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부활을 사는 일상 영웅
팀 체스터 지음|백지윤 옮김|무선 292면|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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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의 자리에 ‘영웅’이 나타났다
일상 영웅이라니? 일상 시리즈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IVP의 몸부림 같았다. 일상 교회? 오, 그렇지! 일상 상담? 맞아, 상담은 일상 속에서 이루어져야 자연스럽지!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일상 영웅이라는 조합은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제목이 아닌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이렇게 삐딱하게 딴죽을 걸었더랬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이 책이 일상 시리즈 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야 마땅한 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성경을 성공으로 잘못 해석해 왔던가? 이 책이 지적하듯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특별한 ‘영웅’을 통해 널리 전파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십자가의 도가 ‘믿는 자들에게마저’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자리를 영웅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좋은 답을 준다.
심플하고 엣지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삶
책의 전체 구성은 십자가와 부활의 패턴을 삶으로 담아내기 위한 하나의 목적 아래 복잡한 성경 공식을 단순하고 엣지 있게(?) 정리해주는 데 있다. 1부에서는 십자가 사건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되며,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정죄함이 없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깨닫게 되어 더욱 겸손할 수 있고, 아무 자격 없이 용서받았음을 겸손하게 확신할 수 있음을 말한다.
2부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 곧 제자도의 삶은 순교를 택하는 것과 같아서 목숨을 내어 놓는 위험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설거지조차도 ‘자기중심성’이 아닌 ‘희생하는 삶’을 위한 섬김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3부에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힘과 영광의 자리가 아닌 십자가의 수치에서 드러났음을 말하면서, 세상과 하나님 나라, 제자들의 패턴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패턴은 현재와 미래의 차이를 대조한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이다(p. 143). 지금 하나님 나라는 감추어져 있지만 언젠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을 덮을 것이다(p. 153). 제자들이 고난 중에 있음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마침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p. 166).
이 책의 진가는 4부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부활의 능력이 약해지기 위한 능력이자 섬기기 위한 자유이며 죽기 위한 생명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반복해서 그 문장을 묵상한다. 좀 심한 비약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저자를 통해 ‘약해지기 위한 능력이 부활의 능력’이라는 ‘복음’을 들었다.
"부활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같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약해지기 위한 능력이다. 견디는 능력이며, 고난받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다. 약함 가운데 있는 능력이 우리의 자랑이다."(p. 191)
5부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부활의 약속과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담대한 모험을 실천하게 한다고 말한다. 부활은 정의가 승리할 것임을 보여 주는 표징이기에 부활의 믿음이 있다면 영원한 상급을 위한 소망을 품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현재보다 미래를 우선시하는 ‘종말론적 이분법’으로 사는 것이다(p. 271).
성경을 성공으로 오독하는 우리들의 교회 사정
이쯤에서 잠시 나를 소개할까 한다. 나는 말 많고 탈 많은 교단의 6년차 목사다. 지금은 수원에 있는 한 기독교 사립학교에서 교목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교회라는 ‘조직’안에서 괴롭힘을 받았다. 혹 조직이나 괴롭힘이라는 표현에 거북함을 느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교회는 공동체라기보다 조직에 가까웠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직의 특성을 교회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목적 달성이라는 우상의 포로가 되어 간다. 그들에게 부활의 능력은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이기적인 목적을 우선한 공동체는 눈이 가려져 복음이 왜곡되어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십자가의 초라함 대신 영웅의 화려함만을 강조한다. 특별한 영웅을 내세워 더 많은 성도를 찾아 헤매는 모습, 승리주의 바이러스에 깊이 감염된 모습,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이다. 이런 양상에 대해 저자가 인용한 돈 카슨의 말을 주목해 보자.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 체육인들, 언론인들, 대중 가수들을 내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들의 의견이나 은혜의 경험이 다른 신자들의 의견이나 경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현대 서구의 전도는 승리주의 바이러스에 깊이 감염되었으며, 그로 인한 질병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은혜를 축소시키며 돈과 영향력과 ‘우리 시대의 지혜’에 충성을 맹세하게 만든다."(p. 155)
승리주의 바이러스는 서구보다 한국교회의 전도에 더욱 깊이 침투해 있는 것 같다. 복음 전도 설교에 십자가의 도는 간데없고 긍정의 힘과 능력이 춤을 춘다. 성경의 인물들도 영웅 탄생을 위한 본보기로 사용된다. 요셉은 우리의 꿈을 실현해 줄 롤 모델이 되었고,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거부한 다니엘의 결단은 뜻을 ‘서울대’로 정하고 공교육을 거부한 채 사교육과 선행 학습에 몰두하는 이들의 결단으로 탈바꿈했다. 심한 비약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성경이 성공으로 오독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특별한 영웅이여, 이제 일상 영웅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길
이 책의 목적은 특별한 영웅이 취한 자리를 평범한 영웅들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데 있다. 평범한 영웅이란 십자가와 부활의 패턴을 머리, 가슴, 손(발)으로 체화시킨 익명의 사람들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소망으로 인내하는 그들에게 과감히 영웅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도 좋지 않을까? 지금 우리들에겐 승리하는 조직이 아닌 약함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나는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라고 말하며 사는 영웅들이 곳곳에 나타나길 간절히 기대한다.
한정호 | 자칭 책읽기를 살아 내는 모임 ‘일책’(일주일에 책 한 권)의 외로운 대표이자, 수원중앙기독중학교의 담임목사(담임샘이자 교목을 합친 말)로 정체성의 혼돈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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