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메시아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만물을 바로잡으실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

"보십시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고,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입니다."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의 열 여덟번째, 곧 마지막(드디어) 책인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이 출간되었습니다.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

톰 라이트 지음 | 이철민 옮김
2015년 12월 16일 발행
129*188 | 무선 304쪽|값 12,000원


요한계시록은 묵시 문학의 양식으로 쓰였고, 현대인에게 생소하고도 충격적이며 때때로 기괴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가득하기에, 오늘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집니다. 고대 문헌과 초기 기독교 역사에 관한 방대한 식견과 통찰을 갖춘 안내자가 반드시 필요한 책이지요. 

이를 위해 톰 라이트는 요한계시록을 가득 채운 두려운 환상, 영혼을 일깨우는 예리한 경고, 만물의 마지막 운명과 회복에 대한 희망의 말씀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며 긴장과 도전과 흥미 가득한 말씀 속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1세기 말 로마 제국은 반역자 요한을 터키 서쪽 지중해 위의 작은 섬 밧모에 유폐합니다. 그런데 그 유배지의 요한에게 세상을 뒤흔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커튼 속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법정을 엿보았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전달할 성령의 말씀과 환상을 받습니다.

그 말씀은 혼란 속에 있는 교회를 향한 엄중한 경고와 위로였고, 또한 어둠의 시대를 분별하며 헤쳐 나가도록 인도하는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환상은 세상의 오만한 통치자들을 두렵게 할 하나님의 최종 심판 계획이었으며, 악에 맞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신실하라고 교회를 격려하는 환상이었지요.


결국 요한계시록은 악의 지배라는 어둡고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도록 교회를 붙드는 강력한 희망의 책입니다. 이제, 톰 라이트의 친절하고도 재미 있는 안내를 받아 요한계시록의 깊고 신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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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여러 지역 기독교 서점과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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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 드디어 완간!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성경으로 기도함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야 한다는 목표 아래, 톰 라이트는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현대 언어로,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고 해설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 신학 분야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저자가 세계적 수준의 학문적 역량을 쉽게 풀어낸 획기적인 시리즈이지요.

이제 열 여덟번 째 책인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이 출간되어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가 완전체를 이루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완전체를 선사할 수 있어 정말로 기쁩니다. (번역자, 편집자, 디자이너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이 주석을 통해 좀더 쉽고 명확하게 성경을 알아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많이 사랑해 주실거죠?


| 요한계시록 책 속으로 |

왜 이 편지들은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가?(7절) 이 책의 모든 언급을 하나로 모아 보면 명쾌한 답을 얻게 된다. 신생 교회가 맞닥뜨린 주된 도전은 이교도 박해의 위협이다. 사실 이 일곱 편지들은 주님께서 이 교회들을 앞으로 올 더 심각한 일에 준비시키는 일환으로 작성된 것 같다. 그들은 반격을 가하지 말고 인내하는 고난을 통해 친히 승리를 얻으신 주님을 따름으로써 ‘이겨야’ 한다. 이들 교회의 일부는 고난을 겪을 것이다. 일부는 죽을 것이다. 모두 예수님을 인내로 증언하여, 이를 통해 그들을 둘러싸고 위협하는 악한 세력들을 ‘이겨야’ 한다. _계 2:1-7 해설에서.

이 편지의 ‘지역색’은 뒤이어 최고조에 달한다. “너는 ‘나는 부자다! 나는 훌륭하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도시 전체의 우쭐대는 부유한 태도가 그리스도인들까지 물들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일말의 의혹도 남기지 않으신다. 사실 그들은 가련하고 불쌍하다(그렇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나, 그들의 실상을 보여 주는 두 가지 일반적 표현). 좀더 구체적으로, 그들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 그들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금이 필요하다. 그들은 예수님만이 제공하실 수 있는 고급 옷(그 지역에서 인기 있던 검은 옷이 아니라 흰옷)이 필요하다(우리는 갓 세례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거룩한 삶에 헌신되었음을 알리며 흰옷을 입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안연고가 필요하다. 프리기아의 명물도 그 지역과 사람들의 영적 눈멂을 치료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참담한 내용인데, 지역 문화의 다채로운 메아리로 인해 한층 더 그렇다. _계 3:14-22 해설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오랜 체스 게임 앞에서, 하나님이 그냥 게임 판을 박차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게임은 너무 지루하고 복잡해져서, 정신 나간 많은 사람들이 괴상한 일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너무 많은 고난과 고통과 분노와 폭력이 수반된다. 이제 하나님이 개입해 무언가 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탱크를 파견해서 반대 세력을 전부 휩쓸어 버리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런 반대 의견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린 사람들이나 애당초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간간이 들린다. 이 세상의 공포와 괴로움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그들은 질문한다. 이렇게 뒤죽박죽 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당연히 하나님은 발을 뻗어 반항하는 체스 판의 말을 죄다 불 속에 차 넣어야 하지 않는가? _계 6:9-17 해설에서.

이 단락 마지막 절에는 요한이 지금 묘사한 장면을 묵상하는 그의 냉철한 현실주의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사로잡힐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인생사다. 적절한 반응은, 싫다고 발버둥치지 않고 인내와 믿음을 굳게 붙드는 것이다. 11장은 말 그대로였다. 죽음에 이르는 신실한 증언을 통해 어린양은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의 나라가 괴물의 나라를 대신하고, 용이 자신의 권력의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상실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요한이 이 대목에서 하는 일은, 교회의 작은 지역적 투쟁이 의미를 갖기 위해, 또 타협하지 말고 증언하라는 도전이 의미를 갖기 위해 배경에 있어야 할 더 크고 암울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우리가 용과 괴물을 기억할 때만, 우리는 기독교 신앙과 믿음과 거룩함이 정말 얼마나 지독하게 중요한지 깨닫는다. _계 13:1-10 해설에서.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아니, 이 편지는? 『하나님이 내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편지’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와 썸 타던 시절, 그 남자는 하루에 하나씩 자신의 마음을 엽서에 적어 보내 주곤 했다. 프러포즈할 때도, 결혼기념일에도, 호사스런 선물 없이도 그가 적어 주는 진심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화장대 서랍 안에 고이 모셔둔 편지를 꺼내어 읽다 보면 잊어버렸던 그 마음이 어느새 새롭게 전해지곤 한다.

근데, 하나님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셨단다. 음, 뭐라고 하시려고...?


IVP 어린이 그림 성경
하나님이 내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글레니스 넬리스트 글 | 소피 올소프 그림 | 홍종락 옮김
2015년 12월 13일 발행
273*228 | 양장 76면 | 값 12,000원



IVP에서 준비한 그림 성경책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출시됐다. 
보통 이 시즌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올 선물을 기다리곤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선물 속에 담긴 메시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편지들은 구약에서 아홉 편, 신약에서 아홉 편 에피소드를 골라 
스토리로 만든 그야말로 성경책이다.


한 에피소드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성경의 중요한 사건이 나오고,



그 다음 장에는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편지에 담겨 있다.




맛배기로 멋진 그림 좀 방출하겠다.
 어떤 부분에 나오는 그림일지 맞춰 보시길~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 “헌신해라”가 아니라 
그에 앞서 “너를 사랑한다, 네가 소중하다”는 것임을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깨달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나님이 가장 잘 만든 작품이 나라니!!! ㅠㅠ

누구나 읽기 쉬운 입말로 되어 있어서,
7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엄마아빠나 언니오빠형아누나가 소리 내어 읽어줄 수 있고, 
또 초등학생 이상 아이들은 직접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어도 보고, 이름도 써 보는 활동이 가능하다. 

