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6일 토요일

한국 교회 앞에 놓인 커다란 과제의 해답을 찾아서[IVP BOOK NEWS 119호]

[서평]
권리와 자유의 역사
칼뱅에서 애덤스까지 인권과 종교 자유를 향한 진보
존 위티 주니어 지음 | 정두메 옮김 | 무선 592면 |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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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의미의 인권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국가에 대한 실효적 권리로서의 자유권, 사회권적 기본권의 관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이 같은 질문엔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지만 통상적으로는 그 출발점을 계몽주의로 잡는다.

억압적인 교권에 지배당하고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이 발견되기 전인 어두운 중세를 벗어나려 했던 계몽주의적 기획에 의해 더 이상 ‘자연법’으로 집약되는 질서가 아닌, 이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견되는 ‘자연권’이 대두되었고, 이 같은 논의들이 미국 독립선언과 영국 권리장전, 프랑스 인권선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설명을 의문 없이 받아들여도 될까?

기독교와 법 사이의 역사적 상관관계를 가장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영미권 학자 중 한 명이자, 에모리 로스쿨의 법과종교연구센터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존 위티 교수는 이 책에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언급되는 대부분의 근대적 기본권들은 세속화된 계몽주의적 기획에 의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초기 근대 칼뱅주의 사상가들의 사상에서 이미 움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다소 신선하게 들리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실제 칼뱅주의 사상가들의 저서 및 활동에서 나타난 사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상세하게 소개한다.


제네바에서 필라델피아까지

1장에서는 모든 논의의 원형이 되는 장 칼뱅의 전후기 신학을 소개하며 칼뱅의 공과를 공평하게 다루면서도 그가 제네바에서 실험하며 주력했던 ‘그리스도인의 양심 이론’에 따른 질서 있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2장에서는 1572년 8월 24일 수천 명의 프랑스 칼뱅주의자들이 학살당하면서 시작된 성 바르톨로메오 날의 대학살 사건 이후 대두된 질문에 응답으로, 다원적 신념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관용할 양심의 자유, 혼인계약과 유사한 정부와 인민간의 계약관계에 기초해 인민을 박해하는 정부에 대항할 권리를 주창한 테오도르 베자의 사상을 설명한다. 저자는 단순히 각 사상가들의 사상만 단편적으로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상이 형성되게 된 역사적 맥락까지 친절하게 잘 덧붙여 준다.

3장에서는 약 200년 후에야 발생하는 미국의 독립혁명과 매우 유사한 궤적을 이미 가졌던 네덜란드 혁명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서 자연권, 대중주권, 약속정치로 요약할 수 있는 요하네스 알투지우스의 사상을 소개하고,

4장에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이란 키워드에 근거해 종교의 권리, 가정의 권리, 시민의 권리를 설명해낸 영국의 존 밀턴의 사상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미국 헌법주의의 모판이 된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사상을 특정 사상가에 국한하지 않고 정리해서 소개한다. 너무 많은 사상가들을 나열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핵심적인 사상가들의 주장만 요약하되, 실제 원문들도 직접 읽어볼 수 있도록 발췌하여 수록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다 보면,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해, 양심의 자유, 계약의 자유와 같은 소위 1세대 권리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구체적으로 칼뱅주의 사상가들이 처한 맥락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비록 권리보다는 국가 및 공동체의 의무 형태로 주로 논의되긴 했지만 소위 2세대 권리인 경제적 사회적 권리 역시 칼뱅주의 사상가들의 주장과 실천 안에 포섭되어 있음 역시 이해하게 된다.


기독교와 권리 담론

그런데 저자는 왜 이와 같은 근대적 인권의 기독교적 작업을 시도한 것일까? 전근대적 기독교에 의해 행해지는 권리 논의는 ‘계몽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치부되고, 역으로 많은 개신교도들이 근대적 계몽주의의 권리 논의를 ‘기독교에 대한 배신’으로 이해하는 기이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이를 상세히 시도해 본 이유를 결론부에서 두 가지로 흥미롭게 밝힌다.

첫째로, ‘인권에 대한 종교의 역할’이다. 현재 사상적 뿌리 혹은 인간의 공동체 및 제도들의 내용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비전과 가치를 상실한 채 파편적으로 논의되는 인권 담론의 한계를 원뿌리였던 종교가 극복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둘째로 ‘종교에 대한 인권의 역할’이다. 인권 담론이 제기하는 도전들을 받아들여 전통적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보호했던 종교 공동체의 역할을 회복시킬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둘다 중요하지만, 특히 후자의 저술 목적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한국의 주류 기독교는 ‘인권’을 포함한 권리 담론에 익숙하지 않다. 권리란 의무자의 행위를 이끌어내는 힘 그리고 주장과 연계된 공동체의 변화를 촉구하는 무엇이어서, 수동적 인내가 주된 영성적 태도인 교회 내의 신학적 담론과 긴장 관계에 놓인다.

더욱이 인권으로서의 권리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서부터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이르기까지 우선적으로 그 주된 의무자를 국가로 설정하고 국가의 행위를 요구하는 것인데, 극히 폐쇄적인 종교 공동체의 현실상 외부에 존재하는 국가를 향한 요구란 단지 불편한 무엇일 뿐 아니라, 불온한 무엇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과거의 질문이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배우고 자성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 담론의 사상적 연원이 기독교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국가 폭력에 대항하며 부당한 침해에 대해 싸웠던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복권해본다는 것은, 상실했던 유산들을 다시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시급할 뿐 아니라 고통당한자와 약자의 편을 들고 몸으로 예수의 삶을 드러내야 할 요청을 받고 있는 한국 교회에게 지금 매우 적실한 과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가장 반인권적 공동체로 존재하고, 이해되고 있는 형편이 아니던가.


기독교와 학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야심작

한편, 기독교와 개별 학문과의 연결 고리를 의미 있게 추적한 저자의 저술은 또 다른 의미에서 반갑다. 국내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그동안 초점을 달리하여 여러 가지로 논의되어 왔지만, 기독교적 실천을 사후적, 소극적으로 설명해 내는 틀에 머물렀을 뿐 이를 사전적·적극적으로 기획해내는 틀로서 기능하지는 못했다.

총론을 넘어선 각론은 조직되지 못했고, 구체적 삶의 문제들에 천착하여 설명해 내는 담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법실무나 법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 책이 기독교 위에 건설된 서구의 문명적 맥락을 전제한다는 한계도 있지만, 지난한 역사적 추적을 통해 인권 담론과 기독교 모두에 적실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야심차게 시도한 저자의 노력은 결코 가벼이 취급될 수 없다. 한국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저자의 성공적 업적에 부러움과 감사를 표한다.



이일 | 모든 인간이 가진 천부적인 존엄성과 내재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날이 오기를 꿈꾸는 비전을 지닌 사단법인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이자 기독법률가회 사무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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