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교회
세상이 이웃 삼고 싶은 교회
팀 체스터․스티브 티미스 지음|신대현 옮김|무선 256면|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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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교회」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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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국제 구호 단체에서 일하는 한 청년을 만났다. 약 10~20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분쟁 지역에서 가옥을 빌려 단체로 생활하며 일하는 단체였다. 그는 사무실과 집이 분리되지 않은 데다 생명의 위협에 장시간 노출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가 있었으니 바로 교회를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주일성수를 철칙으로 여기며 자랐지만, 이 NGO에서 찾아간 대부분의 나라는 이슬람권이었고 더구나 전쟁 통에 교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휴가차 한국에 들어와 그곳에 다시 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우리는 Everyday Church(일상 교회)와 베드로전서를 같이 읽기로 했다.
「일상 교회」는 팀 체스터와 스티브 티미스가 섬기는 크라우디드 하우스에서 베드로전서를 설교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전작 「교회다움」에서 ‘교회’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제공했다면 이 책에서는 ‘교회의 성도란 누구인가’라는 실제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책은 세속 사회에서의 성도의 정체성을 규정하며 시작한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거류민이나 나그네에서 찾는 베드로전서와 볼프가 베드로전서를 해석한 논문인 ‘온건한 차별성’에 신학적 바탕을 둔다. 그러므로 책 전반부에서 저자들은 기독교 중심주의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교회를 오히려 원래의 모습에 가까운 교회로 평가하고, 나아가 이를 교회의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새롭게 규정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참된 삶이 무엇이며, 세상에서 기독교인의 자리는 어디인지에 대한 바른 관점을 되찾는 것이다. “주변부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정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기독교 국가가 비정상적이었다. 우리는 대중매체나 시내 중심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기보다, 핍박이 아닌 모든 것이 기대하지 않던 보너스라는 인식을 회복해야 한다.”(p. 55)
‘보너스 의식’은 베드로전서에서 고난과 기쁨이라는 대비를 통해 나타난다. 특히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는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저자들은 ‘보너스 의식’의 회복이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을 더욱 명확하게 할 것이며, 기독교가 대안적인 생활 방식, 가치관, 관계에 대해서 숙고할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재세례파의 급진적 공동체 중심주의와 많이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저자들은 재세례파가 취하는, 세상과 단절된 급진적 공동체가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더욱 주변부 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일상 공동체로서의 교회, 목양, 선교, 전도라는 구체적인 적용점들로 그들의 논의를 확장한다. 학자이면서도 실제를 잃지 않는 교회적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체크리스트와 실제적인 제안들은 당장 교회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성도의 정체성=나그네, 교회의 위치=주변부라는 근본적 관점의 변화 없이는 이러한 제안들은 또 다른 실용적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들은 이러한 주변부의 삶을 방해하는 요인들로 책의 말미에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제시하는데, 그중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사람’이다.
교회에서 사람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거의 유일하고도 핵심적인 원인이다.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람을 제한 교회를 상상할 수 있다면, 신학적으로 완벽한 교회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들은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짜증나며, 갈까 말까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로 떠오른 ‘가나안 성도’라는 말 속에 “예수님은 좋은데 기독교인들은 싫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누군가는 ‘가나안 성도’ 현상을 교회를 기관이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로 규정하며 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직보다 성도의 삶이 우선한다는 점에서 그 의도에 동의하긴 하지만, 사람을 제거한 완벽한 교회를 상상하는 이상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오히려 문제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시작한다’는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 교회는 우리의 우상들을 드러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죄의 욕망을 위협하거나 좌절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항변하거나 급히 뛰어들어 우상들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떨어지게 놔두라! 우리의 우상들이 산산조각 깨지는 고통이 있겠지만, 우리는 유일하고 참되신 주님을 향하게 된다.”(p. 242) “그냥 떨어지게 놔두라”는 저자들의 말은 마치 교회와 나를 향한 예언처럼 들린다. 잘해보려 했지만 일상의 모든 실패를 겪으며 우리는 함께 고난당하시는 십자가의 예수님, 바로 복음을 발견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인 교회가 아직도 우리의 소망인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바라보며 실패 속에 함께 아파하시는 예수님을 알아가고, 언제나 함께 계시는 그분으로 인해 영광을 발견한다. 이런 삶은 당연히 우리가 관계하는 일상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상이 되며, 일상은 교회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제목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상 교회」는 교회와 일상을 구별하지 말고 모두 다 일상이라고 주장하거나, 일상이 다 교회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상과 교회를 엄밀히 분리하고, 교회와 일상이 상호 교류하기 위해 교회가 더욱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강화해야 하며, 성도들은 복음을 통해 일상에 더욱 깊이 침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서두에 말한 그 청년에게 ‘당신의 교회’를 찾으라고 격려했고 교회가 당신의 일상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것을 돕게 하라고 격려했다.
대화를 나누던 당시까지도 돌아갈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청년의 소식을 몇 주 후에 들을 수 있었다. 더 힘든 중동의 분쟁 지역으로 떠났단다. 그가 내가 격려한 그런 교회를 찾았는지 알 수 없다. 아마 공동체와 개인의 일상이 통합된 교회인 ‘일상 교회’를 주변에서 쉽게 찾길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 교회」라는 책은 그 가치와 기대의 중요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아마 청년도 언젠가 만날 ‘일상 교회’의 소망과 가능성을 품었기에 더 힘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때를 기억하며, 청년의 일상을 위해 기도한다.
이춘성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라브리 공동체에서 30대를 보냈다. 지금은 고신대학원에서 기독교 윤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강릉한마음교회 교육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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