아참, 맨 마지막 편지 다음에는 펼쳐서 볼 수 있는 초대장과 
직접 하나님께 답장을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꺄악!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완성도 높은 그림으로 선보이는 IVP 어린이 그림 성경!
하나님의 진심을 듣고 싶은 나에게, 
그 마음을 들려주고 싶은 주변 사람들(아이들)에게 선물하시라!
주일학교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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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내게 편지를 보내셨어요』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여러 지역 기독교 서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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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오늘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기초와 나아갈 길을 찾다 『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



"불신앙에 빠져 완고해지지 말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주목하십시오"

가슴 벅찬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꽉 채운 주석, 
오늘의 언어로 쓴 모든 사람을 위한 주석!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의 열 일곱번째 책인 
『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가 출간되었습니다.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
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
 
톰 라이트 지음 | 이철민 옮김
2015년 10월 30일 발행
129*188 | 무선 256쪽|값 11,000원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권고와 위로의 설교인 히브리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암울한 소문들에 휩싸여 실망하고 낙심에 빠진 성도들에게 처음 가졌던 믿음을 단단히 붙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다고 분노하고 불평하지 말고, 고난을 통해 온전케 되신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면하는 히브리서의 말씀은 예리한 양날 검과 같이 우리의 정신을 가르며 잠들었던 영혼을 뒤흔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자는 혼란과 불확실함 속에 있던 교회를 향해 다시 흔들리지 않는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고합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룬 구원과, 그 구원으로 인해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수혜자가 되었으며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이미 얻었는지를 제시하며, 복음의 진리에 대한 풍부한 강해를 통해 히브리서 저자는 교회가 어떻게 갱신된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를 일깨우고 권면하고 그 길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긴 논증으로 진행되는 히브리서는 다양한 성경적 주제에 대한 해설과 신자들을 향한 권고가 얽혀 있고, 다소 생소한 주제와 신학적 체계를 담고 있어서 현대인이 결코 쉽게 읽기 어려운 책입니다. 그러나 탁월한 성경 교사인 톰 라이트는 알기 쉬운 비유와 예화를 통해 본문의 핵심 주제들을 신선하게 조명하고, 간결하고 함축적인 특유의 문장으로 히브리서의 강력한 메시지를 부각시킵니다. 그의 해설을 통해 독자는 새로 알게 된 친구처럼 히브리서와 만나 사귀게 되며, 정곡을 찌르는 히브리서의 메시지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해하기 쉽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신학적․역사적 통찰이 가득하고, 묵상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주석이다.” (아마존 독자평)


Surprised by Hope 책을 들고 열강 중이신 톰 교수님 ⓒGareth Saunders


드디어 완간을 앞둔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성경으로 기도함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야 한다는 목표 아래, 톰 라이트는 일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현대 언어로,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고 해설했습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 신학 분야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저자가 세계적 수준의 학문적 역량을 쉽게 풀어낸 획기적인 시리즈이지요.

IVP에서는 이제 열 여덟번 째 책인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을 2015년 12월에 출간함으로써 "톰 라이트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를 완간할 예정입니다. (와아!! 드디어 시리즈 완성! 소장 욕구 불끈!!) 완간의 기쁨을 우리 독자 여러분과 함께 누리고 싶네요.

지금까지 펴낸/펴낼 책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마태복음 (I, II부) 양혜원 옮김/ 320, 312면
모든 사람을 위한 마가복음 양혜원 옮김/ 340면
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이철민 옮김/ 448면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복음 (I, II부) 이철민 옮김/ 252,264면
모든 사람을 위한 사도행전 (I, II부) 양혜원 옮김/ 304,390면
모든 사람을 위한 로마서(I, II부) 신현기 옮김/ 262면, 206면
모든 사람을 위한 고린도전서 이철민 옮김/ 330면
모든 사람을 위한 고린도후서 이철민 옮김/ 224면
모든 사람을 위한 갈라디아서·데살로니가전후서 이철민 옮김
모든 사람을 위한 옥중서신 김명희 옮김/ 300면
모든 사람을 위한 목회서신 김명희 옮김/ 236면
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 이철민 옮김 / 256면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서신 김명희 이철민 옮김/ 304면
모든 사람을 위한 요한계시록 이철민 옮김 / (2015.12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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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여러 지역 기독교 서점과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 주요 온라인 서점,
갓피플몰, 라이프북 등의 기독교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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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

모든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과거나 현재나 메시아, 즉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시라는 믿음에서 자신의 사고를 시작한다. 다른 것은 전부 여기에서 파생된다.
따라서 비록 우리는 이 서신의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에 대해 훨씬 중요한 것을 알고 있다. 저자는 출발부터 자신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했다. 그리고 그는 이 서신의 끄트머리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며 우리도 그분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12 : 2 13 : 8). 당신은 이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_히 1:1-5 해설에서.

흔히 현대의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은 위협적인 것인 데 반해 예수님의 *복음은 달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대조를 이해했다. 이런 이해에도 상당한 진리가 담겼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다른 면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그 진면목대로 상쾌하고 도전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낱 포근한 담요로 만들고 만다. 만약 왕이나 대통령, 황제, 수상 혹은 누구든 당신의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이 특사를 통해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면 당신은 당연히 주목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만약 그가 당신을 보러 직접 나타난다면, 당신은 그냥 주목만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가 뒤집히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 율법은 특사(천사)를 통해 전달된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복음의 메시지에서는 왕이 우리에게 직접 얘기하기 위해 친히 오셨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너무 분주하다고, 번거롭게 그분에게 가서 얘기를 나눌 수 없다고, 근사한 책을 읽고 있어서 당장은 내려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_히 2:1-4 해설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도, “고난을 통해 순종의 본질을 배우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단지 영광과 희열 속에 살면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문제라고 (저자가 말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선 세상을 만든 하나님이시고, 창조 세계가 방종하고 부패했는데도
창조 세계를 향한 뜨거운 헌신을 유지하신다. 예수님이 그분의 아들이 되셔야 한다면, 이 창조 세계 경영이 무엇인지, 창조 세계가 봉착해 있는 혼란에서 구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창조 세계의 양지와 더불어 음지도 이해해야 한다. 그분은 아버지의 순종하는 아들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곧 그것이 고난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저 귀한 아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디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셨고 사랑하시는 세상이 암울하고 사악한 곳이며, 그 세상을 구출하기 위해 아들이 그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_히 5:4-10 해설에서.

