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6일 토요일

언더우드는 우리에게 축복이었다[IVP BOOK NEWS 119호]

[서평]
언더우드
조선에 온 첫 번째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의 시작 이야기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지음 | 이만열 옮김 | 양장 396면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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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역사 장르의 최고봉 

역사를 연구하고 관련 글을 쓰는 역사가인 나는 역사 연구의 정점에 전기가 있다고 믿는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그 인물을 둘러싼 시공간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 경제적 환경의 상호관계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중 전기 저술은 단지 개인의 일생을 복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경험하고 조우한 특정 시대와 환경과 관련 인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며, 거시적이고 광범위한 백과사전식 요약정보뿐 아니라 가장 전문적인 미시적 연구 성과까지도 포괄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기 경력이 무르익었을 시점에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필생의 역작으로서의 평전(評傳, critical biography) 한 편을 세상에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전기가 전문 학술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평전일 필요는 없다. 연구 대상이 되는 인물의 몇 세대 후, 혈연적 관계가 없는 역사가가 객관적인 관점으로 그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런 역사가 역시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 인물에 대해 남긴 개인적이고, 때로는 주관적이라 할 만한 기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런 기록은 당사자가 직접 쓴 1차 자료에 필적하는 가치가 있다. 이런 기록들이 쌓이고 분석되면서 치밀한 평전의 토대는 만들어진다.


‘한국의 언더우드: 친밀한 기록’

여기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중 하나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에 대한 ‘친밀한 기록’이 있다. 아내로, 동료 선교사로, 언더우드의 가장 가까이서, 그와 27년을 함께 살며 동역한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Lillias H. Underwood, 1851-1921)는 남편이 사망한 지 채 2년이 지나기도 전에 ‘한국의 언더우드’(Underwood of Korea, 원제)라는 제목으로 그의 삶과 사역을 회상하며 ‘친밀한 기록’(an intimate record, 부제)을 남겼다.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던 언더우드였기에, 누구도 그가 5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테다. 한국과 미국 전역을 열정적으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남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때, 호턴은 그를 지독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사력을 다해 친필 기록을 남겼다(원래 몸이 약하고 지병이 있었던 호턴은 이 전기를 완성한 3년 후, 남편을 따라 본향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이 책의 구절 하나하나에 절절히 드러나듯, 남편의 성품과 삶과 사역 모두를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고 지지했던 호턴은 이 ‘존경과 사랑과 지지’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예감하며) 긴 유언장을 쓴다는 심정으로 이 전기를 써내려 간 것 같다.


언더우드의 유산

언더우드는 한국에 온 모든 개신교 선교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인정받고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선교운동가 존 모트(John Mott, 1865-1955)는 언더우드를 추모하는 글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시킨다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시대에 언더우드 박사만큼 짧은 시간에 그렇게 커다란 업적을 이룬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불굴의 의지와 낙관적, 긍정적 사고방식,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화신이었던 언더우드는 당시 세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은둔의 나라’(The Hermit Kingdom)를 사역과 연설, 글을 통해 세계 기독교 확장의 중심지로 알려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가 사망한 직후 1917년에 재한북장로교선교회에서 발표한 결의문과 한국개신교복음주의선교회 연합공의회에서 발표한 조사에도 나오듯(pp. 365-371), 언더우드는 1884년 개신교 선교 시작 이래 한국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거의 모든 기독교 복음, 의료, 교육, 문서 사업의 선구자이자 기획자, 실행자, 지도자였다. 지난 20세기 말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2천 명이 넘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거의 모든 활동의 토대를 확고히 구축한 개척자가 바로 언더우드였다.


호턴의 언더우드

“이 글을 서술해 가는 동안 필자에게 점점 더 명확해졌던 사실은, 언더우드의 전 생애 가운데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 즉 하나의 지배적인 성격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교파나 인종이나 시간이나 장소와 같은 좁은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무한히 넘쳐흐르는 위대한 사랑이었다”(p. 20). 호턴은 언더우드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과 한국인, 가족과 동료를 향한 사랑에 매인 사람이었으며, 그의 모든 삶과 사역과 죽음이 그 사랑에 강권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그려 내고 싶어 했다. 이런 삶을 토대로 기술된 이 전기는 저자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호턴의 언더우드를 읽는 독자는 ‘지금껏 내가 이 분의 훌륭함을 너무 몰랐구나’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에게 온 것이 정말로 큰 복이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특히 그의 죽음을 직면한 한국 및 미국의 기독교인, 동료와 친구, 가족이 쓴 송사를 읽는 장면에서는 시나브로 눈가에 맺히는 눈물과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맛볼 가능성이 크다.


다음 단계

그러나 호턴이 묘사하는 언더우드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사 분야의 원로이자 저명학자인 역자 이만열 교수가 지적하듯, 호턴은 언더우드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에 가까이서 언더우드의 내밀한 경험과 고민과 행동의 원인을 지켜보고 읽어낼 수 있었지만, 바로 그 똑같은 이유 때문에 남편의 오류와 실책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

호턴은 필연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객관화하는 시선을 가질 수 없었다. 역자 이만열 교수는 호턴의 서술 군데군데에 역주를 삽입함으로써 잘못된 역사 기술과 정보를 교정하고 편향된 해석을 바로잡으며 관련 문헌을 소개했는데, 이는 원 저술과 번역이 상호 보완 관계에서 시너지 효과를 이룬 탁월하고 모범적인 사례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음 단계의 과제가 있다. 1918년에 나온 호턴의 이 전기 이후 100년이 더 지난 이 시점까지도 우리 교계와 학계는 언더우드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다룬 결정판 평전을 아직 생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호턴의 「언더우드」는 언더우드 및 한국 기독교 역사 연구의 토대가 되는 가장 가치 있는 표준 저술이므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반드시 읽고 소장해야 할 중요한 사료다.



이재근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선교학과 교회사를 가르친다. 20세기 세계복음주의 역사를 주제별로 다룬 『세계복음주의 지형도』(복있는사람)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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