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0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나라가 무슨 상관인가? [IVP BOOK NEWS 121호]

[서평]

그리스도와 법: 하나님의 정의는 국가의 법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가
로버트 코크란 외 | 이일 옮김 | 304면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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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의 법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분석틀을 빌려 와서 각 교파/신앙고백적 관점들을 각각 종합주의자(로마 가톨릭), 변혁주의자(개혁파), 분리주의자(재침례파), 이원주의자(루터파)로 구분한다. 그런 다음 각 교파/신앙고백적 입장이 사회, 국가, 법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살핀다.



법을 바라보는 교파/신앙고백적 입장들


■ 종합주의자 로마가톨릭
자연과 은총, 이성과 신앙, 세속과 교회가 모순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 본다. 모든 피조물들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기 때문에 여기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비롯된다. 이러한 낙관적인 인간론은 가톨릭 법사상에 있어 인간 존엄성과 인간 이성의 초월적인 능력, 인간의 자유로 연결된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근원적인 성품인 사회성의 발현으로서 사회와 국가가 성립한다. 이때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사회 속 인간은 개인주의나 집단주의와 구별되는 ‘인격주의’적 개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들은 모두 인간 본성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권리와 의무 목록으로 연결되며, 가톨릭 사회 이론에 있어서 사회가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보는 견해를 낳는다. 사회와 국가를 구별하고 보충성과 사회화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국가의 존재 의의를 고려하는 가톨릭의 입장은 궁극적으로 국가를 자연법의 구속을 받는 기관으로 만든다.

1장 첫머리의 “법과 정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관점”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계승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어떻게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신앙에 기초해 인간과 사회, 법과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차이와 특히 자연법에 대한 철학적 전개로 인해 형성된 낙관론적 인간론으로 인해 약화된 죄에 대한 인식이 신학적 성찰을 통해 죄에 주목하게 되었음을 잘 지적한다. 이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인식이 개인에서 구조와 사회의 문제로까지 확장됨으로써 국가에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자연법사상의 경향을 수정했음을 언급한다. 이 논의를 이어받아 제라드 브래들리는 “자연법”이라는 글에서 자연법의 의미와 법사상, 특히 미국 법사상에서 자연법이 어떠한 의의와 역할을 지녔는지 보여 준다.


■ 변혁주의자 개혁파

 칼뱅으로 대변되는 개혁파는 죄로 인한 타락과 부패를 강조하지만, 변혁의 가능성 또한 강조하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개혁파가 이러한 입장을 이어받았으며, 특히 신칼빈주의자라고 불리는 북미의 개혁파가 계승했다. 한국에 장로교회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학적으로 변혁주의적 입장이 다수라 볼 수도 있겠다. 낙관적 인간 이해에서 출발하든 비관적 인간 이해에서 출발하든, 협력과 변혁을 강조하는 로마가톨릭과 개혁파 모두 분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던지는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장에서는 칼뱅주의의 신학적 인간 이해가 미국 제헌의회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 철저하게 보여 준다. 미국의 법제도에 칼뱅주의가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권리와 자유의 역사」(존 위티 주니어, IVP)와 함께 읽으면 개혁파의 입장을 좀 더 역사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이후에 실린 데이비드 커딜의 글 “법학에서 신앙의 자리에 대한 한 칼뱅주의자의 관점”은 네덜란드 개혁파의 정치사상과 법 이해 역시 소개하고 있는데 인물의 사상 소개에 그치는 감이 있어 약간 아쉽다.


■ 분리주의자 재침례파와 침례교

 이 입장은 강제력을 지닌 국가의 법에 저항한다. “급진적 종교개혁과 용서의 법학”에서는 재침례파가 말하는 용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법사상에 반영될 수 있음을 말하며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가지고 미드라시적 묘사를 통해 용서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통해 “(모든) 시민 공동체가 용서를 기반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개념은…혁명적”(p. 180)임을 밝힌다.
 소수자요 핍박받은 공동체인 침례교의 역사를 통해 침례교회가 자신의 정황 속에서 국가와 법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분리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침례교 신학은 그 구원 개념에서부터 각 개인의 자유에 기초해 있으며, 이러한 원리는 신학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을 지닌 침례교회가 분파주의에서 교파주의화되었고,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도덕적 다원주의에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고유한 입장이 약화되었음을 지적한다.
 “바벨론에서의 자유와 생명에 대해”에서 국가의 영역을 최소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자신의 신앙을 증거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원화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신앙은 축출되고 마는데, 그렇다면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차라리 독자적으로 활동할 자유를 얻어 내자는 것이다. 기독교가 소수로 밀려나는 시점에 이 주장은 상당히 솔깃하게 들린다.


■ 이원주의자 루터파

마르틴 루터로 대변되는 이원주의는 교회와 국가, 그리스도인과 법의 관계를 긴장 관계로 본다. 왜냐하면 각기 다 른 통치영역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열된 집?"에서는 루터파와 재침례파의 국가관을 비교해서 서술한 후 루터파의 관점이 개혁파와 로마가톨릭의 관점과는 어떻게 다른지 간략히 나와 있다. 그러면서 루터파가 국가가 지니는 칼의 권세를 인정한 것은 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우리가 거할 곳을 만드는 것”에서는 루터 당대와는 다른 미국 상황 가운데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기독교 국가시기를 지난 시점에 후기 기독교 국가시기에 대응하는 양 극단인 신정주의와 분리주의 사이에 서 있으면서 정치 영역의 독자성을 인정한 두 왕국 이론이 초기 이론 그대로 유지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이 ‘복음이거나 복음이 아닌 것’ 중 ‘하나의 선택’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서 자신이 자리할 공간을 법은 창조해 낸다”(p. 293)고 말한다.



균형, 시대 분별, 소명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얼까? 이 책의 편집자인 로버트 코크란은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균형과 시대 분별, 소명 의식을 가지고 각 전통을 화해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로마가톨릭 입장과 재침례파와 침례교의 입장을 다룬 글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각 교파의 신앙고백적 입장과 세부적인 인식들이 흐릿하여 도리어 공통기반과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는 우리 현실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고백하고 선택한 입장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참, 종교개혁이 새로운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중세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설명을 제공해야 할 텐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지점까지 다뤄지지는 않았다.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병규 | 법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열린교회 신학연구실과 여러 곳에서 출판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했다. 지금은 무등개혁교회의 설교자로 섬기면서 목회와 신학의 현장인 교회와 세상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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