물론 사람들이 서로 섬기기 위해, 또 자신의 거룩한 삶을 위해 인내하며 일할 때, 그들은 대개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이 점에서 바울 서신과 히브리서는 똑같이 일관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떠올려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즉시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라고 덧붙인다(빌 2:12-13, 새번역). 우리가 부름 받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성령의 능력 가운데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성령은 과거 하나님의 약속(이것은 다음 단락의 주제다)과 *메시아 예수의 완결된 사역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신다. 성령의 사역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 그리고 (특히) 우리의 의지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사고와 생활의 여러 대목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의 신비와 동일한 신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거룩한 삶을 살고 있거나 혹은 이웃을 사랑하거나 혹은 당신이 부름 받아서 시작했던 기독교 사역 프로젝트에 가담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느낌이란 내일 아침 날씨만큼이나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나는 1년 내내 변화무쌍한 날씨에 익숙한 영국인으로서 이 글을 적는 것이지, 가령 어제처럼 내일도 맑고 화창할 것임을 아는 남부 캘리포니아 인으로서 적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부르심,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지금 신실하게 인내해야 할 당신의 책임이다. “빈틈없이 완수할 때까지.” _히 6:9-12 해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영원하고 더없이 효과적인 제사장직을 신뢰한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어 주는 “더 좋은 소망”이다(19절). ‘더 좋은’(혹은 적어도 여기서 그렇게 번역하는 헬라어 단어)이란 단어는 나머지 신약 성경 전체를 합친 것보다 히브리서에 더 많이 등장한다. 이 표현은 우리에게 히브리서 저자의 사고방식에 대해 중요한 내용을 일러 준다. 저자가 일관되게 대조하는 것은 나쁜 것과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옛 제도가 그 성전, 그 율법, 그 레위계 제사장직과 더불어 나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은, 예수님으로 인해 도래한 새로운 세대가 지나간 세대보다 훨씬 더 좋다는 뜻이다. 이제 마침내 ‘완전함’이 시야에 들어오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것을 성취하셨다. 따라서 우리 모두 *믿음과 소망 안에서 정진하여, 하나님이 이 수단을 사용해 우리를 위해 준비하셨던 완전함, 영광스런 새 세상을 꽉 움켜쥐자. _히 7:11-19 해설에서.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언제나 소망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것에서 그분을 신뢰하는 것인 반면, 소망은 미래를 바라보며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1절에서 우리가 보듯이, 히브리서는 실제로 믿음을 소망과 연결 지어 정의한다. 소망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이 그 밑에 믿음을 가질 때 소망은 확신(assurance)을 준다. 나는 더 좋은 세상, 무덤 너머의 새로운 몸의 *생명을 소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내 소망은 단순한 낙관주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나는 내 주위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심지어 모종의 인격적 힘이 영원히 존재하고 나는 그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막연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내가 믿지 않는다면, 이런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인식에는 신념(conviction)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확신과 신념은 이 장 나머지에 열거된 믿음의 사람들에게 놀라울 만큼 분명했다. _히 11:1-6 해설에서.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이 옛 *언약의 초기부터 그것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기까지 자기 백성을 인도하고 이끄셨다는 사실, 그리고 독자들이 살고 있던 새 언약의 초기부터 “앞으로 올 도성”에서 그들 자신이 성취되기까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이었다. 어제, 다시 말해 옛 언약 시대에 예수님은 동일하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가 ‘*메시아를 위해 모욕을 겪었다’고 말한다(11 : 26). 과거나 현재나 그분은 사람이 되신 영원한 분, 세상을 만드신 분이다(1:2-3, 10-12).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알았던 그분에 대한 다른 계시 혹은 다른 하나님의 계시였다고 잠시라도 결코 생각하지 말라. 이것은 동일한 하나님에 대한 신선한 계시였다. 당신이 지금까지 편지와 간헐적인 전화 통화를 통해 서만 알던 어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과 같다. _히 13:1-8 해설에서.

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우리는 성경을 생명의 말씀으로 대하고 있는가? 『성경이란 무엇인가』


엉클 존이 10개월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21세기의 청중들에게 말합니다.
"성경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이란 무엇인가
온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계시
존 스토트 | 박지우 옮김 | 128*196 | 128면 | 8,000원 



이 책은 존 스토트가 1980년 올 소울즈 교회에서 설교한 시리즈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로써 동시대의 청중들과 독자들에게 성경을 바로 알고 성경을 사랑하고 살아 내라고 도전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1980년에 한 설교가 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지는 말씀 같습니다.




성경,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토록 이야기해도 모자라지 않다는 말인가.



성경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마 집집마다 책장에 적어도 한 권은 꼭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집어 들어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경은 과연 어떤 책이길래 우리가 지금까지도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2천년, 그보다 더 오래된 것 같은 이야기들을 담아낸 이 말씀, 과연 21세기에도 유효할까요?

우리의 선생님 존 스토트는 1-3장에서 성경을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삼위일체와 연결해 설명합니다. 곧 하나님이 성경의 근원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주제이시며, 성령이 성경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영감을 불어넣으신다는 사실이죠. (1장 하나님과 성경, 2장 그리스도와 성경, 3장 성령과 성경)

이어서 4-5장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성경을 바른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권합니다. 교회는 성경 위에 굳게 서서 성경에 담긴 보물을 지키고 전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경배와 믿음과 순종으로 그분께 반응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여 성숙에 이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4장 교회와 성경, 5장 그리스도인과 성경)




성경, 그리스도인의 삶과 공동체에서 본래의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권위 있는 책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성경의 약속을 받아들이며,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살아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드렸듯, 성경을 집어 들어 읽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교회에서 같이 읽자고 하는 말씀 범위만큼만 읽고 더 이상 진도를 빼지 않는다는... 아마도 성경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막연히 신앙생활의 일부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1년 런던현대기독연구소에서 말씀을 전하는 존 스토트
by Brett Jordan

“기대하는 마음 없이 성경을 대한다면 성경 읽기는 그저 진부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과가 되고 맙니다.”

절제된 말로 우리에게 권면하는 존 스토트의 말 속에 녹아든 삼위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교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 아무 감흥 없이 말씀을 대하고 있는 사람, 성경을 좀더 깊이 이해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한 기초적 이해뿐 아니라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는 갈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이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추천사를 남발하지 않기 위해" 추천사를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시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이 책을 추천해 주신 것이 참 감사합니다. 그만큼 이 책이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에 출판사 편집진들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대하지 않는다. 불행한 것은 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이 권위를 잃어버린 이 시대에 교회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성경을 생명의 말씀으로 굳게 붙드는 것이다. "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가정에서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기를, 전 세계 강단에서 귀하게 선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존 스토트. 그의 모든 책이 그렇듯 꼭꼭 씹어 읽을 때 경험되는 진가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다룬 말씀들을 골라 책 모양으로 책갈피도 만들었답니다 :-)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왜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지 알기 원하는 사람
-오늘날 여전히 적실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만나고 싶은 사람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균형 잡힌 관점으로 더 깊이 이해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
-교회나 공동체에서 성경의 본질을 가르치고 나누려는 소그룹 리더나 교회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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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란 무엇인가』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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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

계시가 없으면, 곧 신적 가르침과 인도가 없으면, 우리 인간은 망망대해에서 방향키 없이 표류하는 작은 배, 바람 부는 대로 맥없이 날아다니는 나뭇잎,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는 소경처럼 되고 맙니다. 우리가 무슨 수로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하나님의 인도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길을 찾는단 말입니까? 본문 8절과 9절은 인간이 외적인 도움 없이 자신의 지성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인간의 길과 생각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행하시는 것 사이에 바로 이 거대한 심연이 놓여 있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인간의 생각과 길보다 높습니다. 이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아득한 거리를 뜻합니다. (p. 17-18)

루터가 종종 말했듯, 성경은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구유 혹은 요람입니다. 요람을 살피느라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을 잊지 맙시다. 성경은 여전히 지혜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별입니다. 그렇다면 천문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 별이 인도하는 집을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아기 예수님을 못 보는 일이 없게 합시다.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석이 진열된 상자라고 한다면, 상자에 감탄해서 보석을 못 보는 일이 없게 합시다. (p. 52)

