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과학과 신학의 하나님 탐구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박규태 옮김|반양장 560면|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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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자연신학을 부활시키고 있다!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는 근대주의적 자연신학의 맥락에서 변증적 시도들을 해왔지만 사실 그런 접근법은 신학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지 오래다. 그런데 과학에 정통한 맥그래스가 자연신학에 새로운 옷을 입혀서 21세기 상황에 맞게 부활시키고 있다. 맥그래스의 과학적 신학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삐딱하게 보겠지만 나는 그의 작업이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신학을 부활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자연신학이 겪은 실패와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가는 창조과학과 지적설계에 대해 올바른 조명과 대안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자연신학의 부활
‘삼위일체 자연신학’으로 번역된 1부의 원제목 ‘A Trinitarian Natural Theology’는 ‘기독교적’ 자연신학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19세기 영국의 고전적 자연신학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새로운 자연신학의 이름으로 맥그래스는 ‘trinitarian’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삼위일체 혹은 기독교 자연신학이란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적 자연신학이 제시하는 신(시계공)은 사실 이신론의 신에 가깝다. 그러나 시계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이신론의 신과는 달리, 유신론의 신은 지금도 자연 세계를 운행하는 신이다. 맥그래스의 삼위일체 자연신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무’ 신이 아니라 바로 기독교의 신을 대상으로 한다. 이신론이 우주를 창조한 신을 대상으로 한다면, 유신론은 우주를 창조하고 지속적으로 섭리하는 신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에 맥그래스의 삼위일체 자연신학은 우주를 창조하고 지속적으로 섭리하면서, 동시에 성령을 통해 우리가 성경과 자연을 올바로 이해할(해석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신을 대상으로 한다.
기존의 자연신학과의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자연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변증적 입장보다는, 기독교적 시각이라는 독특한 렌즈를 통해 자연을 읽어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십자가의 고통을 경험한 성자와, 성경과 자연을 읽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지혜를 주는 성령의 역할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자연을 읽어내는 해석에 대한 강조는 과학을 절대화하는 19세기의 근대주의적 과학관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고, 삼위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소통은 고전적인 자연신학이 담아낼 수 없었던 구체적인 ‘기독교’의 신을 대상으로 삼게 해준다.
이러한 새로운 자연신학의 바탕 위에 맥그래스는 전작 The Open Secret에서 풀어 낸 개념들을 확장시킨다. 2부 ‘조율된 우주’는 과학적 관측 사실을 바탕으로 신학하기에 앞서 과학철학에서 많이 논의되는 유추 방법들에 대한 기술적 설명을 덧붙인다. 아울러, 어거스틴의 창조 이해를 분석하여 자연신학의 렌즈의 한 예로 삼는다.
맥그래스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과학)을 통해 신을 증명하거나 기독교를 변증하려던 계몽주의적 자연신학을 넘어서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조망하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자연신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기독교 전통이라는 렌즈로 자연을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더 이해할 수 있는 틀을 갖게 된다는 주장이다.
“자연 안에서 신을 증명할 내용을 찾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눈으로 자연을 보면서 창조주와 창조세계에 대한 더 풍성한 내용과 통찰을 얻으라”는 자연신학에 대한 맥그래스의 관점은 계몽주의적 자연신학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나의 시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가 신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를 통해 이 세상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맥그래스의 수고는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후반부는 만만치 않다.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를 빅뱅 우주론의 관점뿐 아니라 생명체의 탄생(화학 진화)과 진화(생물 진화)의 관점에서 각각 풀어 가는데, 몇몇 장들은 상당히 기술적이라 일반 독자들에게는 난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 진화의 방향성, 목적성 등을 차례로 다루는 맥그래스의 수고는 무척 고무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씨앗 창조론을 재조명해 창조신학의 기초로 세우는 접근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영감을 준다. 더군다나 창발성(emergence) 개념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현상까지도 창조라는 개념에 포함시키는 센스도 발휘한다. 과학이 알려주는 지식들을 가지고 유신론을 지지하는 해석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무신론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접근법이다. 물의 특수성이나 다중우주에 대한 설명 등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있지만 과학 관련 다양한 문제들을 담아낸 그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과학과 신앙의 대화에 상당한 유익을 준다. 논리적으로 간결하게 구성된 꼭지들은 산만함 없이 핵심 내용을 간파하게 하고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주제의 제목들은 흥미를 돋운다. 유명한 기포드 강연을 책으로 엮은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는 최근 그가 시리즈로 낸 방대한 분량의 책들의 핵심을 압축한 축약판이며 근대주의적 자연신학을 넘어서는 수작임이 분명하다.
“저자는 현대 과학의 결과를 기독교 신학 안에 충분히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조망하면 보다 적합한 설명이 가능함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새로운 얼굴로 자연신학을 부활시킨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우종학 과학과 신앙이 조화롭게 대화하는 날을 꿈꾸는 별 아저씨.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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