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듯 오는듯 안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 겨울인 것 같고 2014년인 것 같다.
하지만 엄연히 2015년은 벌써 4월 언저리까지 왔고,
2014년을 정리하고 2015년으로 넘어가야만 하는 때가 왔다.
그리하여, 세 명의 편집장과 두 명의 영업자는
2015년 3월 5일 목요일 아침, 분위기 좋은 IVP 산책에 모였다.
참석자: 노종문(편집1부, 이하 노), 정지영(편집2부, 이하 지),
정모세(편집3부, 이하 모), 정성운(영업부, 이하 운), 최재인(영업부, 이하 재)
프라이버시를 생각하여 얼굴은 드러내지 않는 걸로... ^^
<2014 기독교 출판계 키워드 정리>
운: 가장 먼저 도서정가제를 들 수 있겠다. 할인이 없어서 소비가 위축된다는 흐름이 기독교 시장에도 적용되기는 했지만, 원래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맞게 소비 패턴이 온라인으로 쏠리는 현상이 줄고 지역 서점에서 매출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이제 법의 틀 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어떻게 충실히 감당할지 더욱 고민해야겠다.
국내 저자 강세 현상도 눈에 띈다. 기독교출판협회에서 집계한 2014 기독교 베스트셀러 50위 중 38권이 국내서이고, 이찬수, 조정민, 유기성 목사님 등 검증된 국내 저자의 책은 계속해서 베스트에 진입한다. 이런 구매 패턴이 지역 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재: 목회자 책의 경우 기본적으로 구매층과 홍보 채널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저자 강연을 다니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고, 전체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이 기독 출판 시장의 구조적 특이점이다.
국내 저자들이 꾸준히 책을 내고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하는데 판매량은 줄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새 기독교쪽 초대형 베스트셀러도 없었다. 예전 베스트셀러는 10만 부 정도 팔렸는데 지금은 초기 진입 1만 부만 돼도 베스트로 집계된다. 이런 현상은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 출판계의 흐름과 동일하게 나타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세월호 사고의 영향도 있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자숙하는 분위기가 이어졌고, 출판 시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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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모세 |
지: 출판 또는 독서와 관련해 다양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등장이 눈에 띈다. 출판사와 독자만 존재하던 기독 출판 시장에서 저널 같은 전통적 매체와 SNS 같은 새로운 소통 채널을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달의 책이나 올해의 책을 더 적극적으로 선정하는 언론, 함께 읽기를 위한 도서관, 기독 출판계 밖에 몸담고 있는 전문 출판인들의 참여가 증가하면서 기독 출판계와 독서 판매에 변화가 일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예가 「광장에 선 기독교」인데, 오피니언 리더와 의식 있는 독자층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어 판매에 호조를 보였다. 하지만 일반 독자층까지 깊숙이 전해지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다.
노: 그럼에도 공적 신앙은 2014년 기독교계의 중요한 이슈였다고 말할 수 있다. 독자층이 크지는 않았지만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신학생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토론된 주제였다. 세월호 사고 및 사회적 위상이 축소되는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 교회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고조되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광장에 선 기독교」를 가지고 개최했던 공적 신앙 세미나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개정되어 나온 「무례한 기독교」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재: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해가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기독교인이 기독교적 시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다. 정교하지 못한,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독교적 사고를 가지고 현대 사회를 해석한 대표적인 사건이 문창극 총리후보 관련 이슈다. 분명 신앙에 대한 열정과 옛날 함석헌 선생의 설교 방식을 취했겠지만 굉장한 괴리가 있었고, 결국 대중들에게 기독교적 해답이 아닌 반감만 주었다.
모: 2014년에는 출판사들이 자기 색을 찾아가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져서 출판사 이름을 들으면 몇몇 특징들이 분명하게 떠오른다. 또 불황이 한 가지 이유일 텐데, 많은 출판사들이 신학책이나 두툼한 학술서나 시리즈물 출간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요즘 단행본들은 나온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반면 그 시장은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된 판매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출판사의 기획이 그쪽으로 쏠릴수록 그런 서적들이 서로의 판매를 이끌어 올릴지, 아니면 제한된 구매력으로 평균 판매가 줄어들지 잘 모르겠다.