오늘날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룬 본문은 성령에 대한 성경 말씀 중 한 단락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교리 안에 오늘 본문이 들어갈 여지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진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성령은 거룩의 영이시기도 하고, 사랑의 영, 능력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러분에게 진리의 영이십니까? 우리가 공부한 구절들에 따르면 성령은 진리에 아주 깊이 관련되어 계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탐구하시고, 드러내시고, 전파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깨우쳐 진리를 이해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신학을 무시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성을 멸시하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진리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이 장의 본문을 통해 성령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p. 79-80)

이제 가정과 교회에서 성경에 그 합당한 권위를 부여합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숭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될 때, 교회는 갱신되고 개혁되며 부흥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나 의도하셨던, 칠흑 같은 어둠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될 것입니다. (p. 100)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북토크가 열립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탐구센터, IVP가 함께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북토크를 엽니다. 
한국 교회의 중대한 문제인 가나안 성도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시: 2015년 11월 9일(월) 오후 7시 30분 (7시에서 30분 늦춰졌습니다)
장소: 은혜와선물교회(지하철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프라임센터 14층)

사회: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
발표: 정재영 교수(저자, 실천신학대학원)
대담: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주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탐구센터, IVP
후원: 뉴스앤조이, 청어람ARMC, 은혜와선물교회


* 현장에서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과 관련 도서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좌석 배치, 간식 등 행사 준비를 위해 사전 등록을 부탁드립니다(참가비 무료).


2015년 10월 16일 금요일

교회에 사람이 줄고 있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10월 14일! 화제의 신간,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이 출간되었습니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정재영 |147*220 | 224면 | 12,000원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아아, 한국 교회,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비단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검증조차 필요 없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개신교 인구는 (흔히 말하던) 1천만명에 훨씬 못 미치는 860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3대 종교 중 유일하게 감소세로 돌아선 기독교.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는 떠났지만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가나안 성도는 누구인가?

단지 신앙의 심각한 회의를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다니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교회를 찾는 사람, 좋은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홀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주중에 신우회 같은 모임을 갖는 사람 등 한국 교회에 “가나안 성도”가 이미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요?
한국 교회는 이런 가나안 성도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한국의 개신교회를 종교 사회학적으로 연구해 온 저자 정재영 교수(연세대 사회학과, 동 대학 사회학 박사)는 수년 전부터 가나안 성도 현상(신실한 신자들이 교회를 ‘안 나가’는 현상)에 주목해 왔고, 그동안 이와 관련된 여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가나안 성도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심층 면접 조사를 통해, 이 책에서 그들이 누구이고, 왜 교회를 떠났으며, 그들이 현재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밝혔습니다.

@www.prestigeresearchph.com

여기에 주요 사회학 이론들과 선행 연구들을 통해 이러한 신자들의 이탈 현상을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가나안 성도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망라하여 소개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이 진지한 탐구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국 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이 제기하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어떻게 스스로를 개혁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찾는이"들이 많이 찾는 나들목교회의 김형국 대표목사님이 이렇게 추천해 주셨네요.

"가나안 성도 현상을 이해하려면 사회학적 연구와 신학적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저자는 이에 꼭 필요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이 논의에 대한 단단한 축을 먼저 세웠다. 가나안 성도 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절실한 이때에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박영신 교수(연세대 사회학과), 조성돈 교수(실천신대), 지성근 소장(일상생활사역연구소),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 차례 |

머리말
1부 가나안 성도란 누구인가
1. 가나안 성도의 등장
2. 교회를 떠나는 이들
3. 강요받는 신앙
4. 소통 단절
5. 신앙과 삶의 불일치
6. 나름대로의 신앙 방식
7. 가나안 성도들의 교회

2부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한 이해
8. 탈현대와 소속 없는 신앙
9. 세속화와 가나안 성도
10. 공동체와 조직
 

맺음말

부록 1 설문 조사 문항
부록 2 심층 면접 문항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데 한 가지 원인만 있지 않듯,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응하는 데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혹은 우리)이 교회를 외면하는 이유를 잘 파악하고 우리(혹은 교회)가 조금씩 대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많이들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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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북토크 안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탐구센터, IVP가 함께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북토크를 엽니다. 
한국 교회의 중대한 문제인 가나안 성도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시: 2015년 11월 9일(월) 오후 7시 30분
장소: 은혜와선물교회(지하철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프라임센터 14층)

사회: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
발표: 정재영 교수(저자, 실천신학대학원)
대담: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주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탐구센터, IVP
후원: 뉴스앤조이, 청어람ARMC, 은혜와선물교회
좌석 배치, 간식 등 행사 준비를 위해 사전 등록을 부탁드립니다(참가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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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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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는 가나안 성도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하였고, 그들 내면의 상처와 어려움에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나 자신도 가나안 성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상처와 좌절을 딛고 새로운 신앙 운동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교회다움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거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치부는 덮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머리말 중에서)

 
터뷰에서 만난 대부분의 가나안 성도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이 교회 안에는 별로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할 뿐만 아니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말문을 열기조차 어려웠다.

  또 다른 모태 신앙인이자 체육대학에 다니는 현재 씨는 가나안 성도에 대한 연구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직접 연락을 해 왔다. 위선을 벗어 버리고 올바른 신앙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서 나름 고민했지만, 명문 대학에 다니는 청년부 지체들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목사님은 늘 바빠 보여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쫓겨 나오듯이 교회를 나왔다. (p. 40)


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다. 이것은 가나안 성도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가나안 성도들이 단순히 기성 교회가 싫어서 떠난 사람들인지 아니면 교회라는 제도나 조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이들에 대한 목회적 대안과도 직결된다. 기성 교회에 문제가 많아서 교회를 떠난 것이라면 기성 교회를 고치고 개혁하면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교회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일종의 무교회주의자라면 아무리 교회를 갱신한다고 해도 이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p. 46)


나안 성도가 되는 요인으로 주목되는 첫 번째는 1장에서도 보았듯이 ‘강요받는 신앙’에 대한 부담이다. 신앙은 개인의 믿음과 관련된 것이라 강요하거나 주입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문제에도 집단주의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든지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뷰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친숙하지 않은 초신자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면접자 중 절반에 가까운 18명이 모태 신앙이었고, 대다수가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신앙을 강요받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 (p. 62)


와 같이 최근 한국 교회가 극보수화되는 경향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들리고 있다. 이것은 미국 교회에서도 이미 겪은 일인데,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은 데이비드 캠벨(David E. Campbell)과 함께 쓴 『아메리칸 그레이스』(American Grace)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보수 성향 교회들의 세력이 강해지고 점점 정치적으로도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미국의 보수당인 공화당은 보수적 성향의 복음주의 교회와 정치, 사회적 공통 이슈를 공유하면서 점차 보수화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퍼트넘은 이런 정치성에 대한 반발로 젊은 층이 교회를 이탈하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한다. (p.86)


한 일부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는 아니지만 신앙 모임을 찾아서 나가기도 한다. 이것은 앞의 통계 조사 결과에서 보았듯이 전체 가나안 성도들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비율에 불과하지만, 최소한의 신앙생활을 유지하면서 이상적인 교회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기남 씨는 집 근처의 신앙 모임에 가끔 나가는데, 이 모임은 목회자 몇 명으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목회를 쉬고 있는 목회자 몇 사람이 주일에 모여서 격식 없는 형태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기남 씨는 이 모임에 나가서 기성 교회에서는 꺼낼 수 없는 민감한 문제들,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던 고민들에 대해서 털어놓으며 자신만의 신앙을 찾아가고 있다. (p. 117)


