학생들과 심층 상담을 해 온 한 교수는 최근 청년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쯤 되면 이 책의 문제 제기는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고 이 사회의 현실과 공명하지 않겠는가? 제일 소명의 실천은 그야말로 모든 일에서 예수를 따르는 삶이기에 특별한 상황이나 조건이 갖춰지기 까지 기다림이나 머뭇거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그 누구도 제일 소명의 숙제 앞에 예외는 없다!
■ 본 원고는 《목회와 신학》 2014년 12월호에 실린 원고를 편집한 글입니다.
김선일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의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도학, 선교적 교회, 일의 신학과 소명 등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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