<2014 IVP 출간도서 중 아쉬운 책>
지: 요즘 「일상 교회」나 「슬로처치」(새물결플러스) 등 교회론에 대한 내용이 화두가 되고 대안 교회론을 모색하는 목사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의 모략」이 바로 다양한 나라와 상황과 계층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정리해 주는 ‘대안 사전’ 또는 ‘사례 보고서’ 같은 책이다. 인쇄 사고와 출간 시기의 문제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정말 아쉽다. 여전히 교회 갱신에 관심 가질 만한 분들이 읽어 볼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텔레비전 육아 프로그램과 일반계 출판에 ‘아빠 전성시대’라는 키워드가 있었음에도 도널드 밀러의 「아버지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많이 소개되지 못한 것 또한 아쉽다.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 핵심 독자를 확대해 콘셉트가 모호해졌다. 출판을 하다 보면 늘 이런 딜레마가 존재한다.
운: 우리 출판사의 대표 저자인 김영봉 목사님의 책인 「팔레스타인을 걷다」를 꼽는다. 목사님 글에 대한 독자들의 호감도가 높은 편인데, 이 책 역시 세월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스라엘에는 환상을 가지고 팔레스타인에는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도 일부 있었다. 더구나 2014년 2월에 성지순례객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미지가 더더욱 안 좋게 부각됐다. 평화적인 시대였다면 그곳에 방문해 예수님의 길을 밟았겠지만 시기를 잘못 타 아쉬움이 컸다.
재: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뜻으로 본 통일 한국」이 더 빛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근대 이후 현대사를 왜곡해서 인식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기독교적 현대 역사관의 길잡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노: 나는 「신학자가 풀어 쓴 유교 이야기」를 꼽겠다. 신학과 유학을 제대로 공부한 보기 드문 전문가의 연구로서 훌륭한 기여를 한 책이다. 저자가 장신대 교수로 강의하시는 동안 최고의 인기 강좌였는데, 출간 직후 세월호 사고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할 수 없었다. 꾸준한 반응이 있지만, 확산에 힘을 받지 못해 좀 아쉽다.
<2014 IVP 출간도서 중 의미 있었던 책>
재: 「교회탐구포럼4: 교회의 성 잠금해제」를 꼽겠다. 요즘 청년들은 개방적인 성 의식을 지녔는데 교회는 보수적인 태도만을 고집하고 가르쳐 왔다. 이 책에서는 그런 현실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책은 젊은 세대의 성 문제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량화된 실증적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로 인해 기존 교회 탐구포럼 1-3권까지 주목받고 있고, 포럼 자체도 연구로서 자리잡고 있다.
지: 보통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말할 때 비판받는 점이‘거대 담론’만 다룬다는 것인데, 「좋은 교사를 꿈꾸다」는 기독교 세계관에 의한 교육학 담론이 우리나라의 토착 상황에서 기독교적 교수법이라는 세부적인 각론을 펼쳐 낸 책이다. 기독 교사 운동의 1세대였던 저자는 기독 교사 운동을 하며 겪은 이야기와 실제적 사례들을 저자 특유의 투박함과 진솔함으로 담아내고 있어 성경적이면서도 우리 정황에 맞는 기독교적 수업이라는 실체를 찾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노: 나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음」을 꼽고 싶다. 김유복 목사는 30년 동안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복음을 전해 왔다. 책의 내용을 보면 책상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 불신자들과의 수많은 대화의 경험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편집 과정에서도 저자는 늘 ‘불신자들의 실제 질문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최근에 나온 신무신론과 같은 이슈들에 대해서 성실히 연구하여 답하고 있으며, 복음을 개인 구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소개하는 점에서 뛰어난 변증서다.
모: 나는 2014년 IVP의 출간을 네 가지 주제로 정리해 봤다.
1) 기독교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한 것, 곧 기독교 공공성에 대해서 꾸준하게 다룬 것이 의미있다. 「광장에 선 기독교」, 「무례한 기독교」(개정판), 「하나님 편에 서라」, 「예수 혁명」, 「제일 소명」 등을 통해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2)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모략」, 「케이프타운 선언」 등을 통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해 협력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3) 「죽음을 배우다」, 「첫아기를 가진 부부에게」, 「강자와 약자」, 「일상 상담」 등 다양한 생활 영역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4)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와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통해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를 깊이 살펴봤다.
또한 2014년에는 국내서를 8권(25%) 출간했는데 예년에 비해서는 많지만 앞으로 국내서가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국내서 기획도 늘어나고 있으며 2015년에는 10종가량 출간할 계획이다.
<2015년 IVP 출간 방향과 기대되는 책>
모: 앞서 말했듯 약 10종의 국내서를 준비 중이다. 신원하, 정일권, 우병훈, 박영돈 등 고신 교단 라인 국내 저자들의 책들이 포진돼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개혁적인 개혁주의 성향을 지닌 저자들의 책을 낼 수 있어서 고무적이다.