나안 성도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미 20년 전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 대하여 연구한 바 있는 영국의 종교 사회학자인 그레이스 데이비(Grace Davie)는 영국에서 교인 수가 감소하는 것을 기독교의 쇠퇴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국교이고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이지만,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흔히 알려졌듯이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이 주일에도 텅텅 비고 일부는 식당이나 술집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세속화한 영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고, 교회는 안 나가도 하나님은 믿고 있으며 대다수는 확신은 없어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여긴다. (p. 147)


회 제도화에 저항하는 가나안 성도들을 섣불리 교화하려 하거나 제도권으로 흡수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의 영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것을 기성 교회에서 수용함으로써 교회를 갱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과정과 이들이 교회 밖에서 신앙을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연구한 앨런 제미슨(Alan Jamieson)의 조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복음주의, 오순절, 은사주의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회가 떠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교회 없는 신앙(a churchless faith)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회를 떠난 이들을 기성 교회로 오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라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부각된 구도자에 민감한(seeker-sensitive)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이탈자에 민감한(leaver-sensitive) 교회와 교회 이탈자들이 안전하게 탐구할 수 있는 경계 집단들(liminal groups)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p. 193)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기도의 불이 꺼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신약의 모든 기도」




기도, 잘 하고 계신가요?
예전에는 안부 인사한답시고 "성경 잘 읽고 있니, 기도는 열심히 하니" 등 묻기도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참 부담스러운 인사였네요.

소원을 들어 달라는 기도보다는 뭔가 거창한 기도제목을 펼쳐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고,그러다 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잘 기도할 수 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을까요?



가장 오래된 기도의 교본, 신약 성경으로부터 기도의 비밀을 배운다



   신약의 모든 기도: 예수님과 사도들을 따라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다
New Testament Prayer for Everyone

톰 라이트 | 백지윤 옮김
140*200 | 216면|12,000원
2015년 8월 28일 발행


톰 라이트, 21세기의 C. S. 루이스

대중 저술가이자 최고의 성경신학자인 톰 라이트가, 이번에는 기도와 관련된 신약 성경 말씀들을 해설하고 묵상했습니다.

오늘날 기도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르침들이 난무하지만, 근거 없는 민간 처방들로 인해 오히려 혼란이 야기되고 있지요. 이럴 때일수록 기도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약의 모든 기도」구성

먼저 1부 "기도에 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저자는 신약 성경 속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드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또 그 기도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며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기도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2부 "신약 성경의 기도"에서는 신약 성경의 기도들 하나하나를 읽어나가며 해설합니다. 기도에 대한 톰 라이트의 해설에서 우리는 섬세하고 개인적인 적용점과 함께 개인의 삶에만 매몰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시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흘러나오는 변함없는 기도의 불빛은
언제든 우리 기도의 초를 위한 불씨가 되어 줄 것이다!


서문에 보면 "성냥은 한 개도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불을 켤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표현들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제 마음은 불이 꺼진 지 한참 오래 되어 잿더미만 남은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톰 라이트는 신약의 기도들이 우리 마음에 꺼져 있는 등불에 다시금 새로운 기도의 불씨를 되살릴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용기를 줍니다.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의 필치는 참 재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을 술술 읽어 내려가는 동안 톰 라이트의 안내를 받아 성경의 오솔길로, 기도의 시내로 들어가, 자연스레 신약 성경의 기도에 젖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의 삶에 사로잡혀 보자

기도하기 어려운 시기, 기도의 불이 꺼진 지 오랜 삶 속에서도 우리가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불씨를 옮겨 붙일 수 있는 불꽃이 여전히 신약 성경 속에서 타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 책에서 성경 속에서 소리 없이 빛을 발하는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기도들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 속 성도들과 함께 이 기도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의 기도는 메마른 습관을 넘어 우리 삶의 심장박동이 될 것입니다.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의 애독자는 물론 아직 톰 라이트를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톰 라이트의 정곡을 찌르는 통찰과 신앙과 학문이 통합된 경건한 성경 강해의 정수(精髓)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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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모든 기도」는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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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0일 목요일

마크 놀, 복음주의 지성의 토대를 논하다 [IVP BOOK NEWS 121호]

마크 놀, 출처 - TIME

1994년 마크 놀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출간했다. 이 “상처 입은 연인이 부치는 서신”에서, 그는 복음주의 종교 문화의 반지성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의 「그리스도와 지성」은 비판에는 지면을 훨씬 적게 할애하고, 대신에 그리스도인의 학문의 토대를 세우기 위한 비전,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인 진리들이 그리스도인의 학문의 열쇠다”임을 제시한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인 데이비드 네프(이하 네프)가 이 책에 관하여 노트르담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크 놀(이하 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프: 「그리스도와 지성」의 중심 주제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을 출간할 당시보다 지금 복음주의 지성의 상태에 관해 더 낙관적이신가요?

: 더 낙관적입니다. 전적으로 그렇지는않지만요. 현대 서구 문화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여타 진지한 지성의 삶을 밑에서부터 허물어버린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독교적 지성의 밑동을 잘라버렸습니다. 진지한 성찰의 근간을 스스로 허문 복음주의자들 사이의 경향도 여전히 매우 강합니다. 예를 들면 대중주의(populism)와, 문제가 있다면 지금 당장 해결해버려야 한다는 즉각주의(immediatism)가 있습니다.



네프: 다른 상황들에서는 이런 것들이 강점으로 작용하지요.

: 맞습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복음주의 세계 안에서 진지하고 냉철한 사고의 근간을 허무는 거의 모든 것들이, 실제로 복음주의적 삶의 다른 측면에서는 생산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단정하여 말하고 싶었던 적은 전혀 없지만 사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칭찬 받을 만하고 매우 진지한 향상을 보여 주는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 궤적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요. 그리스도인 철학자들이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을 해냈습니다.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는 기독교 대학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또 복음주의 신학교들이 선하고 확고한 사고를 자극하고 있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넓은 학문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기꺼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많이 내놓고 있고, 기독학생회(IVF) 학사·교수회 같은 파라처치들도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인데(그리고 역사학자의 유전적 비관주의일 것 같기도 한데), 그리스도인들의 상당한 지성적 기여가 더 넓은 강물로 흘러들어가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프: ‘와 보라’를 과학을 하라는 그리스도의 초대라고 하셨습니다.

: 이 책의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원과 미래 교회의 소망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지적 문제들을 고찰하는 기초 관점을 제시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고 전제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무엇보다도 만물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임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고린도전서 1장, 히브리서 1장 모두 똑같이 말합니다. 단지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만물을 창조하셨다’ 고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다.”는 고린도전서 1장 말씀은 참 놀랍지요. 복음서에서 우리는 탐구할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실제로 탐구해야 한다는 말씀이 반복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어떤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물었을 때, 빌립은 ‘와 보라’라고 대답했죠.
  제가 제안하는 것은 관찰과 경험을 타당한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취급하는 베이컨의 경험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곧 열린 지성을 가진다는 것이며, 이 열린 지성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을 통해 길러진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경험적 방법론으로 열린 지성을 가집니다. 자연에 대한 책임 있는 실험이 이루어질 때, 그 관찰자가 발견하는 것은 단지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창조되고 섭리에 의해 보존되는 자연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초점을 갖고서 자연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열린 마음과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학에 대한 그리스도의 적실성이란, 자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에게 자연을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을 탐구할 때 우리에게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에 대한 열린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 보라’인 것입니다.