운: 올해도 말씀을 다루는 책들이 강세를 지속할 것이다. 우리 독자들에게는 말씀에 대한 필요가 늘 있는데, 이 필요들을 어떻게 독자 수준에 맞게 풀어낼지가 과제다. 2014년 12월에 출간된 「말씀을 읽다」(예수전도단)는 첫 저작이기도 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1개월 사이 1만 부 정도 팔렸다. 우리가 펴낼 「손에 잡히는 구약/신약 개론」 역시 그런 점에서 의미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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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마존닷컴 |
노: 올해에는 우리도 성경과 관련한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있다. BST 구약 시리즈 출간을 재개한다. 지금 레위기 번역 원고를 읽고 있는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원고다. 크게 기대하고 있다. 또한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를 완간하고, 톰 라이트의 신약 번역인 「하나님 나라 신약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 힘을 얻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또한, 공적 신앙 이슈를 발전시켜서 타종교 문제를 다루는 책, 「기독교는 타종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와 미로슬라브 볼프의 「알라」, 앤디 크라우치의 「권력의 타락과 구원」, 신약 성경의 제국 비평(제국이라는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 민감하게 본문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는 「예수인가 카이사르인가」 등이 기대된다.
모: 개신교 선교사 입국 130주년을 맞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전기를 출간한다. 단지 역사적 관심이 아닌 공적 신앙의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 형성기를 되짚어 보면서 한국교회의 성격을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뜻밖의 손님 이야기」,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청소년판」, 「어린이 성경」 등 독자층을 넓히는 시도도 꾸준히 이뤄질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톰 라이트와 미로슬라브 볼프의 책들이 기대된다. 특히 볼프는 현대의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탁월하고도 실제적인 견해를 내고 있다. 「기억의 끝」에서는‘용서’와 관련된 ‘기억’을 전면에 배치하는데, 이 키워드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화두가 되지 못한 주제이지만 신학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재: 나도 볼프의 「알라」를 기대한다. 2014년부터 이슬람 관련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교계에서는 이슬람권에 대해 굉장히 두터운 저항의 벽을 쌓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어느 정도 정확한 통찰과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지: 나는 「기독교 교리 핸드북(제3판)」을 꼽는다. 신학과 관련된 책을 꾸준히 출간했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교리 책을 출간한다는 것도 의의가 있고, 무엇보다 교리와 신학보다는 삶이라는 실천적·실존적 영역에 방점을 둠으로 연성화되고 빈약해진 복음주의의 약점에 균형을 잡아 준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3번의 개정을 거치는 동안 매번 새로운 글로 추천을 해 온 제임스 패커의 책임 있는 모습에서 보듯, 이 책은 1982년 출간 이후 복음주의권에서 건전한 신학과 교리 공부를 하려는 이들에게 표준적인 조직신학과 교리서로 애용된 책이다.
<IVP를 대표해 각오 한 마디>
운: 도서정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각 출판사의 할인 정책들이 이벤트로 이어지고 있는데, 영업부에서는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참신한 마케팅을 위해 예전보다 더 긴밀하게 계획을 세우겠다.
재: 출판 영역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고, 한 출판사가 한 분야를 떼어 내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는 역할을 하겠다. 물론 전문 영역의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같은 가치로 아우를 수 있는 대중적 접근 역시 놓치지 않겠다.
모: SNS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도 독자들과 잘 만나기 위해 SNS를 잘 활용하고, 북콘서트도 적극적이고 꾸준히 지속해야겠다. 함께 운동해나가는 데 노력하겠다.
지: 우리가 본질적으로 지녔던 가치와 유산들을, 우리는 잃어가고 세상은 잘 발견해 활용하고 있다는 데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최근 일반 출판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함께 읽기’라는 트렌드가 그렇다. 나는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줄곧 해 왔던 문서운동의 일반 버전이라 생각한다. 가슴에 품었던 비전과 함께 나눠야 할 유산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다른 이들이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는 것에 도전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노: 우리의 생각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G&M 재단의 오디오북 사업이나 양질의 콘텐츠들이 다른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등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고맙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다 해내지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한국적 복음주의 운동의 촉매가 되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본다. 전체적으로 출판이 복음주의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뒷받침할 수 있었으면. IVF와 함께 큰 그림을 잘 그리고 이를 통해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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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카카오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