네프: 특별히 복음주의자들 내부의 과학적 논쟁점들과 관련하여, 속도를 늦추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최고의 방식일 수 있다고 제안하시는 것 같습니다.

: 종교와 과학 사이의 이른바 ‘갈등’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들은 결론을 너무 성급하게 내리는 데서 기인합니다. 중세 시대로 돌아가 보면, 자연 안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새로운 발견들이 잇따랐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응했습니다. 한참이 흐른 뒤에야 그리스도인들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여기 설명이 있다”고 말하게 되죠.
  마르틴 루터도 장 칼뱅도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 수 있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세대가 지난 다음에 루터교인들과 칼뱅주의자들, 가톨릭 신자들 모두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주장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이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자, 시간을 갖고 성경과 분명하게 대치되는 이것을 가능한 한 주의 깊게 그리고 공평하게 평가해 봅시다.” 그런데 그 대신에 쓸데없는 교리적 반작용이 나타났지요.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저에게 없습니다만, 역사학자로서 저는, 끈기 있는 연구를 경시하지 말고 더 많이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네프: “그리스도인의 학문 활동을 위해서는, 가정생활·정치·지역사회 봉사·경제 활동·의료 활동 같은 것들도 똑같이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이렇게 쓰셨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학문 활동은 기독교와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육, 그리스도인의 출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정치 모두가 기독교와 함께 시작해야 하듯 말이죠.
  학문 영역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많은 부분들은 문제를 그리스도께 중심을 둔 기초로 돌려놓지 않는 데서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책의 첫 부분을 위대한 기독교 신경들의 기독론적 확증들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데 상당히 많이 할애한 이유입니다. 이 신경들이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그 자체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강도 높은 토론에 의해 단련되었고 생산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이 전진하는 길은 가정생활과 정치와 일체의 모든 윤리적 영역에서 그리스도께 중심을 둔 기초로 되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다른 차원들에서 전진하는 길이라면, 이것은 또한 지성의 삶에서도 전진하는 길입니다.



■ 이 인터뷰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하였습니다. 지면 관계상 편집하였으며, 전문은 2015년 9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혼자 오지 않으셨다 [IVP BOOK NEWS 121호]

[서평]

뜻밖의 손님

데이비드 짐머만 | 이지혜 옮김 | 최정인 그림ㅣ양장 64면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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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 분을 맞아 들일 수 있을까?
잠시 앉으셔서 가벼운 차 한잔에 딱 그만큼의 일상을 나누는 정도라면 충분히 자신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깨끗한 원룸이니까. 이 방이라면 예수님이 어디로 움직이실지 한눈에 파악이 될테니 원치 않는 곳을 급습 당하는 일은 없겠지. 그리곤 이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요즘 내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도 제목은 무엇인지. 그리고 혹시 예수님도 알고 계셨냐고 슬쩍 여쭈어 볼테지.

  내심 예수님이 좀더 오래 머물러 주시길 약간은 기대하고 있다. 그분께 속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을 수 있을 테니까. 힘들었지만 견뎌야 했던 지난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버거웠는지, 그럼에도 그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겐 은혜라고 고백할 작정이다. 그래, 문제없다! 예수님이 찾아 오셔도.


  하지만 내 방 쇼파에 앉아 있는 이웃을 마주하거나 내 키보드를 쿵쾅거리는 아이를 발견했을 때 나는 과연 괜찮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이웃으로 흘러가는 것은 내 예상을 넘어서는 일이다. 책을 읽다가 마음이 불편했던 지점도 바로 그 곳이었다. 묵을 곳이 없는 노숙자 가족이 집에 들어와 있을 때. 나는 마치 그들이 '내 집에' 들어온 것 마냥 짜증이 났다. 또 아무런 상의 없이 그들을 내 방으로 들어오게 하신 예수님에게도 마음이 불편해 졌다. “이제 그만 나가 주시겠어요?”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모를 한마디가 입 밖으로 불쑥 튀어 나갈 것만 같다.


  만원 지하철에 서 있을 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끊임없이 평가받고 저울질 당한다고 느낄 때,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거부한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그분을 실망시킬까봐 두렵다. 그냥 내 방에서, 나와 예수님 단 둘만 만나면 좋으련만.




  지난 3년간, 그러니까 내 삶을 돌봐줄 사람 없이 혼자 살게 되었을 때부터 나의 신앙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마치 예수님은 나의 아픔과 상처를 만져주고 회복 시키시기 위해서만 이 땅에 오신 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지내던 내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 혼자가 아니라 이웃을 데리고서.


  예수님은 나의 삶과 상처를 돌보시는 분 이시지만 우리의 관계가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예수님이 내 삶에 머무실 때 나의 삶엔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내게 상처를 주는 많은 이들을 용서해야 하며 나는 다시 관계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한다. 두렵고 통제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또다시 소진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지만 그 속에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교제의 풍성함이 숨어있는 줄 이제는 안다.


  닫혀있던 문을 열었더니 그 문으로 예수님이 들어 오셨다. 그 분은 날 너무 사랑하신다. 그래서 혼자 오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 우리 모두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이곳으로 불러 모으셨고, 우리는 그분을 우리 집 가장으로 모셨다. 예수님은 이 일에 매우 뛰어나신 분이므로.  p62"



김슬아(자취하는 인도공주)ㅣ 한문교육을 배웠고, 인문학을 가르친다. 따라가던 구름기둥이 머무는 곳에서 나름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나라가 무슨 상관인가? [IVP BOOK NEWS 121호]

[서평]

그리스도와 법: 하나님의 정의는 국가의 법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가
로버트 코크란 외 | 이일 옮김 | 304면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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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법」은 IVP 직영서점 산책에서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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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의 법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분석틀을 빌려 와서 각 교파/신앙고백적 관점들을 각각 종합주의자(로마 가톨릭), 변혁주의자(개혁파), 분리주의자(재침례파), 이원주의자(루터파)로 구분한다. 그런 다음 각 교파/신앙고백적 입장이 사회, 국가, 법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살핀다.



법을 바라보는 교파/신앙고백적 입장들


■ 종합주의자 로마가톨릭
자연과 은총, 이성과 신앙, 세속과 교회가 모순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 본다. 모든 피조물들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비롯된다. 이러한 낙관적인 인간론은 가톨릭 법사상에 있어 인간 존엄성과 인간 이성의 초월적인 능력, 인간의 자유로 연결된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근원적인 성품인 사회성의 발현으로서 사회와 국가가 성립한다. 이때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사회 속 인간은 개인주의나 집단주의와 구별되는 ‘인격주의’적 개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들은 모두 인간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권리와 의무 목록으로 연결되며, 가톨릭 사회 이론에 있어서 사회가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보는 견해를 낳는다. 사회와 국가를 구별하고 보충성과 사회화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국가의 존재 의의를 고려하는 가톨릭의 입장은 궁극적으로 국가를 자연법의 구속을 받는 기관으로 만든다.

1장 첫머리의 “법과 정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관점”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계승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어떻게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신앙에 기초해 인간과 사회, 법과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차이와 특히 자연법에 대한 철학적 전개로 인해 형성된 낙관론적 인간론으로 인해 약화된 죄에 대한 인식이 신학적 성찰을 통해 죄에 주목하게 되었음을 잘 지적한다. 이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인식이 개인에서 구조와 사회의 문제로까지 확장됨으로써 국가에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자연법사상의 경향을 수정했음을 언급한다. 이 논의를 이어받아 제라드 브래들리는 “자연법”이라는 글에서 자연법의 의미와 법사상, 특히 미국 법사상에서 자연법이 어떠한 의의와 역할을 지녔는지 보여 준다.


■ 변혁주의자 개혁파

 칼뱅으로 대변되는 개혁파는 죄로 인한 타락과 부패를 강조하지만, 변혁의 가능성 또한 강조하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개혁파가 이러한 입장을 이어받았으며, 특히 신칼빈주의자라고 불리는 북미의 개혁파가 계승했다. 한국에 장로교회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학적으로 변혁주의적 입장이 다수라 볼 수도 있겠다. 낙관적 인간 이해에서 출발하든 비관적 인간 이해에서 출발하든, 협력과 변혁을 강조하는 로마가톨릭과 개혁파 모두 분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던지는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장에서는 칼뱅주의의 신학적 인간 이해가 미국 제헌의회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 철저하게 보여 준다. 미국의 법제도에 칼뱅주의가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권리와 자유의 역사」(존 위티 주니어, IVP)와 함께 읽으면 개혁파의 입장을 좀 더 역사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이후에 실린 데이비드 커딜의 글 “법학에서 신앙의 자리에 대한 한 칼뱅주의자의 관점”은 네덜란드 개혁파의 정치사상과 법 이해 역시 소개하고 있는데 인물의 사상 소개에 그치는 감이 있어 약간 아쉽다.


■ 분리주의자 재침례파와 침례교

 이 입장은 강제력을 지닌 국가의 법에 저항한다. “급진적 종교개혁과 용서의 법학”에서는 재침례파가 말하는 용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법사상에 반영될 수 있음을 말하며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가지고 미드라시적 묘사를 통해 용서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통해 “(모든) 시민 공동체가 용서를 기반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개념은…혁명적”(p. 180)임을 밝힌다.
 소수자요 핍박받은 공동체인 침례교의 역사를 통해 침례교회가 자신의 정황 속에서 국가와 법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분리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침례교 신학은 그 구원 개념에서부터 각 개인의 자유에 기초해 있으며, 이러한 원리는 신학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을 지닌 침례교회가 분파주의에서 교파주의화되었고,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도덕적 다원주의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고유한 입장이 약화되었음을 지적한다.
 “바벨론에서의 자유와 생명에 대해”에서 국가의 영역을 최소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자신의 신앙을 증거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원화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신앙은 축출되고 마는데, 그렇다면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차라리 독자적으로 활동할 자유를 얻어 내자는 것이다. 기독교가 소수로 밀려나는 시점에 이 주장은 상당히 솔깃하게 들린다.


■ 이원주의자 루터파

마르틴 루터로 대변되는 이원주의는 교회와 국가, 그리스도인과 법의 관계를 긴장 관계로 본다. 왜냐하면 각기 다 른 통치영역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열된 집?"에서는 루터파와 재침례파의 국가관을 비교해서 서술한 후 루터파의 관점이 개혁파와 로마가톨릭의 관점과는 어떻게 다른지 간략히 나와 있다. 그러면서 루터파가 국가가 지니는 칼의 권세를 인정한 것은 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우리가 거할 곳을 만드는 것”에서는 루터 당대와는 다른 미국 상황 가운데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기독교 국가시기를 지난 시점에 후기 기독교 국가시기에 대응하는 양 극단인 신정주의와 분리주의 사이에 서 있으면서 정치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한 두 왕국 이론이 초기 이론 그대로 유지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이 ‘복음이거나 복음이 아닌 것’ 중 ‘하나의 선택’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서 자신이 자리할 공간을 법은 창조해 낸다”(p. 293)고 말한다.



균형, 시대 분별, 소명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얼까? 이 책의 편집자인 로버트 코크란은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균형과 시대 분별, 소명 의식을 가지고 각 전통을 화해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로마가톨릭 입장과 재침례파와 침례교의 입장을 다룬 글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각 교파의 신앙고백적 입장과 세부적인 인식들이 흐릿하여 도리어 공통기반과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는 우리 현실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고백하고 선택한 입장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참, 종교개혁이 새로운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중세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설명을 제공해야 할 텐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지점까지 다뤄지지는 않았다.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병규 | 법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열린교회 신학연구실과 여러 곳에서 출판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했다. 지금은 무등개혁교회의 설교자로 섬기면서 목회와 신학의 현장인 교회와 세상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과학의 시대, 영혼을 재발견하다 [IVP BOOK NEWS 121호]

[서평]

마음 뇌 영혼 신

심리학과 신앙에 관한 허심탄회한 대화
말콤 지브스 | 홍종락 옮김 | 304면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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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는 뇌질환을 앓으셨다. 뇌출혈로 돌아가시기 전, 나는 아버지의 뇌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 그동안 아버지의 모든 영적인 실천을 무참하게 뭉겨버리는 듯한 장면을 목격했다. 60년 동안 경건한 예배의 삶을 이어오시던 아버지는 멍하니 설교를 듣다가 웃음을 터뜨리시곤 했다. 그것도 자주.

   당시 나는 과학적 방법론에 다소 익숙한 신학도로서 인간의 뇌에서 발생한 물리적 혹은 화학적 변화가 주는 영향력이 한 인간의 오랜 신앙 여정을 여지없이 뒤흔들 수 있다는 반격에 사뭇 긴장했다. 신앙의 유지는 뇌 안의 뉴런의 건강한 기능이 전제돼야 한다는 엄연한 가설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인간의 종교심의 구성요소를 단순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논증하는 일을 넘어서, 훨씬 광대하고 연계성 있는 학제간 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안의 소리를 연결하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 종교 분야의 접점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말콤 지브스 교수의 「마음 뇌 영혼 신」은 인간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 곧 '나는 누구인가'(who I am)라는 철학적·종교적 질문과 '나는 무엇인가'(what I am)라는 과학적 질문의 합류 가능성을 묻는 모두에게 친절한 필체로 최고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우리 내면에서 쉬지 않고 일어날 만한 흔한 질문들을 끈질기게 묻는 호기심 많은 대학생 벤이 등장하고, 벤의 질문에 노교수 말콤은 쉽고 명료하게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인 노력들을 소개한다.

말콤 지브스는 게이지 논쟁*이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엮어 내는 데 혁혁한 공을 거둔 학자로 인정받는다. 발달심리학과 치료 분야, 인지심리학 분야, 뇌 영상 촬영 기술 등은 이제 서로 밀접하게 마음과 뇌에 관한 연구 관심을 소통시키며 발전해 왔다. 특히 영혼에 대한 종교적인 연구도 이러한 소통 구조 안에 위치시키려고 애써 왔다. 그래서 내담자들이나 교인들의 영혼의 상처를 감싸 안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중간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는 기독교 상담가들이나 목회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껴갈 수 없다.

*1848년, 25세의 철도회사 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손상을 입은 후 성격이 포악해진 사건. 이를 통해 교육이나 훈련 혹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고양된다고 여겨지던 도덕성이나 심성이 단순히 인간 뇌의 부분적인 기능으로 환원되었다.



이중 양상 일원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신비로운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의식적 경험을 파악하는 동시에, 물리적 기초가 손상되면 그것이 바뀔 수 있음을 이해하고, 두 측면을 모두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가 폭넓게 이루어지도록 친절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마음이나 영혼을 돌보는 이들과 생물학적 뇌 구조를 분석하고 처치하는 의학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일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정신과 신체는 외나무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이한 두 지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리하게 두 영역의 통합을 위해 정신과 신체 사이의 다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 정신과 신체 사이에는 중요한 이중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이중성 때문에 두 종류의 실체가 있다고 말하거나 실체를 단순하게 이분적으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이원론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이중 양상 일원론자”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다면 종교인들에게 영성이나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의 정신적인 관계성의 문제인 동시에, 성육화된(embodied) 관계성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뇌질환을 앓던 나의 아버지의 신앙이나 영성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부실해진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우리의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정신적인 관계성일 뿐 아니라, 뇌와 신체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성의 문제였다.

   우리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하드웨어의 기반 없이 소프트웨어에만 익숙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워드프로세서도 엑셀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좀 더 중요한 신체의 기능을 도외시하거나, 아니면 신체의 기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드는 환원주의의 무모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하드웨어에 기초한 것인데, 모든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발전이 하드웨어의 기초 기능과 동일한 것이라고 환원해 버리면 지브스가 주장하는 ‘이중 양상 이원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생각에 균형감각을 주는 책

  나는 「마음 뇌 영혼 신」을 진화심리학에 매료된 지성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진화심리학은 여러 심리학 분야 중 하나로 최근 첨예한 관심을 받는 연구영역이다. 그는 진화심리학의 역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심리학이 진화심리학으로 통폐합되고 있다는 식의 과도한 주장은 차분히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한다.

    탁월한 수학자이자 사상가이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파스칼은 “사람에게 그의 위대함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짐승을 많이 닮았다는 점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위험하다. 저속함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함만 또렷이 보게 하는 것도 위험하다. 위대함과 저속함을 둘 다 모르는 상태로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고 말했다. 지브스는 진화심리학이야말로 파스칼이 언급한 무지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브스 교수의 균형감 있는 학문성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평가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겹치는 기능에 주목하는 것도 합당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브스 교수는 특유의 혜안으로 약 10-20년 후 진화심리학 연구의 몇몇 분야는 동물과 인간의 인지적 성취와 행동 사이의 공통점과 유사성을 꼼꼼히 기록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의 인지와 행동의 독특성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운 이해의 장을 여는 매력적인 대화들

   「마음 뇌 영혼 신」은 정신의 영역과 영혼의 세계를 물질과 신체 영역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 양자가 하나의 실체를 동시에 반영하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중 양상 일원론'의 관점으로 인도한다. 영혼과 신의 문제도 신체와 분리된 구별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신체를 통한 성육신 사건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신학적 진리는 신경생리학과 인지심리학의 최근 연구와도 부합되는 통합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현대 가장 첨예한 관심을 받는 뇌과학의 영역도 하나님과 우주를 관계적으로 인식하는 영혼, 종교의 영역과 결코 반대편에 있지않음을 동감하게 될 것이다. 벤의 질문 중 하나라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면, 끝까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대화이다.




권수영 |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프로이트와 종교」(살림),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종교와 심리학의 만남」(책세상) 등을 썼다.


다른 공기를 호흡하다 [IVP BOOK NEWS 121호]

[역자 후기]

기억의 종말
The End of Memory
미로슬라브 볼프 | 홍종락 옮김 | 12월 출간 예정



「기억의 종말」은 기억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악행을 당한 기억을 다룬다. 
이렇게 빛나는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긴 책을 몇 마디로 소개하기는 무리지만, 
아쉬운 대로 몇 가지만 말해보려 한다. 


이 책은 두 가지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첫째, 악행을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일이기도 해야 한다. 가해자까지 고려하여 악행을 기억해야 한다니. 이렇게만 들으면 참 배부른 소리, 현실을 모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

  일본이 식민지 지배 당시 어떤 악행들을 저질렀던가.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직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그런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화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슈퍼히어로처럼 날아가 ‘악당들’을 응징이라도 하면 좋겠다. 나도 이런 마음인데 아이 본인이나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여기서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하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물론 저자가 이 정도 문제의식도 없을 리는 없다. 저자는 악행의 기억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와 관계의 회복이다. 그것이 피해자의 일방적인 용서와 이해만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배상을 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양측이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다 해도 대체로 그 성과는 불완전할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정의가 회복되고 그런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내세에 대한 소망이다. 저자의 두 번째 도발적인 주장은 내세에는 ‘기억의 종말’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다. 악행의 기억이 끝나는 때, 악행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세상이 온다. 이 말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기억하라!'는 촉구가 아니던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 쉽게 외면해 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위안부 수요 집회 모습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적당히 잊고, 적당히 끝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도 ‘기억하라’는 촉구의 정당성과 당위를 충분히 이해한다. 현세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누누이 지적한다. 그러나 내세는 하나님이 온전한 정의를 회복하실 세상이니 그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는 악행의 기억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불러오실 이런 새로운 세상, 내세에 대한 소망을, 악행으로 얼룩진 이곳에서 지금 추구해야 할 관계의 청사진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 관념적이고 허공에 뜬 이야기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람! 이런 생각이 든다면 평등사회의 꿈을 좇아 70년 넘게 세상의 절반을 움직였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라. 가야 할 바, 추구해야 할 그림이 없는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가.)



저자는 이 두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책의 전반부에서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단계들을 하나씩 밝힌다. 우선, 기억이 보호의 방패가 되지 못하고 공격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계하고(악행의 기억이 복수의 악순환만 낳을 수도 있다), 기억하되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들을 새긴다. 진실하게 기억하고, 치유에 보탬이 되게 기억하라. 그리고 출애굽과 그리스도 수난의 기억을 패러다임으로 삼아서 기억하라.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결론’이자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한 나는, 이 둘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신앙의 세계에 제대로 진입하지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잠깐이나마 뭔가 다른 공기를 호흡한 것 같았다.


볼프에게 신학은 곧 신앙고백이지 싶다.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사색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일인 동시에 본인이 살아가야 할 현실이요 붙들어야 할 소망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하고, 잘 읽히면서도 심오하며, 거시적이면서도 개인적이고, 종말론적이면서도 현재적이며, 종교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신학서적이 진정한 경건서적이라는 말, 이 책을 읽고 비로소 공감이 갔다.


"악이 온전히 이기려면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의 승리가 필요하다. 악행이 일어날 때 첫 번째승리가 이루어지고, 악을 앙갚음할 때 두 번째 승리가 이루어진다. 첫 번째 승리 후, 두 번째 승리로 새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악은 죽고 만다. 내 경우, 악의 첫 번째 승리에 대해서는 손쓸 수 없었지만 두 번째 승리를 막을 수는 있었다. G대위가 나를 그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주목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 마음먹었다(롬 12:21). 결국, 나는 불경건한 자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한 번, 이번에는 G대위를 상대로 나는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비틀대며 걷기 시작했다. " (1장 "심문의 기억" 중에서)




홍종락 |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번역하며 배운 내용을 자기 글로 풀어낼 궁리를 하고 산다. 더 많은 그의 글을 읽고 싶다면 블로그 "번역가 홍종락의 서재를 소개합니다"를 참조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